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의 디카시 안테나] 이태관 시인의 「망부목」

2024-07-02     오민석(시인, 단국대 명예교수)

망부목

이태관

 

밤새 뒤척였다
옷고름 풀어 헤치는 소리
새벽닭 울고
떠나간 사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 《디카시》(2024년 여름호, 통권 50호)

 


이태관
대전 출생. 1994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 시집 『어둠 속에서 라면을 끓이는 법』 외.

 


먼 고대로부터 이야기(서사)는 인간이 자신과 세계와 우주를 설명하는 중요한 매체였다. 수많은 신화와 전설, 페어리 테일fairy tale들이야말로 세계를 설명하는 유효한 형식이었다. 18세기에 들어와 소설이라는 근대적 문학 양식이 생겨나고 19세기에 이르러 소설 장르가 전성기에 이르면서 이야기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정점을 이루었다.

그러나 20세기 모더니즘은 서사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의 유효성을 본격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이야기 장르인 소설과 연극에서조차 서사성narrativity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작가들은 인과율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의 정당성을 본격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스트들이 볼 때, 세계는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성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필연성이 사라졌으므로 과거는 설명 불가능한 것이 되었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되었으며, 현재는 부조리한 것이 되었다. 서사가 사라지니 (세계의) 깊이도 사라졌다. 세계는 심도depth 없는 평면이 되었으며, 재현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구름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지 않은가. 긴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들이 사라진 시대에 서사시와 비교할 수 없이 짧은 분량의 디카시에서 서사가 살아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G. Agamben은 “모든 문학은 불의 상실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불은 ‘잊히고 사라진 신비’를 의미한다. 디카시가 서사를 꿈꾸는 것도 이제 서사가 ‘사라진 신비’가 되어버려서인지도 모른다.

이태관은 죽어 무기물이 된 나무에서 장편의 서사를 호출한다. 그는 사진 속의 나무를 “옷고름 풀어 헤치는” 밤을 보내고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내를 그리다 죽은 “망부목”으로 은유한다. 그 사내는 왜 떠나갔을까. 그는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파르티잔이었을까? 아니면 감시의 눈을 피해 몰래 집에 들렀다가 눈 내리는 북만주 벌판으로 떠나 불귀의 객이 된 독립운동가였을까? 사내가 떠난 후에 이 여인은 그를 기다리다 죽을 때까지 어떤 가련한 운명의 삶을 견뎠을까. 이 디카시는 침묵함으로써 더욱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독자들의 상상력이다.

 

 


오민석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 기념 신인상에 시 당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당선. 저서로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등, 평론집 『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 등 다수가 있음. 시작문학상, 시와경계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