[한국 영화 100주년 연재 7] '아리랑' 상부에서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까지… 한국 영화사의 전환점 10
[한국 영화 100주년 연재 7] '아리랑' 상부에서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까지… 한국 영화사의 전환점 10
  •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 승인 2019.09.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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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주년이 어느덧 후반점을 넘어, 종반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당연히 그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기획 기사 등이 이 땅의 숱한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화 보기 구력 50년에 영화 스터디 38년 차, 평론 26년 차의 나만 해도 그 기획들에 심심치 않게 호출되고 있다. 이러저런 특강에도 동원되고 있다. 그야 말로 오랜만에 비평가로서 ‘특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에는 문학 전문 월간지 《문학사상》 7월 호(561호)에 「한국 영화사를 결정지은 변곡점적 사건 10」이란 제목으로 한국 영화 100년을 톺아보기도 했다. 《쿨투라》의 이 연재도 그 중 하나임은 물론이다. 문득 순서를 바꿔, 마지막 10번째로 소개할 예정이었던 그 10개의 전환점Turning Point을 앞당겨 선보이면 어떨까, 싶다. 더러는 손을 보겠으나, 거의 그대로일지언정….

그 첫 번째 전환점은 사실상 올 한국 영화 100주년의 기점인 박승필 제작, 김도산 감독의 극영화 형태의 연쇄극(連鎖劇/ Kino Drama : 연극 공연 중 연극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활동사진으로 상영하는 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 혹은 <의리적 구투義理的仇鬪>의 역사적 공개여야 마땅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연쇄극은 이미 ‘전제’로서 충분히 소개됐기에, 다른 사건으로 넘기련다. 마침 김종원이 《공연과 리뷰》 103호(2018 겨울/2019 봄)의 영화 논단 「한국영화 백 년과 기점의 문제점-<의리적 구토>에 가린 <경성 전시의 경>의 존재」에서, 실사 영화 <경성 전시의 경>이 연쇄극 <의리적 구토>보다 앞서 상영됐고, “영화적 메카니즘적 측면, 곧 영화 촬영 등의 측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보면서 비록 그 실체는 없어졌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의 ‘첫 영화’라고 본다”고 주장한다. “<경성 전시의 경>이 <의리적 구토>의 제작 과정에서 나온 부수적인 산물”이기에 <의리적 구토>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세계영화사상 연쇄극이 영화의 기점이 된 나라는 없다.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경성 전시의 경>은 변수가 아닌 상수, 한국영화의 원류原流로서 평가되어 한다”면서 말이다. 그 동안도 종종 제기돼 왔던 이슈이긴 하나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김종원이 다시금 전격적으로 던진 문제 제기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특별한 시점에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원로 영화 평론가가 던진, 경청해야 마땅한 반가운 쟁점이니까.

나운규 원작·각색·감독·주연의 <아리랑>의 상영 역시 <의리적 구토>와 함께 넘어가고 다른 사건에 기회를 주고픈 마음이 없진 않으나, 도저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필름과 대본조차도 없긴 해도, <아리랑>의 영화사적 위상·의의가 워낙 절대적·신화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사 100년을 결정지은, 이하의 10건의 전환점적 사건들은 다른 사건들로 대체되더라도 무방하다. 가령,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영화 행정의 기본적인 체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는 1962년 영화법 제정이나, 최초의 국산 ‘기획 영화’로 간주되는 <결혼 이야기>(1992)나 한국 영화로는 서울 관객 100만 선을 돌파한 첫 영화 <서편제>(1993, 임권택),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입증하며 한국 영화 산업을 결정적으로 확대시킨 <쉬리> 등의 기념비적 성공들, 검열에서 등급제로 전환시키며, 표현의 자유의 길을 활짝 연 1996년 위헌 판결 등이 그들이다. 그들 중 그 어느 것이건 아래 10선 안에 진입한다 한들 하등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1. <아리랑>(1926) : 한국 영화의 어떤 자존심이자, 한국 영화사의 신화적 출발점

김종원(『우리 영화 100년』)이 진단하듯, “한국 영화는 1926년을 고비로 중요한 전환의 기회를 맞이한다. 배우들이 양산됨에 따라, 그 동안 영화 해설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독점적인 스타의 영예를 누려 온 변사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34년까지 10년간은 꾸준한 제작 편수의 증가와 괄목할 수준 향상, 대중들의 높은 관심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무성 영화의 전성기를 이뤘다.” 그 결정적 기폭제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공전의 대흥행을 기록한 <아리랑>이었다. “800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3개월 만에 만들어”졌다는 영화가 선보이자, 서울 장안의 화제는 온통 <아리랑>에 집중됐다. 단성사 극장의 문짝이 부서질 정도의 장사진을 친 것. 난생 처음으로 기마 순사가 동원되기도 했다. 서울에서만이 아니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안 간 곳이 없고, 심지어 극장이 없는 시골에서는 가설 극장까지 지어 가면 관객을 웃기고 울렸던 것이다. 도토리 키재기처럼 고만고만한 영화가 고정 관객을 나눠가졌던 시기에, <아리랑>은 그야말로 군계일학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2. 정비석 원작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1956)의 센세이션:
당대 사회상의 생생한 묘사, 일상으로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1968, 정소영), <겨울여자>(1977, 김호선), <접속> (1997, 장윤현),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허진호) 등의 예들을 통해 알 수 있듯,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를 계기로 한국 영화의 외연과 내포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만 해도, 가장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영화 장르는 단연 멜로드라마였다. 1950년대는 특히나 더 그랬다. 반공주의 등이 압박처럼 억누르긴 했어도 일제식민기나 해방공간보다는 이념의 무게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시대였다. 당시 더 중시됐던 것은 “생활에 대한 감각”이었다. “1950년대는 개인의 사적인 생활 방식이나 일상이 주요 영역으로 떠오르던 때였고, 따라서 사적 공간을 주무대로 삼는 멜로드라마야말로 가장 중요한 장르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출발점이 <자유부인>이었다. 아프레게르après-guerre(전후파), 댄스홀에 빠진 유부녀, 서구문화에 심취한 청년세대, 물질만능주의를 신봉하는 기업가 등 당시 시대상들을 생생하게 묘사해 크고 작은 논쟁거리를 제공했던 문제적 화제작.(『한국 영화사』 참고·인용)

3. <하녀>(김기영, 1960) & <오발탄>(유현목, 1961)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
전후 한국 영화의 삼각형, 한국 영화사의 결정적 분수령들…

이 세 영화는 1960년대, 아니 한국 영화사 100년의 결정적 분수령들이었다. 『한국 영화사』는 이들을 “전후 한국 영화의 삼각형”이라 평했다. “전쟁으로 인한 궁핍과 혼란이 있었지만, 그 옆에는 새로움을 향한 희망이,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변화한 세상에 대한 불안이 공존”했던 “1950년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반영”으로. <오발탄>은 “전후 남한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그에 비해 “좀 더 일상의 문제로 접근하여, 봉건적 윤리와 개인적인 욕망 사이의 갈들을 다루었”다. <하녀>는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매우 이질적인, 그로테스크하고 음산한 알레고리의 공간을 구성해”냈다. 이들은 “그 어떤 영화도 계몽주의적 태도를 견지하지 않으며 어떤 이념적 경향이나 편견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만큼 변화하는 현실과 긴밀하게 접촉할 수 있었던 셈인데, 각기 그 방식은 달랐지만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히고 견고한 미학적 높이를 달성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4. <맨발의 청춘>(1964)의 기념비적 센세이션:
스타 신성일의 등장과 한국형 스타덤의 확립! 그리고 신성일 + 엄앵란 콤비 탄생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왔듯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신성일은, 비교 불가의 대한민국 대표 스타 아이콘이다. 그는 스타/덤(Star/dom)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곱씹게 한다. 이미지·기호로서 스타는 물론 ‘문화자본’, ‘사회적 현상’ 등으로서 스타에, 그처럼 부응하는 인물은 없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목하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BTS/방탄소년단까지 포함해도 매한가지다. 스타의 속성 중 하나가 그 단명성이라고 할 때, 대한민국 역사에서 신성일에 견줄 스타는 부재해왔다. 한국영화사상 그처럼 오랜 세월, 스타덤을 구가한 배우는 없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한국 청춘 영화의 대명사 <맨발의 청춘>은 신성일을 스타덤에 등극시킨, 기념비적 화제작. 일본 나카히라 코우(中平康) 감독의 <흙탕 속의 순정>(泥まみれの純情, 1963)을 노골적으로 표절했다고 해 그 전설적 명성이 치명적으로 훼손됐어도, 신성일이 분한 깡패 역 두수의 매혹attraction만은 여전히 치명적이다. 한국 영화사의 대표적 커플인, 두수 신성일과 외교관 딸 요안나 엄앵란의 ‘케미’ 또한 치명적이긴 마찬가지다.

5. <별들의 고향>(1974)과 이장호의 등장 : 한국 영화의 신세대 전격 개막

이 연재 감독 편에서도 피력했듯, 한국 영화감독 역사는 이장호의 출현을 기점으로 양분된다 한들 과언이 아니다. <별들의 고향>으로 문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당시의 영화계 구세대와 신세대를 가르는 어떤 경계였다. 이장호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배창호만이 아니라, 그 이후 영화계에 투신한, 주목할 만한 이 땅의 적잖은 감독들은 ‘이장호의 후예들’이다. 인기리에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최인호 원작 소설을 극화해 105일간 46만4천여 명의 당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별들의 고향>은 비단 1974년만이 아니라 한국 영화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에 방점을 찍었던 예의 ‘문예영화’와는 또 다른, ‘대중소설의 영화화’라는 새로운 제작 풍토를 조성하면서 한국 영화계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것. 그렇다고 <별들의 고향>이 흥행에서만 전환점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 《조선일보》도 평했듯 영화는 “경쾌한 템포와 감각적 영상 표출로 소설에서 보여 준 작가 특유의 신선한 감각을 되살리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수준으로….

6. 1980년대 전두환 5공 정권의 3S(Sex/Screen/Sports) 정책:
<애마부인> 유의 성애 영화의 양산-‘시대의 산물’로서 영화의 기능 증거하다.
공론장Public Sphere으로서 영화!

 『한국 영화사』도 적시하듯, 한국 현대사의 으뜸 비극인 5·18민중항쟁을 토대 삼아 출범한 전두환 5공 정권은 정치에 쏠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섹스-스크린-스포츠 ‘3S 정책’ 을 적극 이용했다. 그 시절의 심리적 딜레마를 시나리오 작가 심산은 이렇게 고백한다. “탱크로 광주를 깔아뭉개며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폭압과 자유화하는 양날의 정책을 썼다.” 다름 아닌 교복과 통행금지의 폐지, 두발 자유화 등이 그 선물이었던 것. 특별히 충무로에 주어진 선물은 “에로 영화에 대한 검열 완화다. 덕분에 1980년대 초중반 극장가는 갑자기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에로 영화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 신호탄 격인 영화가, 프랑스 <엠마뉴엘 부인>(1974)의 “한국적 변용”이라 할 <애마부인>(1982, 정인엽)이었다. 1990년대 중반 11편까지 달린 ‘애마부인 시리즈’는 이렇듯 그저 싸구려 성애물을 넘어, ‘시대의 산물’로서 작동한다. 영화가 단지 오락이나 예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때론 공론장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증거하면서 말이다.  

7.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 ‘한국 영화Korean Cinema’ 한국을 넘어 아시아로, 세계로…

1996년은 한국 영화 100년사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한해다. 향후 한국 영화를 이끌어 갈 세 신예가 장편 데뷔작을 선보였다. 강제규의 <은행나무침대>와,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김기덕의 <악어>다. 그 해 9월 13일, 아시아 최고 화제를 목표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한다. 그것은 한국 영화사의 향방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문화적 대사건이었다.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9일 간 치러진 영화제는 대성공이었다. (이하 www. biff.kr 인용) “31개국 169편의 영화들의 수만 야외상관과 남포동 극장가를 누볐고, 27개국 224명의 초청인사들이 부산으로 입성하였다.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국제영화제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을 엄선하여…적극적이고 참여하는 영상문화를 만들고, 세계영화계에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또한 세계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아시아 영화들을 선별하여 아시아 영화의 생생한 물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 제고는 부산영화제의 궤적과 거의 일치한다.

8. 1998년 CGV 강변 개관:
멀티플렉스 시대 본격 개막. 이후 한국 영화 산업은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하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멀티플렉스는 5개 이상, 유럽에서는 10개 이상 스크린을 보유한 영화관을 가리킨다. 16개 이상 스크린을 가진 시설을 별도로 메가플렉스megaplex라 부르기도. 멀티플렉스의 효용은 다수의 영화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상영하므로 관객의 영화 선택을 용이하게 하며, 극장이 제공하는 첨단 시설로 감상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단지 영화의 수요만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탈피해 전자 게임 시설, 쇼핑 시설, 음반 판매점, 서점 등과 같은 시설과의 연계로 종합적 문화 소비 시설로 복합화 돼 있는 것이 또 다른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4월 제일제당이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사,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업체인 호주의 빌리지 로드쇼사와 합작, 씨제이 골든 빌리지(CGV)를 설립해 강변역 테크노마트 빌딩 10층에 11개 스크린을 가진 극장을 연 이래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포털 다음, 화사전, 김광철 외) 그 이후로 멀티플렉스 상영  방식은 대세가 돼갔고, 오늘날 그 방식 아닌 영화 상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9. 2003년, 한국 영화의 어떤 대폭발 

2003년은 단언컨대 한국 영화가 기록적 대축복을 누린 역사적 한해다. <연애소설>(2002, 이한)로 발견된 손예진이 스타덤에 오르고 조승우가 발견되는, <엽기적인 그녀>(2001)에 이은 곽재용 표 멜로드라마의 개가인 <클래식>을 필두로, 상상력 가득한, 한국 영화사의 독보적 B급 작가 영화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한국 스릴러 영화의 결정적 변곡점이자 한국 영화사 최고작 중 한 편인 <살인의 추억>(봉준호), 아직도 해당 장르 역대 1위 흥행작을 고수 중인 국산 공포 영화의 어떤 수준인 <장화, 홍련>(김지운), 한때 국제무대에서는 한국 영화를 대변하는 최고 대표작의 위상을 누렸으며, 20여 편의 김기덕 필모그래피의 최고작이라 한들 과언은 아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1960년대를 풍미했던 ‘스크린 사극’ 부활의 결정적 계기 <황산벌>(이준익),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올드보이>(박찬욱), 2019년 8월 기준, 19편에 달하는 ‘국산 천만 영화’ 그 1호 <실미도>(강우석) 등이 그해에 선보였다. 놀랍지 않은가.

10. <기생충>,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한국 영화와 아시아 영화는 물론, 나아가 세계 영화사의 어떤 흐름을 뒤바꿀 역사적 쾌거!

혹자는 지나친 과장이요 사대주의적 호들갑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 반문은 하지만 세계 영화역사에서 칸영화제가 차지해온 위상·권위를 잘 모르고 던지는 것일 공산이 크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총아 프랑수아 트뤼포가 27세의 ‘어린 나이’에 <400번의 구타>로 1959년 칸 감독상을 거머쥐고,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가 <달콤한 인생>으로 황금종려상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정사>로 심사위원상을 (이치가와 곤의 <열쇠>와 공동) 수상하며 ‘현대 영화Modern Cinema’의 문을 활짝 연 이래 줄곧, 세계 영화사의 지형도는 사실상 칸영화제에 의해 그려져 왔기에 내리는 진단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동안 미국 영화는 물론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위치해왔다면, <펄프 픽션>이 1994년 칸 황금종려상을 안은 덕택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그 무게추는 타란티노에서 봉준호로 전격 이동될 게 틀림없다. 그 잘난, 하지만 특유의 게으름과 서구 우월주의에 물들어 한국 영화를 우습게 봐왔던 보수적 영화역사가들도 더 이상 봉준호의 영화들을, ‘내셔널 시네마’로서 한국 영화를 홀대하지 않고 본격 연구하게 될 터.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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