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카시] 디카시 시상을 얻으러 떠났던 변산 여행

2024-07-01     김완수(시인, 소설가)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일이 시 쓰기의 먼저이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는 시를 써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시상은 시의 구상構想으로서 건축으로 따지자면 설계도와 같다. 그런데 시인의 사유思惟가 절제된 언어로 구현되는 시에서 시상은 자기 의지에 따라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어떨 땐 뜻하지 않게 얻어지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꼭꼭 숨은 보물처럼 찾기 어려운 게 시상이다. 게다가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신기루 같은 속성이 있어서 시상을 얻는다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 한 장이 시상을 북돋우는 디카시는 시인들에게 매력적인 장르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 등 현대적 촬영 기기로 찍은 ‘사진’과 고전적인 의사 표현 수단인 ‘문자’가 결합된 디카시는 그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사진이란 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디카시는 생생한 시각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사진이 문자라는 텍스트 풀이보다 선후 관계상 먼저여서 일반 시에서의 글감을 얻는 작업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도 디카시를 처음 접한 뒤로 사진이 문자에 녹아드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특히 내 딴으로 생명력 있는 순간을 사진에 담을 땐 낚시꾼들이 느낀다는 손맛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디카시 쓰기가 시 쓰기보다 쉬울 거라는 편견만 갖고 디카시의 사진 제재를 얻으러 나섰다가 큰코다친 일이 있었다.

수년 전 늦가을의 일이다. 내 거주지에서 가까운 지역 명소들을 사진 배경으로 정한 디카시 공모전이 있어서 작정하고 부안의 변산해수욕장에 간 일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해수욕장으로서 예전의 명성이 퇴색했다고는 하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어서 오랜만에 바다로 바람을 쐬러 가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이른바 일석이조의 노림수가 있었다. 그래서 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멋진 사진들을 찍어 보겠다고 한나절 가까이 바닷가 주위를 거닐며 보이는 피사체 하나하나에 휴대 전화 렌즈를 들이댔다. 그리고 계획대로 몇십 장의 사진을 휴대 전화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미 디카시를 다 쓴 것 같아 돌아오는 내내 배가 불렀다. 그런데 그게 큰 착각이란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에 와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들을 쭉 훑어보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풍경이나 사물이 내 인위의 프레임에 갇힌 것 같았다. 사진 속 모습들은 새로이 발견한 의미가 아니라 억지로 찾아낸 의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난감했다. 그 가운데 나은 몇 장의 사진을 추려 봤지만, 도무지 문자가 입혀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나는 사진의 부족함을 문자로 보완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수월하지 않았다. 사진이 인위적이다 보니 문자 역시 자연스럽지 않아 서로 겉돌았다. 결국 나는 문자를 사진에 짜 맞춰 쓴 디카시를 응모했다. 당연히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이맘때면 나비가 꽃을 찾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비는 아무 꽃이나 찾지 않는다. 크거나 화려하다고 섣불리 입을 가져가지 않는다. 나비는 꿀을 얻을 만한 꽃들을 찾아다니고선 알토란 같은 결과물을 얻는 것이다. 내가 나비라면 변산해수욕장이란 꽃을 그저 가벼운 호기심으로 쉽게 찾지 않았을까. 그러니 설령 단물 같은 사진들은 얻었을지언정 꿀 같은 글감은 구하지 못했다. 시라는 본질보다 바다라는 피상에 사로잡혔다는 생각도 든다.

 

디카시는 결코 쓰기 만만한 심심풀이 장르가 아니다. 그럴듯한 사진이 있다고 디카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번지르르한 사진만 찍어 놓고 좋은 디카시를 기대하는 것은 뜸 들이지 않은 밥으로 배를 채우려는 것과 같다. 디카시는 순간의 진실을 포착한 사진과 삶의 이치를 담아낸 문자가 한데 어우러질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발품과 수고가 시보다 곱절로 드는 장르다. 뒤늦게 디카시가 뭔지 깨달은 나는 요즘 디카시를 쓰는 데 시보다 더한 공력을 들이고 있다. 아직도 디카시가 어렵지만, 디카시를 쓰는 재미는 나날이 늘고 있다.

 

 


김완수 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및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에서 성장. 2013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2014년 제10회 5·18문학상 신인상에 시, 2015년 광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작품집으론 시집 『꿈꾸는 드러머』(2019), 동화집 『웃음 자판기』(2020), 시조집 『테레제를 위하여』(2022)가 있음.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