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 나희덕 시인 인터뷰
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
·인터뷰 _ 나민애 (문학평론가)
·사 진 _ 박영민 (쿨투라 객원기자)
·일시 및 장소 _ 2017년 2월 18일 도서출판 작가(쿨투라 북카페)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두 종류의 감옥
나민애: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에「종이감옥」이 <오늘의 시> 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희덕: 동료 작가들이 제 시를 많이 추천해 주셨다니 어떤 문학상보다 더 기쁘고 고맙습니다. 젊고 새로운 감각을 지닌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스스로 한계나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요. 선정 소식을 들으면서 아직은 내 언어가 다른 세대에게도 공감을 줄 여지가 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나민애: <종이감옥>의 탄생 노트를 좀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태어난 작품인가요.
나희덕: 어느 날 연구실에 밤늦게 앉아 있는데, 불현듯‘아, 이곳이 바로 나의 감옥이구나. 그리고 머지 않아 이곳이 나의 무덤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순간, 글을 읽고 쓰면서 이어져 온 하나의 삶이 조감되는 것 같았어요. 다른 분들이 이 작품에 공감하셨다면 아마도 글 쓰는 이로서 비슷한 자발적 유폐를 경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종의 동업자의식이라고 할까요.
나민애: 선생님의 ‘자발적 유폐’라는 표현이 인상 깊습니다. 그리고 유폐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작자의 고독과 고통도 연상됩니다.
나희덕: 사실 누구도 저를 그 방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처음 연구실이 생겼을 때에는 책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마음껏 읽고 쓸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어요. 제 연구실은 좁아서 창을 제외한 모든 벽면이 천장까지 책으로 꽉 차 있거든 요. 그 방에서 17년을 지내다보니까 점점 책이 차지하는 자리는 넓어지고 내 자리는 작아졌지요. 그 종이더미 사이로 기어다니는 책벌레와 내가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 점점 생명의 물기를 잃은 채 시들어가고 퇴색해가는 느낌, 더 이상 싹을 틔울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없으리라는 예감이 밀려들었어요.
그리고 어떤 시인이 제 시에 대해‘실내적인 정직’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겠더군요. 제 시는 뜨거운 광장의 언어도, 드넓은 광야의 언어도 아니었어요. 실존 적인 경험과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서 정직하게 살고 성실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 방 밖으로 한 걸음도 걸어나가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겨울 내내 광화문 텐트촌에서 보낸 송경동 시인은 인터뷰에서 어떤 시를 쓰고 싶으냐는 질문에“살아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죽은 글자가 아니라 그 시를 읽는 순간부터 다시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시를저 역시 갈망하지만, 정말 살아 있는 시를 쓸 만한 여건도 자격도 제겐 없다는 고백 같은 것이 지요.
그런데 자발적이든 타율적이든 이런 갇혀 있음의 상태는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 시인들이 처한 일상적 조건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조건들이 그대로 죽음의 조건이 되는 상황도 피할 수가 없고요. 2015년 네팔에 지진이 났을 때 사람들이 깃들어 살던 벽돌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니 그대로 벽돌무덤이 되는 장면을 본 적 있어요. 이처럼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종잇장한 장 차이거든요. 나를 보호하던 집이 내려앉으면 그대로 무덤이 되죠. 우리를 보호하던 체제나 국가가 가장 억압적인 감옥이될 수 있고요. 최근엔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보이지 않는 규율권 력에 의해 다양한 감옥이 우리의 의식과 상상력을 옥죄고 있어요. 그런 답답함이 이 시를 쓰게 했어요.
나민애: 감옥을 두 가지로 말씀해 주셨는데 두 감옥 모두 작품의 공감대를 넓혀주는 원인 같습니다. 요즘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답답함이 바로 이 시에서 말하는 감옥 때문이잖아요.
감옥이자 연구실인 그 공간은 실제로 어떤가요. 저는 이 시를 보면서 선생님 연구실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어요. 어쩐지 형광등을 갈아야 할 것 같은데요.
나희덕: 시에 나오는 모습 그대 로예요. 낡은 건물인데다 전기 시설도 노후해서 형광등이 자주 깜박거리고 늘 침침해요. 산을 깎아서 만든 건물 뒤편이라 창 밖으로는 절벽밖에 안 보이고, 하루에 30분 정도밖에는 볕이 들지 않지 요. 종일 해가 들지 않는 그 방에서 한 생애가 가겠구나 생각하면 좀 우울해져요. 그러나 <풍장의 습관> <옆구리의 절벽> <조롱의 문제> 등 그 방을 소재로 시를 여러 편 썼으니, 한편으론 감사해야죠.
삶을 관조하고 관통하는 색채
나민애: 마치 감옥의 수기를 듣는 느낌입니다. 환경이 시를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환경이야기가 나왔으니 과거의 환경으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가 인터뷰하는 아현동이 선생님께는 친숙한 곳이죠?
나희덕: 네. 여기 오면서 중앙여고를 지나왔는데, 아주 오래 전 중앙여고에서 1년 동안 임시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어요. 저에겐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귀뚜라미>라는 시를 쓴 것이 바로 아현역 지하도를 올라오면서 들은 귀뚜라미 소리 때문이었지요. 지하도 밖은 매미 소리가 한창이었지만 지하도 콘크리트 틈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그렇게 너무 일찍 오거나 너무 늦게 온 존재들과 공명하는 게 시인들이잖아요. 오랜만에 아현동 언덕길을 올라오면서 그 여름날이 떠올랐어요.
나민애: 그때도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죠. 지금은 개강을 앞두어 대학의 선생님들이 가장 바쁠 시기입니다. 광주에서 가르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나요?
나희덕: 물론 시에 모든 힘을 집중해서 등단도 하고 활발하게 작품을 쓰는 제자들이 제일 고맙고 미덥지요. 그런데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면서 작가를 몇 명 배출하고 그런 것보다는 세상의 작은 기미에도 유난히 뒤척이는 민감한 영혼들과 만나 삶의 경험을 긴밀하게 나누는 일이 더 소중해요. 오래 방황하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일 수밖에 없겠다, 그런 자리로 번번이 돌아오는 제자들에게 특히 마음이 많이 가요.
나민애: 지식 전달자의 수준을 넘어 있는 선생님이 되셔야 하는 거군요. 선생님 중에서도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일은 상당히 힘든 일로 생각됩니다. 삶 자체에 접근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시의 한복판에 계속 머무르고 계신 거네요.다음 질문은 선생님의 독자로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시를 보면 발신자로서 수신자에게 보내는 시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모성적이고 따뜻한 작품이 대중에게 알려진 나희덕 시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선생님의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보면 또다른 모습이 있어요. 나아가 미당문학상을 수상하신 <심장을 켜는 사람>에는 열정의 뜨거움이 있거든요. 사실 다 선생님의 면모들이지만 <종이감옥>이 잿빛이라는 점에서또 새로움을 느꼈습니다. 이 회색 이미지가 최근 선생님의 세계에 가까운 건가요?
나희덕: 그러고 보니 잿빛인 것 같네요. 오늘 입은 옷도 흑백 톤이고요.
나민애: 저는 선생님의 모든 색을 좋아합니다.
나희덕: 지난 번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죽음의 시가 유난히 많았는데, 최근에 아버지의 병환과 죽음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되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희노애 락의 분화도 별로 없고, 치러야 할 것들이 웬만큼은 지나가버린것 같아요. 승려의 승복 색깔이 잿빛이잖아요. 그건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이 모든 것들을 다 연소시키고 남은 재의 색에 가깝지요. 제 나이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외람되지만 저한테는 생명의 다양한 색채들이 이미 지나가버린 일처럼 여겨지고 흑백만 남은 느낌이 들어요. 나민애: 회색 느낌을 여쭤봤지만,‘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는 한용운의 시처럼 선생님이 재의 시간을 걸으시다가 다른 색채를 걸으실 수도 있잖아요. 저는 지금 재의 시를 만났지만 미래의 선생님의 시에서 다른 색채를 만나게 되면 아, 그 재가 다시 기름이 된 모양이다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희덕: 만일 그런 시절이 선물처럼 다시 온다면 너무 좋겠죠.
고통받는 자로서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나민애: 어제 안산에서 열리는‘금요일엔 함께 하렴’기억시 낭독회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요. 그 모임에 대해서 더 여쭤 보고 싶어요.
나희덕: 안산 기억저장소에서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금요일엔 함께 하렴’은 교육문예창작회 선생님들이 꾸려온 기억시 낭독모임입니다. 저는 초대시인으로 한 번 참여했을 뿐이지만, 단원고등학교 희생자 한명 한명에 대한 시를 쓰고 매주 행사를 지속해오는 선생님들의 정성과 연대감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저도 세월호 관련해 쓴 시들을 읽고 유족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는 데요. 제 시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시를 엄마들이 직접 읽으며 다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민애: 시인으로서의 사회적인 발언과 행보를 꾸준히 이어나 가고 계시죠.
나희덕: 전면에서 싸우는 작가들에 비하면 미미한 힘을 보태는 정도지요. 1990년대까지는 작가의 사회적 참여나 발언이 대체로 집단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2000년대 들어 용산참사와 강정마을, 세월호 등과 연대해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다양성이 존중되고 개인적 실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해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개별자로서 발언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여겨졌어요. 여러 매체 들에서‘문학과 정치’에 대한 특집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 고, 저 역시 시인으로서 현실의 고통과 부조리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합니다.
랑시에르는‘정치’를“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정치’라는 말 대신‘시’를 넣어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 같아요. 시야말로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듣게 하는 역할을 해왔지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증언하는 것을 넘어서 ‘몫 없는 자’와‘목소리 없는 자’들을 대신해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와 정치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불행하게도 시와 정치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 받는 자로서 다가가 옆에서 기척을 내고 목소리라도 들려주는 것, 그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이렇게 생각해요.
나민애: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셨을 거 같아요.
나희덕: 네. 그런 명단이 있다는 것 자체가 블랙코미디죠.
나민애: 방금 랑시에르를 인용해 주셨는데 철학 공부도 많이 하시고 그림도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문학 외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은 어떠세요.
나희덕: 독서를 하면서 시적인 방식으로 철학책이나 과학책을 전유하죠. 다른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시적인 착상을 얻을 때가 많아요.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시적인 상태로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 연구년 동안에는 그림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는데, 요즘은 짬이 나지 않아 통 그리지 못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생각이 적어지고 붓끝의 움직임만 남는 게 좋아요.
나민애: 선생님이 직접 그린 그림과 시를 함께 엮어 내는 작업도 기대되는데 계획은 없으세요?
나희덕: <그녀에게>라는 시선집을 쉰 살이 되던 해에 펴냈는데 요. 50년 동안 여성으로서 살아온 시간을 정리해보며 저와 비슷한 내면 풍경을 지닌 여성 화가들의 그림을 나란히 넣어 보았어 요. 그러면서 앞으로 한 20년쯤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 제 시와 그림으로 시화집 한 권은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나민애: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인가요?
나희덕: 시적인 추상을 좋아해요. 마크 로스코, 파울 클레, 사이 톰블리, 안토니 타피에스 등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추상화된 형태나 색채로 표현하는 작가들. 얼핏 단순하고 정적인 듯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굉장히 격렬한 고통을 품고 있는 그림들이죠.
나민애: 정적이지만 그 안에 고통이 들어 있다는 말씀이 그림이 아니라 마치 선생님의 시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시와 그림의 만남은 너무나 적절해 보입니다. 시화집을 기대 하지만 20년 이후라고 말씀하셨으니, 보다 근거리의 계획을 여쭤 봐야겠네요. 올해 준비하시는 책이 있으신가요?
나희덕: 글과 사진을 함께 묶은 산문집을 내려고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어요.나민애: 예전에도 사진에세이를 출간한 적이 있죠. 사진을 다직접 찍으신 거예요?
나희덕: 네. 산문집은 봄에 달 출판사에서 나올 거예요. 그리고 올해 안에 새 시집을 묶으려고 발표한 시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시가 줄어들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시들이 많아졌어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지난 몇 년이 누구에게나 시대적인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기였 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앞선 일곱 권의 시집에서 개인의 이야기는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나’라는 주어를 내려놓고 중성적인 화자로서 이야 기할 수 있게 된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다소 건조하고 딱딱해진 느낌도 있지만 서정적 물기를 걷어냄으로써 갖게 되는 새로운 얼굴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첫 시집 <뿌리에게>의 다정한 생명의 세계로부터 제 삶이 조금씩 멀어져왔고,‘ 나’라는 존재를 계속 지우고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또다른 시의 자리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민애: 선생님께서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계속 변화를 추구 하신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올해 만날 수 있는 책이 벌써 두 권이네요. 신간이 나오면 오늘 인터뷰와 <종이감옥>을 생각하면서 더 가깝게 읽을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멀리까지 와주셔서 긴 시간 좋은 말씀 해주셨습니다. 독자들을 대표해서 감사말씀 드립니다. 저는 인터뷰 끝나고 집에 가서 시 <귀뚜라미>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나희덕: 돌아가는 길에 자세히 찾아봐야겠어요. 귀뚜라미를 만났던 그 자리가 아직 남아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