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한 현실을 견디고 이기는 겨울날의 시도 있다.
하운 시인은 “시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
시를 통해 세상을 만나는 창의적 방식
재미 의사 시인 하운의 두 번째 시집 『뉴욕 아리랑』!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 시인 하운(본명 하명훈, Edward Ha)의 두 번째 시집 『뉴욕 아리랑』이 도서출판 작가 기획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저자 하운 시인은 1971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과대학 재활의학과 임상교수로 있다. 1996년 월간 《문학 21》을 통해 등단했으며 2000년 계간 《시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으니, 문단 이력이 30년에 가깝다. 2002년에 첫 시집 『징소리』를 상재한 이후, 이번 두 번째 시집은 20여 년 만이다. 하운은 2014년부터 2년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재임 시 연간 협회지 《뉴욕문학》을 영문으로 번역한 《New York Literature》를 출간하였다.
하운 시인의 새 시집 『뉴욕 아리랑』에는 5부로 나뉘어 총 72편의 가편들을 수록하였다. 이 시집은 그가 스스로 발화한 세계관이요 인생론이다. 그의 세계에는 연하고 부드러운 봄기운의 시가 있는가 하면, 엄혹한 현실을 견디고 이기는 겨울날의 시도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만나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글쓰기를 선택했다.
1부 「징소리는 아직도」는 힘든 세상과 험난한 삶의 환경을 여러 모양으로 보여주면서, 그 질곡을 넘어 새로운 소망을 지향하는 시적 화자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시집에는 시와 시조가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사뭇 단단하게 축조된 시조의 언어들은 이 시인이 우리 시의 전통적 형식에 만만찮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증거 한다. 이 시인의 시에는 네 계절 가운데서도 봄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 형상화에 진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계절로서의 봄은 삶의 여러 굴곡을 넘어 마침내 도달할 목표 지점을 상징한다. 그런 만큼 그의 시들은 내일에의 소망이 시의 행간에 잠복하는, 보다 진전된 창작의 방식을 동원한다.
가끔은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본다
굴절된 빛이 그리는 낙서 투성이인 세상
연습이라면 좋았을 세상을
적당히 보아 넘긴다, 미치면 안되니까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세상이 얼마나 측은했는지
눈보라는 어설픈 감정 얼룩진 세상을
몸 부수어 쓸어안고
가을부터 건들거리며 서 있는
허수아비를 허수아비라 확인해 주고 있다
왜 안경이 필요한가 농장에서는 수확이 별로 없었다
바람 부는 날, 바람결에 몰려오는
알갱이와 쭉정이를
가려내기 힘겨워 비틀거린다
북서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새해 첫날부터 비가
그것도 겨울비가 멎을 줄 모르고 있다
비가 멎으면 안경을 끼고
낙서와 얼룩이 씻겨나간 자리에서
연습 끝이란 팻말을 확인하고
새롭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싶다
- 「세상보기」 전문
이 시인이 시의 첫머리에 떠올리는 세상은 언제나 ‘문제적’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세상이 ‘얼마나 측은’했는지 모른다. ‘가을부터 건들거리며 서 있는 허수아비’ 또한 그렇다. 그래서 화자는 ‘가끔은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본다. 적당히 보아 넘기기 위해서다. 농장에서는 ‘수확이 별로’ 없고, ‘알갱이와 쭉정이를 가려내기’가 힘겹다. 새해 첫날부터 비가, 그것도 겨울비가 멎을 줄 모르고 있으나 시인은 결국 ‘새롭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싶어 한다. 이 새로운 세상의 형용이 시인에게는 곧 ‘봄’이다. 「꽃시샘」에서 ‘조만간 밀어닥치는 봄기운’이나, 「봄길에서」에서 ‘숨결을 터주는 봄볕’이나, 「돌아오기」에서 ‘봄이 오는 거리’가 모두 그렇게 봄을 노래한다.
또한 이 시인에게 있어 ‘징소리’는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더 특별하며, 앞서 언급한바 그의 첫 시집 표제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저 붉게 흔들리던 6월’과 같은 역사의 기억이 있고, ‘우리가 다시 돌아오고 만 절망의 벽 사이’와 같은 체험의 기록이 있다. 삶이 곤고하고 절박하여, 희망의 날을 찾아 ‘그 울림’을 의식할 여유가 없다. 그런데 ‘벽은 미동도 않고’ 있는 그 패퇴와 멸절의 자리에서 ‘우리의 기도’는 다시 시작된다. 이 재생과 회복의 국면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이 시적 화자의 의식이요 정체성이다. 「촛불의 얼굴」에서 ‘모든 이들의 기도’나 「촛불과 봄비」에서 ‘온 누리 채워주는 빛’이나, 「조국아, 조국아」에서 ‘난초꽃 바람 헤치며 피는 날’과 같은 소망의 언어들이 하운 시 세계의 중점적인 요목들이다.
2부 「뉴욕 아리랑」에 실린 시들 가운데 몇 편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시인의 사유를 표현한다. 동시에 2부의 많은 시편이 계절이나 절기 또는 지인들의 삶에 대한 축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시인이 가꾸어온 인간관계나 세상살이의 방식을 짐작하게 하는 시들이다.
한여름 태양 아래
너의 갈증이 생과 사의 그림자를
번갈아 불러올 때
기쁨과 후회가 엇갈리는
마음을 졸였다
단풍마저 떠난 후
눈 속에서의 외로움을 이겨낸 너
너의 가슴을 안고 싶다
겨울 녹이는 계절이
더 높은 하늘 끝없는 평원이
네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
- 「너를 위한 노래」 부분
이 시의 화자는 시인 자신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절실한 감정이 전달되어 오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나’의 상대역으로 ‘너’가 등장한다. ‘너’가 처한 상황은 각박하고 어려운 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찬 바람이 휘감는 이 밤’을 견뎌야 하고, ‘꽃샘바람이 빗발을 날리던 날’에 집을 나선 형편이다. ‘너의 갈증이 생과 사의 그림자를 번갈아 불러올 때’ 시인은 마음을 졸이며 지나왔다. 그리고 ‘눈 속에서의 외로움을 이겨낸 너’에 대한 기대를 표출한다. 이 시는 그러므로, ‘너’의 새로운 삶과 그 지평을 희구하는 ‘나’의 간곡한 권면에 해당한다.
꾸밈없는 욕망, 예수의 수난과
연관하여 생각해 본다
당당한 풍모로 점잖 빼며 걷고 있다
극장에서 카바레 그리고 여인숙으로
브로드웨이 무지개 불빛이
거침없는 방탕, 기쁨 함께 태우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꿈꾸듯이 서성이며
눈부신 거리를 응시한다, 다만
내 마음, 나의 가슴은 외로워
- 「브로드웨이에서」 부분
이 시는 Claude Mckay라는 시인의 시를 번역한 것인데, 이 시집에서 하운 시인이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시다. 뉴욕하고도 그 중심에 있는 브로드웨이에서 원작자 시인이 지닌 감성은 활발하기 이를 데 없다. ‘생기 있고 거침없는 나의 발길’이 ‘화려한 길’을 서성이고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의 ‘밝고 환상적인 붉은 빛’ 속에 ‘내 마음, 나의 가슴’은 외롭다. 이 상대적인 감정의 대립은, ‘꾸밈없는 욕망’과 ‘예수의 수난’이라는 또 다른 대칭적 발화 방식을 불러온다. 그 ‘눈부신 거리’와 ‘나의 외로운 가슴’은, 기실 시인만의 감각일 리 없다. 우리 모두 그와 같은 양가적(兩價的) 삶의 기반 위에서 오늘과 내일을 이어가고 있는 터이다. 하운은 그에 공감하여 이 시를 여기에 수록한 듯하다.
3부 「계절은 오간다」는 그렇게 시인이 경험한 사계절을 순차적으로 그려나가는, 계절 시의 모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은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온화하다. 여름은 끝없는 창공과 푸른 바다로 싱그럽고 활달하다. 가을은 가장 편수가 많고 추억과 그리움으로 편만(遍滿)하다. 그리고 겨울은 인내와 자기 성찰의 면모를 보인다. 네 차례 계절이 변화하고 또 이어지는 가운데, 시인의 관점은 여전히 희망적이며 시가 삶의 빛이자 그림자임을 의식하고 있다. 시가 시인에게, 시인이 시에게, 서로 유능하고 유익한 동역자(同役者)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가랑잎은 가랑비도
소슬바람마저 뒤로하고
겨울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여정의 끝 마당
그 자리에는 봄이 있으랴
- 「가랑잎」 부분
이 시의 제목 ‘가랑잎’은 활엽수의 마른 잎을 뜻한다. 그 마른 늦가을의 가랑잎이 가랑비, 가늘게 내리는 비를 부르고 있다. 계절이 늦은 가을인 터라 ‘이루고도 못 이룬 어제의 꿈’이 있다. 이제 그것을 접어야 하는가라고 시적 화자가 묻는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계절로서의 가을이 인생 행로의 후반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세상을 살 만큼 산 후에 지난날의 꿈을 되돌아보는, 반성적 자기 점검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가랑잎과 가랑비가 소슬바람, 으스스하고 쓸쓸하게 부는 가을바람을 뒤로 하고 겨울로 가고 있다. 시인은 이 행로의 다음 여정(旅程)에 봄의 자리를 상정하고 있다.
눈 내리는 밤에는
편지를 쓰리라…
...중략...
오늘 아침나절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비
철없는 겨울비가
철들어 눈 내릴 때까지
사연을 접어둔다
- 「눈 내리는 밤에는」 부분
계절이 바뀌어 바야흐로 눈 내리는 밤, 겨울밤이다. 우리가 해마다 겪는 계절의 변화이지만, 거기 촌보의 양보도 없는 엄정한 규범이 있다. 낙엽이 지고 나면 그해에 꽃이 피지 않으며, 겨울이 가고 나면 봄이 온다. 시인은 눈 내리는 겨울밤에 편지를 쓰겠다고 한다. ‘현란한 춤사위로 겨울밤을 흔들던 눈보라’가 문득 세상을 덮은 한 장의 편지지다. 편지지는 겨울을 장식하는 눈과 비의 행태(行態)에 밀접하게 잇대어져 있다. 시인은 이 겨울의 유형화한 관념 가운데, ‘사연을 접어두는’ 기다림의 미덕을 익히기로 한다.
4부 「산다는 것은」의 시들은 그와 같은 각성의 의의를 일상적인 삶 속에 매설한 사례가 많다. 「당신」에서는 그 상대역과의 대화를, 「여정」에서는 홀로 나서는 삶의 기쁨을, 「모순」에서는 검사실(檢査室) 앞에서 나의 모습을 새롭게 설정한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시를 통해 수확할 수 있는 최상의 결실이기도 하다.
작은 침대가 나는 좋다
그녀는 잠들면 미동도 않고
나는
침대의 가장자리를 지킨다
그녀의 숨결은 창가의
파도 소리보다 멀고
체취는 이름 모를 섬의
꽃향기보다 엷다
손을 내밀어도 아니 닿고
발을 이리저리 휘저어도
걸리지 않는다
- 「침실에서」 부분
이 시의 화자는 ‘작은 침대’가 좋다고 언명(言明)한다. ‘몸은 멀고 마음은 김치 국물을 마시는’ 지경이니, 침대의 크기로 남녀 간의 심정적 거리와 간격을 재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작은 침대가 좋다는 시인의 심사는, 단순한 거리 개념이 아니라 양자 사이에서 회복해야 할 간격의 문제를 의뭉스럽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그 간격을 깨달은 데서, 그의 각성이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5부 「여행길에서」는 시인의 여러 여행 경력과 그로부터 추수된 경륜이 어떻게 시화(詩化)하는가를 보여준다. 장강(長江)이라 불리는 양자강, 황룡의 무릉도원, 선경(仙景) 황산, 그리고 장가계와 아미산 등 중국의 명승(名勝)을 찾아다닌 족적(足跡)이 시심(詩心)과 만나 여러 편의 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서는 신화를 만나고 남미에서는 크루즈의 바다와 이과수폭포를 만난다. 이렇게 여행길에서 시를 얻거나 시를 위해 여행을 떠난 시인은 행복하다. 이때의 시는 우리 삶의 유용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포에틱 시티(Poetic City)에서 한 줄의 시도 건질 수 없다
이백을 앞세워 내노라 하는 저들이 읊조린 시어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 시를 접어야 하나
양자강은 백제성을 흙탕물로 채워진 호수의 섬으로 만들고
협곡에서 소용돌이를 일구는 바위는 어부들의 생명을 위한다
폭파되어 강둑의 마을과 함께 수장되었다, 수심은 깊어져
이제는 큰 뱃길일 뿐 이백이 어울리던 협곡은 아니다
- 「시를 위한 변명 – 백제성에서」 부분
백제성은 중국 쓰촨 성(四川省) 동쪽, 후베이 성(湖北省)과의 경계에 위치한, 바이디 산(白帝山) 기슭에 있는 옛 성이다. 삼국시대 유비가 죽은 곳이며, 가까이에 공명팔진도의 유적이 있다.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 또한 각자의 시문으로 백제성을 노래했다. 시인 하운은 이 도시를 포에틱 시티(Poetic City)란 도전적인 호칭으로 명명한다. 하지만 산천은 이미 과거의 것이 아니며, 이백이나 두보와 어깨를 견줄 시상(詩想)을 떠올릴 수도 없다. 그래도 시인은, 머나먼 세월의 상거(相距)를 넘어 그 역사적인 자리에서 한 수 시의 의미를 궁구(窮究)한다. 그는 옛터 여행길에서 시와 삶의 해묵은 숙제와 마주 섰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시 「누구에게나 희망은 있다」 에는 서구 문명의 두 흐름,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가운데 헬레니즘의 발원이라 할 그리스 신화의 세계가 담겨 있다. 이 신화 세계의 주신(主神) 제우스와 그의 형제인 포세이돈, 또 아테네와 아프로디테가 연이어 등장한다. 신의 곁에 있었던 에로스의 연인 프시케, 철학과 의학의 태두(泰斗) 소크라테스와 히포크라테스가 인간의 대표 격으로 시 속에 자리를 갖고 있다. 왜 시인이 이 시에 ‘누구에게나 희망은 있다’라는 제목을 붙였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신과 인간의 세계를 가로지른 이 영웅적 캐릭터들의 운동 범주는,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공간을 하나의 꿰미로 묶어내는 곳까지 이른다. 헬레니즘의 문명적 특성은 신과 인간의 교유(交遊)에 있고, 그러기에 이 시의 발원지는 인본주의의 시발과 동일한 맥락에 있다.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하운의 두 번째 시집 『뉴욕 아리랑』은, 그 표제가 지칭하는 것처럼 뉴욕에서의 삶과 일상적 풍경을 그리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며, “비록 시인이 뉴욕을 무대로 자신의 날들을 지켜가고 있으나, 시적 탐색의 대상은 온 우주에 산포(散布)되어 있다”고 평한다. 또한 “그에게 있어 시가 삶의 다른 이름”이며, “시가 없이 그가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이며, “그것은 이를테면 시인의 숙명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독자들이여, 하운 시인의 시집 『뉴욕 아리랑』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메타포 속을 거닐며, “시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보자.
하운 시인
본명 하명훈 (Edward Myunghoon Ha)
1971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96년 월간 《문학 21》 시 부문 등단
2000년 계간 《시대문학》 시 신인상 수상
2002년 하운 시집 『징소리』 출간
2014-2015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역임
재임시 협회연간지 《뉴욕문학》을, 영문 《New York Literature》를 출간
현재 뉴욕의과대학 재활의학과 임상조교수
PEN AMERICA 회원
시인의 말
내가 탄 열차는 종착역을 앞두고 가속으로 달리는데
내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2024년 2월, 하운
본문 속으로
매화는 눈물겹게 봄소식 전하건만
벌 나비 날지 않고 새소리 멈추었다
매화야 울지 말거라 아픈 가슴 천지다.
지천을 가득 메운 저 아우성 못 듣는가
막혀버린 동맥 열어 의식은 다시 산디
매화야 미소 짓거라 너의 눈물 값지다.
싸구려 눈물 없고 희생 없는 자유 없다
개나리 여유롭다 참꽃은 그냥 피나
매화야 가슴 펴거라 너의 향기 넘친다.
- 「봄의 첨병」 전문, 본문 15쪽
아픈 기억 가라앉은 가슴
저 붉게 흔들리던 6월에
종말을 고했는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절망의 벽 사이로 돌아오고 말았나
오늘도 비틀거리며
희망이 있기나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항시 우리를 부르고 있는
은근한 그 소리가 적삼 밑을
비집고 들어도
벽에 매달린 고통으로
그 울림 의식할 여유가 없다.
내 탓 네 탓 타령도 풀이 죽고
다시 체념의 늪은 깊어 가는가
벽은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의 기도는 다시 시작된다
초가삼간 지켜주는 초롱불
아직은 깜빡이고 있다.
- 「징 소리는 아직도」 전문, 본문 33쪽
누가 가라 오라 했나
나 여기 삶을 열었다
마천루 숲의 사과는
사시사철 익어가고
우리네 인생도 간다.
목이 메이는 애국가
나와 너의 노래
세월이 갈수록 짧아져
끝내는 부를 수가 없다
이별가였구나.
쌍둥이 빌딩
녹아내릴 때 분한 마음
연평도 피폭으로
피멍 들고
샌디가 쓸어낸 가슴도
남의 가슴이 아니지.
누가 오라 가라 했나
너와 나 마천루 넘어서 간다.
- 「뉴욕 아리랑」 전문, 본문 62-63쪽
차례
시인의 말
1부 징소리는 아직도
봄의 첨병 15
세상 보기 16
촛불의 얼굴 18
오아시스 20
촛불과 봄비 21
꽃시샘 31017 22
조국아, 조국아 23
봄 길에서 24
산을 봐, 산을 25
우리의 현주소 26
사쿠라의 기억 28
나무도 아닌 것이 30
돌아오기 31
역사 세우기 32
징소리는 아직도 33
절망 34
때 36
2부 뉴욕 아리랑
브로드웨이에서 39
너를 위한 노래 40
나는 독도다 42
세월의 만남 44
바람소리 꽃 46
선생님 48
4월의 영전에 바치는 글 49
고 김수환 추기경님 영전에 올리는 글 50
신문과 결혼한 여자 52
니콜네 할부지 54
웨스트 아이스립의 사나이 56
갈대 마당 58
만추의 초대 59
어느 사진작가 60
뉴욕 아리랑 62
길 64
노든 블레바드 풍경 65
오크랜드 호수 66
3부 계절은 오간다
봄볕 71
봄날 72
어느 여름 73
가랑잎 74
낙엽의 길 75
가을의 연인들 76
샌디는 가고 78
겨울숲 80
눈 내리는 밤에는 81
4부 산다는 것은
꿈을 위하여 85
침실에서 86
당신은 87
고독 88
여정 89
마른 갈대 90
비오는 장터 92
삶 (1) 93
삶 (2) 94
모를 일 95
가랑비 96
모순 98
아, 2020년 99
술 한잔 100
하얀 꿈 101
황혼에 서서 102
5부 여행길에서
꿈이여 105
시를 위한 변명 106
장강은 서럽다 108
무릉도원을 찾아서 109
나는 신선이었다? 110
예술을 위하여 111
이별 112
바다야 113
인어공주 판타지 114
누구에게나 희망은 있다 116
이과수 폭포 118
땅끝마을에서 119
해설 / 시를 통해 세상을 만나는 창의적 방식_김종회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