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악동에서 뮤지션으로 - 악뮤(AKMU)의 《항해》

2019-11-01     서영호(음악가, 본지 편집위원)

대한민국 남자에게 군대란 뭘까. 휴전국 상황에서 국토방위의 의무를 모두가 공평히 분담하자고 하니 그 논리와 취지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군 복무라는 것을 한 개인의 인생사에서 보면 어떤가. 입대와 제대를 전후해서 약 2년간은 사회와 격리된 채 각자의 인생 진로에서 뚝 잘라내어 한동안 군인으로 살아야 하니, 흔들림 없고 효율적인 조직 구동을 위한 절 대복종과 획일화된 생활도 불가피하다. 특히 자신만의 사고와 개성을 부정당해야 하는 군 생활은 예술가들의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다. 체형도 사고방식도 획일화시킨다는 군대 아닌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도 여기다 쓰면 서운하다. 

기억해보면 개인적으로는 연주에 몰두했던 입대 전 당시의 기량과 감을 잃지 않는 것이 군 시절 동안 내가 지켜내야 할 무언가였다. 피아노를 치기 위해 교회에 나가 주님 품에 안기려고 노력도 해보았고 취침 소등시간 이후 밤잠을 줄여가며 악기도 없이 좋은 연주를 채보하기도 했다. 이렇게 군에 다녀와서는 군 복무의 장점을 애써 찾으며 자위하기도 하는데, 조직 생활에서 살아남는 눈치 고단수가 되었다든지, 삽질과 곡괭이질의 장인이 되었다든지, 밥을 좀 더 빨리 먹게 되었다든지… 우리 모두의 짠한 이야기다. 여하튼 군 생활에서 얻은 것도 없진 않지만 개인 고유 개성의 보존이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는 역시 부정적이다.

악동뮤지션이 멤버 이찬혁의 군 복무 이후 3번째 정규앨범 《항해》를 발표했다. 해병대에 자진 입대한 이찬혁은 군에서 배를 타고 돌아다닌 한 달여 간 수록곡의 대부분을 썼다고 한다. 또 밤에 취침시간을 포기하고 쓴 글로 『물 만난 물고기』라는 소설도 발표했다. 우리가 논할 것은 결국 결과물인 음악의 미덕이겠지만 이 음악들의 탄생 경위를 살펴보는 데 있어 ‘작가의 군 복무’라는 사건은 흥미롭게 고려해 볼 만하다.

작가에게 음악적 환경의 결핍은 오히려 더 간절한 창작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장비와 장소가 문제는 아니었다. 한 달여 간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경험은 곧 창작의 불씨가 되었다. 가진 거라고는 볼펜과 수첩뿐이었던 이 항해에서 건져 올린 멜로디들을 달달 암기해 두었다가 이후에 곡들로 풀어냈고 이 노래들이 ‘항해’ 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악동뮤지션의 인터뷰를 보면 이번 앨범의 화두가 ‘떠남’, ‘성숙’ 등 이었다고 이찬혁은 고백하고 있는데 그에게 군 복무 시기는 곧 성찰과 성숙의 시기였음을 의미한다. 군 복무가 누구에게나 성숙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정신적 황폐를 가져오기 쉬운 이 시간을 이찬혁은 자기객관화와 성찰의 기회로 승화시켰다고 하면 과장일까. 아니면 최소한 이를 위한 작은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군 생활도 일종의 떠남이고 기존생활로부터의 벗어남이다. 이 비자발적 격리는 그러므로 나무가 숲을 떠나 숲 전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떠남’은 자신이 속해 있던 곳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주고 이런 관찰은 곧 성찰로, 성찰은 성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예술가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국, 전 세계를 돌며 생의 대부분을 떠돌이 투어 생활로 보냈던 그 숱한 뮤지션들에게 새 음악을 위한 영감을 끊임없이 대주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을까.

입대 시점부터 “유행을 타지 않는 멋과 가치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는 음악적 성숙에 대한 숙고의 결과는 이번 앨범에 꽤 성공적으로 담겼다. 이전까지 이 남 매의 음악에서 유행과 시장을 의식한 재치와 끼들이 다소 두서없이 서로 아우성치는 가운데 그 사이사이로 재능이 엿보였다면, 이번 음악에서는 탄탄한 재능이 안정적으로 틀을 잡고 있는 가운데 그 사이사이를 감각과 재치가 매끄럽게 이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팝 음악의 뿌리를 이루는 각 음악 장르들에 대한 이전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접근에 한국적 정서를 성공적으로 얹었다. 이 ‘항해’의 시작에서는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베인 <뱃노래>를 담대하게 내세우고, <물 만난 물고기>에서는 컨트리의 장점을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였다. 전형적인 K-발라드인 타이틀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함으로써 앨범의 다른 곡들도 청자들에게 가 닿을 수 있게 해준다. R&B와 소울 풍의 <달>과 <고래>, 모던록과 블루스 록의 장점을 살린 <Freedom>과 <더 사랑해줄걸>, 잔잔하지만 여운 있는 포크성향의 <작별 인사> 등 이들은 자신들의 장점인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며 모든 장르에서 그에 적합한 멜로디와 창법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이전보다 조화롭게 조율된 발산과 절제, 그리고 곡 구성의 완성도는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 ‘유행을 타지 않는 멋과 가치’를 향한 진일보를 보여준다.

이 ‘항해’을 기점으로 악동뮤지션은 공식 명칭을 악뮤(AKMU)로 개명했다. 더이상 자신들이 단지 장난기 어린 까불이 악동이 아닌 성숙한 뮤지션이라는 그들의 선언에 동의한다.

 

 

* 《쿨투라》 2019년 11월호(통권 6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