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엔니오 모리꼬네는 천재인가 범재인가: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다큐영화면서 음악영화면서 전기영화인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ENNIO〉는 130년 영화사에 있어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인 엔니오 모리꼬네(1928-2020)의 생애와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들, 그리고 많은 영화를 다루고 있다. 〈시네마천국〉을 만든 이탈리아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무명이었던 자신을 인정해준 엔니오 모리꼬네의 전기영화를 만들고자 다년간 준비했을 것이다. 2020년에 그가 작고하자 이때다 하고는 편집에 들어갔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편집의 묘미를 십분 보여주고 있다. 156분 러닝타임 중 거의 절반이 본인과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끝까지 안 보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독과 편집자의 능력이 뛰어나 하품을 하지 않고 엔딩 크레딧 장면에 나오는 음악 〈The Silver Of The Mine〉까지 몰두해 듣게 된다.
이 영화에서 관객이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예전에 봤던 어떤 영화의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이 주는 감동? 〈황야의 무법자〉(1964)나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가 우리나라에서는 2년씩 늦게 개봉되었는데 이른바 마카로니 웨스턴이었다. 근 60년 전의 영화이므로 영화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갖고서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보러 간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음악이 영화를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언터처블〉(1987), 〈시네마천국〉(1988) 등도 영화사의 고전들이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한 작곡가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어 감상하는 것이 좋다.
엔니오는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죽었다.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려고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군악대 출신으로 악단의 트럼펫 연주자로 살아가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사가 될 공부를 시킬 돈이 없었다. 싸구려 중고 트럼펫을 사주면서 자신이 부득이하게 공연장에 나가지 못할 때 대신 나가게 했다. 트럼펫을 가르쳤지만 소질이 없는 아이였다. 업소에서 억지로 트럼펫을 불 때마다 굴욕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그래도 음악으로 먹고 살라고 음악학교에 보내주었다. 학교성적이 중간에도 못 드는 범재였다. 본인도 훌륭한 연주자가 될 자질이 없음을 알고는 서서히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작곡을 배우러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들어가서 만난 스승 고프레도 페트라시와의 인연은 평생토록 지속된다. 하지만 애증의 관계였다. 학생의 실험정신을 음악원 원장이 인정하지 않아서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스승은 말도 영 못하는 제자의 대답을 대신 해주면 되자 길에서 만난 스승도 울고 제자도 운다. 그런데 이 애제자에게 정통 클래식을 열심히 가르쳤는데 제자는 스승을 두 번 배반한다. 존 케이지와 어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을 받으면서 영 못마땅한 전위음악을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졸업 후 결혼하고 애 낳고 생활이 어렵자 초등학교 동창생 세르지오 레오네의 꼬임에 넘어가서 휘파람 소리가 이어지고 채찍질 소리와 기타 소리와 합창이 뒤엉키는 〈황야의 무법자〉란 마카로니 웨스턴인지 스파게티 웨스턴인지 이상한 서부극에 들어가는 음악을 작곡해 스승을 실망시킨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한술 더 떠 까마귀 울음소리에 이어지는 ‘와 와 와’, 휘파람 소리, ‘우와와 웨이커업’ 어쩌고 하는 육성이 들리는 해괴망측한 음악을 작곡해 스승은 낙담한다. 스승은 제자가 클래식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을 기대했는데 요상한 전위음악을 하는 것도 못마땅했고, 〈셰인〉이나 〈황야의 결투〉 같은 정통 서부극이 아닌 이태리 서부극(마구마구 총질하는 폭력 신이 난무했다)에 음악을 계속 주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음악원을 졸업한 동창들이 열심히 작곡하고 연주하며 살아가면서 엔니오 모리꼬네를 부러워했을까? 스승이 다른 제자들에게 엔니오를 칭찬했을까? 엔니오는 음악계에서는 고립무원이었고 영화계에서는 스타였다. 그는 스스로 ‘배신자’라고 자학하였다. 스승은 제자의 작곡을 ‘반예술적 행동’이라고 대놓고 비판하였다. 그는 고독하였다. 그래서 더욱더 마카로니 웨스턴 음악의 작곡에 몰두하였다. 스승이 인정해주는 순간이 온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였다. 영화음악의 차원을 높인 주제곡은 여성의 고음으로 전개되는데, 지상의 음악이 아니고 천상의 음악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가 불멸한다면 영원토록 불멸할 음악이었다. 스승은 마음으로 제자를 껴안고 사과한다. 내가 너를 몰랐다고.
외국에 대한 미국의 업신여김은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엔니오를 다섯 번 올린 뒤에 다 떨어뜨린 데서도 알 수 있다. 〈미션〉의 엔니오 대신 기존의 재즈곡을 반 이상 편곡해서 쓴 〈라운드 미드나잇〉의 허비 행콕이 수상한 것은 아카데미 역사상 이변 중 하나였다. 2007년에는 공로상을 주었다. 기적이 일어난다. 가요를 작곡하고 편곡하다가 1961년 처음 〈파시스트〉로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한 이래 55년 동안 홀대한 그에게, 미국이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헤이트풀 8〉의 작곡자에게 생애 첫 아카데미 음악상을 준다. 이 영화의 음악은 거창하기는 하지만 〈미션〉과 〈시네마천국〉에는 미치지 못한다. 차라리 〈천국의 나날들〉(1973)이나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혹은 〈말레나〉(2000)로 받아야 했다. 아니, 일찌감치 1966년 작 〈알제리 전투〉에서 받아야 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음악 작곡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대본을 읽고 영화를 이해해야 하고 감독과 계속 대화하며 요망사항을 확인해야 하고 필름을 보면서 음악을 맞춰 넣어야 한다. 감독이 고개를 흔들면 다시 작곡해야 한다. 그런데 엔니오는 영화를 뒤따라간 게 아니라 앞서갔다. 스태프진 위에 군림하지 않았고 자만하지 않았다. 생애 400여 편의 영화에 음악을 넣었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보면서는 후반부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의 집념, 열정, 고독이 이해되었기에.
이승하 어릴 때 꿈이 영화평론가가 되는 것이었으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꿈을 접었다.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을 내고도 폭력 연구가 부족하여 『예수·폭력』을 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8월호(통권 11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