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빌리 아일리시의 기묘한 이야기
[음악 월평] 빌리 아일리시의 기묘한 이야기
  • 서영호(음악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5.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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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너의 친구를 묻어라’라는 노래 속 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아직도 정확히 이해되지 않지만 〈Bury a Friend(친구를 묻어라)〉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던 첫 도입부 10초만으로도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가사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풍기는 어딘가 서늘한 곡의 정서는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뭔가 으스스하고 불편하고, 기괴하지만 매력적인 뮤비는 가수에 관한 또 다른 영상의 클릭을 유도한다.

 이쯤되면 이미 입구는 등 뒤로 희미하고 동굴의 중간까지 와버린 거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돌아가는 길보다 눈 앞에 펼쳐진 수 갈래 길 중 어디 먼저 들어가 봐야 할지에 정신이 팔린다. 빌리 아일리시라는 동굴이다. 전형적인 이 시대 ‘입덕’의 과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입덕의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빌리 아일리시를 나의 관심 뮤지션 목록에 끼워 넣게 되었다.

 누군가는 ‘네 친구를 묻어라bury your friend’, 나 ‘네 혀에 스테이플러를 박아라staple your tongue’ 같은 과격한 가사의 뒷배경이 궁금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검은 피눈물을 흘리는 눈,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의 장면이 담긴 기괴미 가득한 뮤직비디오에 끌렸을 것이다. 음악의 완성도만으로 청자를 끌어모으기 쉽지 않은 오늘의 음악 소비 환경에서 빌리 아일리시의 콘텐츠는 기존의 가수들과 분명 다른 소구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매우 효과적이다. 〈친구를 묻어라Bury a Friend〉를 비롯해 〈네가 게이였으면 좋겠어Wish You Were a Gay〉, 〈모든 착한 소녀들은 지옥에 간다All the Good Girls Go to Hell〉 등에서 이 새로운 유형의 스타는 아름답고 팬시한 것들을 내세우기보다는 현실과 상상 속을 오가며 어둡고 기괴하고 불안감으로 뒤섞인 화자를 내세운다. 때로 그것은 다 소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자기 학대나 파괴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녀에게 우리는 등을 돌릴 수 없다. 거기에 영국과 미국에서 발매와 동시에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고 특히 빌보드 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1위를 차지한 여성 뮤지션이 된 그녀가 이제 만 17세라는 정보는 그녀와 그녀의 음악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오히려 그녀가 아직 틴에이저라는 사실은 청자들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던, 그녀에게 다가올 것만 같은 다소 우려스러웠던 미래의 풍경을 걱정스러운 어둠의 나락에서 여느 성인의 것의 울타리 안으로 포섭시킨다. 10대 시절의 불안과 불확실로 인한 혼란, 그리고 그런 것들이 과장시키고 치닫게 만들었던 생각의 덩어리는 어른이 되면서 (다행히도) 비눗방울처럼 터져 사라져버리기 일쑤인 것을 우리는 경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앨범 후반부의 곡들을 보면 어느새 여느 10대 소녀의 순수와 낭만을 드러내고 마는데 이 또한 흥미로움에서 실망으로의 과정이라기보다는 공감과 다독임의 감정이입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이 앨범의 설득력이다.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물론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은 감각적인 음악이다. 항간에서 그녀에게 ‘21세기의 너바나’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는 점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녀의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특히 〈Bury a Friend〉 같은 대표곡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묵직하고 건조한 베이스 라인과 드럼비트, 그리고 멜로디와 한 두 줄의 보컬 화성만으로 이루어진 절제된 화성 제시는 음악적으로 명쾌하게 포착 불가한 지점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보다 열린 가능성의 공간을 확보하며 전통적인 작법에서 탈피한 신선함을 준다. 마치 비통에 빠진 파이스트Feist나 마음이 식어버린 카디건스The Cardigans가 스쳐가는 빌리의 목소리는 쓸쓸한 달콤함, 황량한 끈적임을 얹어주고 거기에 신경을 긁는 치과 드릴 소리나 오븐 알람 소리 같은 효과음들이 적소에 배치되어 그녀만의 묘한 음악적 색깔을 만들어 낸다. 과감하고 확신에 찬 선명한 사운드 구성과 그 가운데에서도 놓치지 않고 포착되는 정교하고 섬세한 소리 같은 요소들에서는 그동안 봐왔던 좋은 음반들의 미덕이 떠오른다. 빌리 아일리시의 이야기와 상상들 속에는 어찌 됐건 현재 미국의 10대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가 그 이야기를 담는 방식과 그것을 음악적, 시각적으로 세상에 풀어 보여주는 방식은 기존의 아이돌에 식상함을 느끼던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쿨투라》 2019년 5월호(통권 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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