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에서: 에릭 윈퀴스트 VFX 슈퍼바이저
[인터뷰 -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에서: 에릭 윈퀴스트 VFX 슈퍼바이저
  • 설재원 편집장
  • 승인 2024.04.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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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에릭 윈퀴스트 VFX 슈퍼바이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이하 〈새로운 시대〉)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웨타Wētā의 에릭 윈퀴스트 VFX 슈퍼바이저를 만났다. 웨타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시각효과 전문 회사로 〈혹성탈출〉, 〈아바타〉,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등의 시각효과를 만들어 냈다.

풋티지 시사와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선보인 〈새로운 시대〉는 한층 자연스러워진 유인원의 퍼포먼스와 압도적 스케일의 비주얼로 VFX 기술의 최전선을 확인시켜 주었다. 곧이어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에릭 윈퀴스트의 목소리에는 이유 있는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그와 함께 나눈 〈새로운 시대〉의 작업 과정과 비하인드를 전한다.

 

안녕하세요. 영화는 시작부터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흥미로운 볼거리에서 출발한 영화는 당대의 최신 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 종합예술이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명제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 역시 2024년 현재의 테크놀로지 최전선을 보여주리라 기대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점에 두고 작업한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활용된 최신 기술과 〈새로운 시대〉만의 변별점이 있으면 이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말하는 캐릭터입니다. 이전 3부작에서도 말하는 캐릭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때는 보통 수화를 한다거나 외마디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고, 말을 하면 단음절 정도였습니다. 이번 작품도 대본에는 여전히 유인원이 생리학적으로 말을 하기 힘들다고 나와 있지만, 이번엔 훨씬 더 말을 많이 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했던 일은 유인원의 얼굴 퍼펫(인형)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말할 때 유인원의 입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움직임을 퍼펫을 통해 정확하게 구현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부분을 특별히 공들였습니다.

다음으로 저희로서 도달할 수 있는 몇 가지 마일스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풀이었습니다. 영화 중반부에는 유인원들이 풀숲에 숨어 있는 여자 아이를 찾기 위해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촬영을 진행했던 로케이션에는 그런 풀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들판을 추가해야 했고, 이곳 전체를 덮을 수 있을 만큼의 키가 큰 풀이 필요했습니다. 또 하나 신경써야 했던 건 유인원이 잔디밭을 휘젓고 다니는 만큼 풀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에 개봉한 시리즈의 전작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하 〈종의 전쟁〉)과 이번 작품은 7년여의 시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7년동안 VFX 산업에서는 엄청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슈퍼바이저님은 〈종의 전쟁〉에도 참여하셨는데요, 당시에 구상했지만 실제 구현하지는 못했던 것 중에 이번 작품에 선보인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페이셜 솔버가 있습니다. 페이셜 솔버를 사용하면서 애니메이터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두 대의 카메라에서 얻은 데이터를 처리한 뒤에 솔버를 통해 스테레오 뎁스 매치를 생성하고 그 과정에서 머신러닝 기능을 활용하였습니다. 배우의 얼굴을 계속 학습시키면서 모양을 다듬다보면 작품 진행에 따라 데이터가 쌓인 뒤에는 애니메이터는 애니메이터대로 캐릭터 작업에 익숙해져 있고, 툴셋은 툴셋대로 배우의 얼굴을 어떻게 유인원에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게 돼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배우가 연기를 하면 그게 캐릭터에게 어떻게 구현되는지 더욱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단계에 이르면 얼굴 모양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은 솔버에 맡기고 배우의 연기와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 장면만 찾아 페이셜 에니메이터가 다듬는 식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애니메이터가 전부 다 손봐야 했었는데 이런 방식 덕분에길이가 긴 숏을 많이 넣을 수 있었습니다. 컷 전환이 빠른 〈어벤져스〉나 마블 영화와 비교하면 아마 〈새로운 시대〉는 전체 컷수가 절반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굳이 컷을 분할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거죠.

 

이번 〈새로운 시대〉는 시저 3부작 이후의 첫 이야기로, 시저 사후 300여 년이 지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세계를 만들 때 새로움과 변화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의 배경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은 호주에서 찍었는데요, 촬영 단계에서 항상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했습니다. 그러니까 웨스 감독 같은 경우에는 ‘저 바위를 철근과 녹이 보이는 건물 같은 걸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걸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요. 저희는 눈에 잘 띄지는 않더라도 가능한 모든 장면에 조금은 손을 대려고 신경 썼습니다. 녹음이 우거져 거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 구조물을 보면 저희가 얼마나 더 기술적으로 발전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유인원입니다. 201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저 3부작은 실제 침팬지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시저의 키 같은 부분 등은 자유롭게 설정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실제 침팬지에 기반한 형태를 보이고 있어요. 시저 3부작과 이번 작품이 고작 몇백 년의 시차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희는 시저 3부작부터 시작해 60-70년대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았던 오리지널 〈혹성탈출〉(2673년 배경)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 사이에 〈새로운 시대〉가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리지널 〈혹성탈출〉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유인원 분장을 했기 때문에 유인원이 사람 크기의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번 작품의 유인원은 다리를 시저 3부작 때보다 조금 더 길게 만들어서 오리지널 〈혹성탈출〉 시기로 조금 더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이전 작품에서는 유인원을 말에 태우면 다리가 짧아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점이 저희로서는 고민이었는데 유인원의 다리가 길어져 말을 타는 모습을 구현하는 게 더 쉬워졌고 작품 내 유인원이 말을 타는 장면도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의상이 있습니다. 이제 작품에서 옷 입은 유인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전작에서 보았던 것 이상이고, 옷을 통해 유인원의 지위와 처지가 드러나요. 프록시무스 시저를 위해 일하는 약탈자들은 갑옷 같은 것을 입고 있고, 독수리 부족 유인원들의 복장에는더 자연스러운 섬유 요소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인원들이 장신구와 보석을 착용하면서 〈혹성탈출〉 프랜차이즈의 방향성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다른 인터뷰를 찾아 보니 물 활용에 꽤나 공들였다고 들었습니다. 강이나 젖은 유인원은 이전에도 등장하기는 하는데 이번 작품에서 이 부분이 어떤 식으로 더 발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물작업처럼 이번 작품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킨 표현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이번 작품에서는 유인원이 강이나 급류와 함께 나옵니다. 그래서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는 대낮의 격렬한 물살 장면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이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고, 저희는 지난 몇 년간 〈아바타: 물의 길〉을 준비하며 개발한 것들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바타〉에 등장하는 물은 열대의 맑고 아름다운 물로, 저희에게 필요했던 격렬하고 탁한 급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바타〉에 활용했던 여러 기술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가 가야 할 방향은 이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웨타의 독점 기술인 워터 솔버 개발자들이 참여했고, 이들은 시뮬레이션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장면, 특히 물속에서 주인공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여러 단계의 시뮬레이션이 필요한데, 워터 솔버 덕분에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수리도 있습니다. 디즈니에서 에피소드 형식의 TV 시리즈인 〈피스메이커〉를 제작했는데, ‘이글리’라는 대머리독수리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죠. 그래서 스튜디오에 있던 상용 깃털 툴셋을 사용하여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독수리 제작에 들어가던 시기에는 깃털을 배치하고 깃털의 스타일을 지정할 수 있는 새로운 그루밍 툴셋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상용 툴셋으로 작업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루머가 작업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깃털 툴셋이 필요한 기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미지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몇 가지 손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깃털 그루밍 툴셋을 사용했는데, 그 결과 놀라운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슈퍼바이저님이 하시는 작업은 아이디어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감독과의 호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부터 새로 참여한 웨스 볼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또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웨스 볼은 제가 함께 일했던 그 어떤 영화 제작자보다 VFX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고 있어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3D 애니메이션 출신이거든요. 그는 무엇이 쉽고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고 저희와 말이 통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영화를 웨타와 함께했고 저희는 늘 서로를 존중하며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는 그의 미학이 무엇인지, 그가 촬영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 아주 예리한 안목을 지니고 있는데, 카메라가 숏을 돋보이게 해야할 때나 반대로 산만하게 만들어야 할 때 이런 부분들을 정말 잘 다뤄요. 그래서 저희는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또 하나 언급할 점은 그가 정말 재밌는 사람이고 약간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다는 거예요. 그는 직접 소리를 내 사운드 효과를 보여주거나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곤 하는데, 이런 방식 덕분에 말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도 팀원들에게 잘 이해시켰어요. 다음에도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

 

〈혹성탈출〉과 같이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에는 사운드의 중요성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사운드팀과의 협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희 작업 방식에서는 사운드 부서와 협업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운드 팀은 사후에 또는 저희가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영상에 사운드를 넣었는데,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한 장면에서 애니메이션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사운드 팀이 발자국 소리, 바스락거리는 땅 소리, 털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 필요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애니메이션 단계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라도 최종 버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적절한 요소를 추가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노아가 메이의 냄새가 나쁘다고 농담을 하고 라카가 냄새를 맡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에서 배우가 그러진 않았는데 저희가 나중에 따로 라카의 콧구멍을 줄여 놓았어요. 사운드 팀이 그걸 보고 킁킁 소리를 얹어주었는데 이게 캐릭터에 놀라운 생동감을 불어넣어줬습니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누가 뭐래도 극장용 대형 스케일 관람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극장 환경도 많이 바뀌었는데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이 특별관의 성행입니다. 〈종의 전쟁〉이 개봉된 2017년보다 IMAX와 4DX, 스크린X, 돌비 등 특별관이 더 대중화되었고, 〈혹성탈출〉은 이런 특별관을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인데요, 특별관을 염두에 두고 더욱 신경쓰신 부분이나 극장에서 볼 관객들이 눈여겨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지난 10-15년 동안 새롭게 등장한 특별관을 아주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작업 단계에서는 따로 특별관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작업 계획에 이러한 부분도 포함되면 좋을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면서 이러한 준비를 함께 하게 되면 특별관 상영에 필요한 부분을 저희가 더 쉽게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스크린X를 예로 들면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까 몇 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도 관객이 최고의 경험을 하길 바라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담당하는 다른 업체와 최대한 협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더 많이 도울수록 감독이나 관객 모두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프로젝트가 무엇이든 이 부분은 반드시 고민해보려 합니다.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를 시작해야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대형 스크린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스크린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작업 초기부터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노트북 화면에서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3열에 앉은 관객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디테일을 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네요. 바쁘신 와중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캐릭터가 환상적이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이 작품의 내러티브나 캐릭터의 즐거움을 가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극장에 들어서고 5분 안에 모두가 디지털 캐릭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그저 작품에 몸을 맡겼으면 좋겠어요!


사진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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