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패터슨] 고요함과 디테일로 빚어낸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
[2018 오늘의 영화 - 패터슨] 고요함과 디테일로 빚어낸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
  • 이재복
  • 승인 2018.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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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감독 '패터슨'
ⓒ그린나래미디어

어떤 영화를 보면서 집중과 공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관객의 감각과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여 집중을 이끌어내는 영화라 하더라도 그 집중이 반드시 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이 보편적인 만족의 대상으로 존재할 때 느끼는 인간의 감정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단순한 감각이나 욕구를 넘어선다. 공감이 이러하다면 영화에서 다양한 관점과 차이를 지닌 관객들을 어떻게 보편적인 만족의 대상으로 이끌 수 있을까? 이 물음이야말로 영화에서의 아름다움 혹은 미학이 작동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아름다움(미)만큼 보편적인 만족의 대상인 것이 또 있을까? 이때의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관점과 차이를 포괄하는 보편성’을 말한다.

인간의 보편적 만족의 대상인 아름다움은 세계 내에 은폐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발견은 개념화된 논리가 아닌 직접적인 의식을 통한 섬세하고 치밀한 주의와 집중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는 세계의 경우에도 그 이면에는 우리를 보편적 만족의 대상으로 이끄는 아름다움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 쉬운 대상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일상’은 특별한 데가 있다. 우리는 일상을 틀에 박힌 반복과 지루하고 단조로운 흐름 정도로 간주하여 그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일상 내에 은폐되어 있는 새롭고 낯선 세계(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일상이 틀에 박힌 반복과 지루하고 단조로운 흐름 정도로 인식되는 데에는 우리가 일상에 직접적인 의식의 투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학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일상을 낯설게 하기’란 이러한 상투성에 대한 파괴 및 해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 우리의 직접적인 투사가 이루어지면 그 일상은 미묘한 변주와 차이의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어 우리는 일상의 이면에 은폐되어 있는 새롭고 낯선 세계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린나래미디어

짐 자무쉬의 〈패터슨〉은 이러한 일상의 변주와 차이에 주목해 그 이면에 은폐되어 있는 세계의 의미를 발견해내고 있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 영화는 패터슨시의 버스기사인 패터슨이라는 인물의 한 주 동안(월요일에서 시작해 다음 주 월요일까지)의 일상에 초점이 놓여 있다. 패터슨의 일상은 반복적이고 단조롭다. 아침 6시 12분에서 30분 사이에 기상하여 우유와 시리얼로 배를 채운 뒤 도시락과 노트가 든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서 출근한다. 버스회사에 출근해서는 버스 운행 매니저인 도니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23번 버스를 몰고 정해진 코스를 따라 운행을 한다. 점심은 아내인 로라가 싸준 도시락을 폭포 앞 벤치에 앉아 먹고 오후 3시쯤 퇴근한다.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마빈과 산책을 한 뒤 단골 바에 들려 맥주를 한 잔 마신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그의 일상은 단조로운 반복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단조로운 반복을 넘어 미묘한 변주와 차이를 드러낸다.

하루의 시작은 침대 위지만 그와 아내의 모습과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조금씩 다르다. 어떤 날은 패터슨보다 로라가 먼저 잠에서 깨기도 하고, 또 패터슨에게 어떤 날은 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패터슨의 몸 냄새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침 집에서 보여지는 이 미묘한 차이는 회사와 버스 운행 과정에서도 드러나고 또 저녁 단골 바에서도 드러난다. 아침마다 달라지는 회사 동료인 도니의 푸념이나 어떤 날은 허세로 가득한 동네 남자들의 이야기가, 또 어떤 날은 무정부주의자 학생들의 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버스 안의 풍경은 반복 속에서의 변주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변주가 버스의 고장이나 단골 바에서처럼 스티로폼 총알이 든 장난감 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의 변주에 다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변주가 생뚱맞거나 생경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데에는 그것이 일상의 한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일상의 변주는 패터슨의 시선이나 행동을 통해 제시된다. 그는 자신이 대하는 일상을 반성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자신이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이 그의 반성적인 의식을 매개로 하여 제시되는데 영화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이다. 그에게 시는 일상의 반성된 형식이다. 이것은 일상이 따로 있고 시가 따로 있는 존재 방식이 아니라 둘 사이의 경계가 해체된 그런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그의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시적 잠재성을 지닌 채 존재하고, 그가 시 쓰기를 하는 순간 그 일상은 그만큼 변주되어 드러난다. 그가 아침에 출근하여 23번 버스를 몰고 나오기 전 운전석에 앉아 시를 쓰는 순간 변주와 차이를 동반한 일상은 탄생한다. 또 점심시간 폭포 앞 벤치에 앉아 시를 쓸 때나 잠들기 전 지하실 서재에 앉아 시를 쓸 때 역시 변주와 차이를 동반한 일상은 새롭게 탄생한다. 시로 승화된 일상이 아니라 일상으로 승화된 시의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 투영되어 있는 아내의 이미지라든가 확성기 모양이 그려진 성냥갑, 저녁 산책 후 단골 바에서 맥주를 마실 때 보게 되는 잔, 버스를 운행하면서 느끼는 길, 와이퍼, 비 등의 이미지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일상으로 승화된 시적 질료라고 할 수 있다.

ⓒ그린나래미디어

일상으로 승화된 시의 세계의 모습은 그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집안의 커튼과 자신의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기타 연주와 컵케이크 만드는 일에 행복을 느끼는 그의 아내 로라, 옛 공장 근처에서 만난 시 쓰는 쌍둥이 소녀, 꽂히면 어디서든 랩을 한다는 코인 세탁소에서 만난 사내 그리고 자신은 시로 숨을 쉰다는 폭포수 앞 벤치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시인 등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자신이 쓴 시를 애완견 마빈이 갈기갈기 찢어발겨 놓은 후 상실감에 젖어 있는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주면서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리는 일본인 시인의 모습은 시 역시 매일 매일 새롭게 변주하는 일상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환기한다. 시 혹은 시의 언어를 통해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 재현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순간이 시가 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빈 노트는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시인이 보인 이러한 의도를 알아차린 패터슨은 펜을 꺼내 그 빈 노트에 다시 시를 쓴다.

패터슨의 이러한 시쓰기의 지속은 그의 일상의 성숙이면서 동시에 일상으로 승화된 시의 성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시를 쓰면서 일상에 대한 반성적 의식을 키워가기 때문에 그의 내면은 더욱 고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 고요는 세계와의 불화로 인해 깨져버린 평정을 겨냥하면서 단순한 감각이나 욕구로 채워질 수 없는 어떤 보편적인 만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버린 자신의 주체성과 존재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는 시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며, 이때 여기에서의 시는 일상의 깊은 곳, 다시 말하면 고요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깊은 곳까지 굽어보는 하나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일상의 이면에 은폐되어있는 세계는 일상을 틀에 박힌 반복과 단조로운 흐름으로 보는 그런 상투적인 의식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의 이면에 은폐되어 있는 세계는 영화 속 패터슨처럼 일상에 대한 깊고 고요한 응시와 사소한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챙기는 태도를 통해서만이 그 전모가 드러날 수 있다. 우리가 이 영화 〈패터슨〉을 보고 감동하고 또 이 세계에 공감 했다면 그것은 시적인 고요함과 디테일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내려는 〈패터슨〉(감독)의 의도와 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보고 시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보고 여기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이런 점에서 패터슨은 이미 훌륭한 시인이다. 그가 일상 속에서 발견한 것들은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시 아닌가!

 

 


이재복 문학평론가.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 문학과 몸의 시학』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등이 있음. 고석규비평문학상, 젊은평론가상, 편운문학상, 애지문학상 수상. 《쿨투라》 《본질과현상》 《시와사상》 《시로여는세상》 편집위원. 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겸 한양대 미래문화연구소 소장. momjb@hanmail.net

 

* 『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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