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시간을 거슬러 가야를 노래하는 다섯 개의 이야기

김종성 연작소설 『가야를 찾아서』

2024-07-02     설서윤 인턴기자

500년간 꽃을 피운 가야를 찾아 나선 김종성 소설가의 연작소설 『가야를 찾아서』가 지난 5월 31일 출간되었다. 『가야를 찾아서』는 현대와 고대를 넘나들며, 서울과 가락국(김해), 가라국(고령)을 주 무대로 삼은 5편의 중·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평창에서 나서 태백에서 자란 저자는 1986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에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중편소설 「검은 땅 비탈 위」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역사는 과학이지만, 본질적으로 이야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20년 동안 한국 문학과 한국사 연구에 매진하며 값지고 창의적인 결실을 얻었다. 연작소설집으로 탄광촌을 무대로 한 『탄』(미래사, 1988)을 시작으로, 도농복합도시 초림을 무대로 한 『마을』(실천문학사,  2009)을 쓴 바 있는 작가는, 이번엔 현대의 서울과 고대의 가락국(김해)과 가라국(고령)을 들고 찾아왔다.

연작소설 『가야사를 찾아서』는 현대 시간대인 「가야를 찾아서」와 「가야를 위하여」 사이 고대 시간대의 「가락국」, 현대 시간대의 「님의 나라」, 고대 시간대의 「검과 현」을 배치하였다. 또한, 소설에 액자식 구성을 도입해 ‘바깥 이야기’와 ‘안 이야기’로 구분하여 많은 인물의 삶과 궤적을 좇는다.
 

버스의 차창으로 야트막한 산줄기가 솟아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그날 현 교수가 텔레비전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고 하던 말을 떠올렸다. 신녀神女와 함께 구름을 타고 진세塵世를 떠나가다니… 나는 구름을 타고 진세를 떠나간 왕자 주의 생각에 깊이 빠져들어 갔다. 나는 지난 세월이 너무나 허망하다고 생각했다. 광고회사 차장 민기오가 아니라, 사학자 민기오로 지금 이 여행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속으로 뇌까렸다.

- 「가야를 찾아서」, 본문 34쪽
 

단편소설 「가야를 찾아서」의 화자 민기오는 사학과를 졸업했지만, 밥벌이를 위해 해외 광고 대행업체에 입사했다. 광고회사 사원의 닳아빠진 구두 뒤창은 가야사로 상징되는 낭만과 열정의 세계와 대척적인 지점에 있다. 가야 고분에서 나온 오르도스형 청동솥에 빠진 그는 「가락국」이라는 중편소설을 쓰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지만, 일상에 함몰되어 몇 년째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다. 마치 역사를 탐구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 같다. 소망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견디게끔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또 다른 중편소설 「가락국」은 허황옥이 인디아의 아유타국을 떠나 수로왕을 찾아가는 긴 여정과 수로왕과 함께 가락국의 존립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님의 나라」는 가야 고분을 발굴하여 고고학 자료가 출토될 때마다 “임나일본부설이 허구임이 입증되었다”라고 주장하는 우리나라 학계와 언론의 허구를 잡지사 기자의 눈을 통해 그린다.
 

그 후 우륵은 세 제자에게 자신이 지은 12곡도 가르쳐주었다. 우륵이 작곡한 12곡을 배운 세 제자는 12곡이 번잡하고 음란하여 우아하고 바르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5곡으로 줄여 버렸다. 우륵은 이 소식을 듣고 제자들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아 눈알이 곤두섰다. 그러나 새로 줄인 5곡을 모두 듣고 난 뒤에는 눈물을 흘렸다.

“공자께서 ‘『시경』의 「관저關雎」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즐거우면서도 지나치게 즐겁지 않고, 슬프면서도 지나치게 슬프지 않구나. 이것이 정말 바른 음악이로구나.”

우륵이 말했다.

- 「검과 현」, 본문 282쪽
 

「검과 현」은 백제와 신라의 침략에 맞서 가야 소국들이 존립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현으로 상징되는 우륵의 예술이 검으로 상징되는 성왕·진흥왕·가실왕의 정치에 맞선다. 마지막 단편소설 「가야를 위하여」는 『가야를 찾아서』의 에필로그 같은 작품이다. 28년 만에 왕삼종의 전화를 받은 그는 가야사 학술회의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이동하며 그는 서울로 가서 공부해 보겠다는 꿈을 품고 탄광촌에서 몸부림친 지 15년 만에 34살의 나이에 대학 사학과에서 공부할 기회를 잡았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역사서를 통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 돼주었다고 술회한다.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가야에 관한 자료를 읽던 저자는, 가야사를 둘러싸고 있는 고대 가야 소국들이 영남과 호남의 각 지역에 자리 잡고 멸망할 때까지 공존과 경쟁의 양상을 보이며 병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한국 고대사에서 실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야의 역사를 소설로 복원하겠다는 열망으로 작품을 써왔다. 1992년 중편소설 「가야를 찾아서」를 발표한 이후, 그는 가야를 소재로 한 소설 「님의 나라」를 포함한 4권의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소설로 묶어 개작한 것이 올해 발표한 연작소설 『가야를 찾아서』이다.

탄탄한 묘사력과 풍부한 어휘력으로 삼국에 가려 그 존재조차 희미했던 가야를 조명하고, 시대적 삶의 본질과 진실에 대한 굳건한 문제의식을 보여준 김종성의 『가야를 찾아서』는 2024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뜻깊은 통찰력과 진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일독을 권한다.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