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구본창 사진작가] “사진이란 정말 순간을 화석화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에서 구본창 작가를 만나다
[인터뷰 - 구본창 사진작가] “사진이란 정말 순간을 화석화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에서 구본창 작가를 만나다
  • 손정순 발행인
  • 승인 2024.08.30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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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손정순 본지 발행인
2024년 8월 8일 오후 4시 예술극장 픽쳐하우스

 

구본창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현대 사진가이자 교수이며, 한국의 현대 사진예술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진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사진작가, 기획자이다. 전시로, 매체로만 만났던 구본창 작가를 아티스틱 시네마, 시네마틱 갤러리 콜라보가 열리는 픽쳐하우스 로비에서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오랜 팬으로서,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작품 활동으로 사진을 현대미술의 장르로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문화예술로 확장시켜가고 있는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하였다.

- 편집자 주

ⓒ 오석훈

 

구본창具本昌, Koo Bohnchang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 디플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15년에는 한국 사진예술의 질적 수준과 국제적 위상 제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47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영국 런던의 세인트 마틴 스쿨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했으며, 계원예대, 중앙대, 서울예대, 경일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였다.
구본창은 내면의 깊은 사색을 통해 자신을 넘어, 시대를 반영한 작업을 보여준다. 또한 간결하면서도 미니멀한 그의 작업은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색채와 더불어 한국현대사진에 그 만의 독특한 자리매김을 하게 하였다.

2001년 삼성 로댕갤러리, 2002년 미국 피바디 에섹스 뮤지엄, 2004년 파리 갤러리 카메라 옵스큐라, 2006년 국제 갤러리,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 2010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2021년 중국 Three Shadows Photography Art Centre,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 외에서 여러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대표작으로는 『긴오후의 미행』(1985-1990), 『In The Beginning』(1991), 『숨』(1995), 『탈』(1998), 『백자』(2004), 『Soap』(2006), 『DMZ』(2010)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삼성 리움, 파리 기메박물관 등 국내외 다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작가 구본창의 일대기를 기록한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

선생님을 이렇게 작은 예술극장에서 뵙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지난해 12월 14일부터 3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국공립미술관 사상 최초의 사진작가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가 12만 명 가까운 관람객을 매료시키며 현존 작가 사상 최고 관객 동원을 기록했는데요. 정말 선생님의 일대기를 항해할 수 있는 훌륭한 전시였습니다. 아직도 그 여운이 전해지고 있는데 어떠신가요? 최근의 근황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일생 일대의 큰 전시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하게 되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작가로서 지난 40여 년 동안 한 작업을 다시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그 전시를 위해서 끄집어내었던 많은 자료들을 아직 원 위치로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이번 가을에 광주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의 개인전을 초대받았습니다. 시립미술관과는 다른 사물을 위주로 한 작품을 추려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구본창 작가 유학시절

 

한국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과 영역을 확장한 선구자
이번에는 아티스틱 시네마, 시네마틱 갤러리 콜라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의 개인전이라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선생님은 1980년대 스트레이트 사진에서 메이킹 포토로 한국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과 영역을 확장해간 선구자, 한국사진을 예술 영역으로, 나아가 한국적·철학적 영역으로 기초를 넓힌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진 및 동시대미술을 대표하는 구본창 작가님께서 이번에는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이라는 아티스틱 시네마, 시네마틱 갤러리 콜라보를 선보이셨습니다. 사진을 영화의 콜라보로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산물인 영상시대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1980-90년대 한국 영화의 포스터와 사진을 예술로 승화한 이번 아티스틱 시네마 기획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번 픽쳐하우스에서의 전시는 오래 전부터 내가 작업한 영화 관련 작품들을 선보이고 싶어하던 채희승 대표의 요청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지난 시립 전시에서 공간상 아쉽게도 많이 보여줄수 없었던 영화 관련 작업들을 언젠가 전시하고 싶어했는데 이번에는 공간상 약식의 전시라 할 수 있습니다.

 

배창호 감독과 구본창 작가

네 평소 작게만 보였던 예술극장의 로비가 멋진 작품으로 채워지니 더 넓고 아름다운 공간 갤러리가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사진의 시작점을 영화와 함께 탐구하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것 같습니다. 먼저 구본창 작가의 영화 작업의 출발점을 조명하는 데 있어 배창호 감독과의 인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배 감독님과 고교, 대학동기신데요 그렇다고 모든 인연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배 감독님과 인연이 특별히 깊어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연세대 재학 시절에 배창호 감독은 연극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도 나에게 포스터와 티켓을 디자인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 감독이 졸업 후에 다니던 현대상사를 그만두고,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이 되겠다고 하여 나에게도 전공을 바꾸는 자극을 주었지요. 그 당시 나는 대우 실업을 다니고 있었는데, 배창호 감독의 용기에 힘입어 나도 하고 싶었던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귀국한 후 배창호 감독이 본인의 영화포스터 촬영을 부탁하여 처음으로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포스터를 찍게 되었습니다.

 

훔치고 싶은 아름다운 사진 작품, 영화포스터

배창호 감독의 대표작 <기쁜 우리 젊은날>이 첫 영화포스터 작품이신데요. 구본창의 작품은 그전까지 영화스틸을 활동하던 한국영화의 홍보물 제작 방식에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구본창이 담은 안성기, 황신혜의 아름다운 흑백 사진은 영화포스터는 물론이고 예고편과 스틸에도 활용되었고 작품에 비관적이던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 작품이 대성공하면서 이후 한국영화는 사진작가 고용으로 영화 홍보물을 작업하는 게 정착되었지요. 당시 <기쁜 우리 젊은날> 촬영 현장은 어떠셨나요? 혹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도 있으면 좀 들려주십시오.

사실 영화포스터 촬영은 내게 굉장히 생소한 과제였습니다. 스튜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어디서 어떻게 촬영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배창호 감독과 안성기 배우님이 이미 친분이 있어서 마치 알던 지인을 촬영한다는 기분으로 연세대학교 교정과 홍대 앞의 카페에서 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차후 덕수궁에 가서도 촬영하였지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1987년도만 해도 그렇게 편하게 다니면서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촬영 현장은 많이 나가지 않고 별도로 배우들과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그러셨군요. 저기 정면으로 보이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황신혜와 안성기 배우가 바로 그 사진이군요. 당시의 그 풋풋하고 아름다운 ‘젊음’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설레고 감동적입니다. 한국영화포스터계의 일대 사건이었던, 하얀 스카프를 쓴 황신혜의 사진이 가까이서 보니 더욱 황홀한데요, 이 하얀 스카프가 선생님께서 독일에서 촬영 때 썼던 스카프였다니 정말 신의 한수가 아닌가 싶어요? 정말 훔치고 싶은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촬영장에서 어떻게 갑자기 이런 컨셉이 떠올랐는지요?

겨울이었는데 연세대 야외 교정에서 떨면서 촬영하다가 홍대 앞의 카페로 이동하였습니다. 조명기구도 변변히 없던 시절이라 자연광이 비치는 창가에 자리잡고는 비상으로 들고 갔던 독일 유학시절의 스카프 소품을 꺼냈죠. 황신혜 씨도 멋쩍어 하고 있다가 내가 건네준 스카프로 마치 본인이 감싸듯이 연기하는 도중에 바로 그 눈빛을 포착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컷을 촬영해도 모델과 마주치는 묘한 순간, 바로 그 순간이 모델이 마음을 여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필름에 담기면 나중에 그 사진을 보는 제3자도 바로 그 마음을 전달받아 감동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영화포스터 사진을 따로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980년대만 해도 주로 현장에서 기록·홍보용으로 촬영한 스틸사진을 짜깁기해서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한국 영화시장에 처음으로 포스터용 사진을 따로 촬영하고, 작품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가 바로 1987년 사진가 구본창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1980-90년대 구본창 작가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배창호),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배창호),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이규형), 〈두 여자의 집〉(1987, 곽지균), 〈업〉(1988, 이두용), 〈개그맨〉(1988, 이명세), <어른들은 몰라요>(1988,이규형),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임권택), 〈그 후로도 오랫동안〉(1989, 곽지균), <꿈>(1990,), <젊은 날의 초상>(1990, 곽지균), 〈장군의 아들〉(1990, 임권택), 〈경마장 가는 길〉(1991, 장선우), <화엄경>(1993, 장선우), 〈서편제〉(1993, 임권택), <장미빛 인생>(1994,김홍준), 〈태백산맥〉(1994, 임권택), 〈젊은 남자〉(1994, 배창호), <금홍아 금홍아>(1995), <미지왕> (1996), 〈축제〉(1996, 임권택), <창>(1997), <춘향전>(2000), <밀애>(2002), <죽어도 좋아>(2002), <댄서의 순정>(2005), <시>(2010), 〈종이꽃〉(고훈, 2020) 등 나열해 보니 꽤 많네요. 전부다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강수연 배우와의 인연, 그리고 영정 사진

저도 선생님께서 이렇게 많은 영화 작품을 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조명도 없이 촬영한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사진을 계기로 한국영화의 인연이 시작되었는데요. 강수연, 박중훈의 청춘 기록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로 강수연 배우와의 인연도 시작되었죠? <아제 아제 바라아제> <경마장 가는 길> <그 후로도 오랫동안> 등 강수연이 주연한 영화포스터 작업을 함께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2년 5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강수연 배우의 영정사진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영정사진이 18년 전인 2004년 패션 매거진 화보 촬영 당시 찍은 사진으로, A컷이 아닌 B컷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강수연 배우도 살아생전 보지 못한 사진었을 텐데요. 곱고 인상적인 그 사진으로 인해 추모객들은 더욱 안타깝고 고인을 그립게 만들었습니다. 강수연은 구본창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이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과 많은 작품을 함께 한 강수연 배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준비하며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오래된 필름을 뒤적이다 보니 정말 강수연 씨를 어린 시절 처음 만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하지만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이후 거의 모든 영화에 이미 성숙한 역할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어리다는 생각은 별로 안했습니다. 항상 당차고 과감하고 할 말을 하는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두용 감독의 <업>을 촬영하였을 때 정말 엄청나게 추운 날 얼음을 깨고 개울물에 들어가야 하는 신이 있었는데 싫어하는 티를 전혀 안 내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해내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 태흥영화사의 행사 그리고 간간이 내 전시에도 와주고 작품에도 관심을 갖고 소장도 해주었습니다.

 

지난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에서 이명세 감독 데뷔작 <개그맨>(1989) 포스터와 영화스틸 사진은 <개그맨>의 작품을 다시 해석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강렬한 눈빛이 영화 속 서사의 깊은 밀도감을 자아낸 <태백산맥> 포스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베를린영화제 현장에서 “올해 나온 포스터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죠?

네.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님이 아주 좋아하셨죠. 국내 포스터는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넣어야 관객이 많이 든다고 일반적으로 믿던 시절이었습니다. 다행히 해외에 출품할 때는 단순하면서 사진이 강조되는 별도의 포스터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 덕분에 사진이 더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태원 사장님이 회식 때마다 농담삼아 구 작가가 원하면 감독으로 입봉 시켜주겠다고 웃으면서 말씀 하셨죠. 그만큼 내가 해석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청춘을 설레게 한 <젊은 남자> 이정재의 포스터

영화 <1994 젊은남자 밀착>

여기 포토존처럼 전시된 <젊은 남자> 포스터도 화제가 되었지요. 한 장의 포스터를 위해 수없이 셔터를 누른 작업의 현장이 그려집니다. 글로벌 스타가 된 이정재의 젊은 날을 이처럼 아름답게 남길 수 있다니!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가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앞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어느 작품을 선택해도 나무랄 데 없는 개성적인 작품들입니다. 젊고 당돌해 보이는 이정재의 매력을 잘 포착한 <젊은 남자> 포스터가 벽에 붙자마자 팬들이 마구 떼어갔다는 후문도 신빙성을 더합니다.

선택되는 것은 한두 컷이지만 그 컷을 촬영하기 위한 앞뒤의 사진을 보는 것도 아주 흥미롭지요? 지금 다시 보니 선택된 것 이외에도 사용하고 싶은 컷이 여러 개 있습니다. 남자배우들이 본인의 상반신을 자신 있게 드러내기 전 또 신체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을 때 일찌감치 남성의 신체의 매력을 보여준 셈이지요. 사진이란 정말 순간을 화석화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안성기 배우, <젊은 날의 기쁨>에서 <종이꽃>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성기 배우에게 휴스턴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종이꽃>(고훈, 2020)입니다. 작년 제1회 최인호청년문화상 시상식 때 안성기 선생님께서 오셔서 뵀는데 편찮으셔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선생님께서도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부터 <종이꽃>까지 안성기 배우님과의 인연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오늘 메인 작품으로 꾸며진 안성기 배우님의 젊은 날의 선한 모습을 봬니 왠지 선생님께서 다시 건강해진 기분이 들어 좋습니다. 사진의 힘이랄까요?

네. 좋은 사진은 촬영된 그 순간 모델이 보여주는 눈동자와 미소 그 표정만으로도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우리가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기간 함께 나이가 들면서 사진가인 내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큰 전시 때마다 와주시고 응원해 주셨는데 이번 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에 초대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배우들은 기억에 남는 멋진 사진으로 영원히 우리에게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제임스 딘이나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 많은 세계적인 배우들을 영화 속의 명장면을 통해서 계속 사랑하고 있죠. 한국의 영화계에서도 그렇게 우리의 명배우들의 사진들이 많이 인쇄되고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 전시에서는 구본창 영화작업의 중요한 모멘텀을 대표하는 다섯 작품의 원본 포스터와 스틸, 화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편의 영화는 스크린으로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번 아티스틱 시네마에서 독자들이 꼭 봐줬으면 하는 작품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감상 팁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각각의 작품이 다 개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경마장 가는 길>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도 유학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극중 유학 후 방황하는 문성근 씨의 역할도 이해 할 수가 있었어요. 하일지 씨의 소설이 원작이라 일반적인 시나리오와 달리 90년대 초반의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잘 드러내 준 것 같습니다. 포스터를 촬영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매트리스를 가져다 놓고 분위기를 연출했고, 그때 보여준 강수연 씨의 연기도 강렬했습니다.

 

예술로 승화시킨 구본창의 영화·문학 표지작업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 전시 전경

《구본창의 항해》와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전시를 보면서 영화 표지(포스터)작업과 문학 표지작업들이 소장가치가 있는 귀한 작업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한국 영화와 문학 도서를 예술작품으로 드높인 숨은 공로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문학 표지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번에는 공간과 시간상 많은 준비를 할 수가 없었는데 언젠가 좋은 공간에서 기회가 되면 그런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독일에서 유학 할 때 포스터나 책의 표지에 멋진 사진들이 쓰인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중매체의 일을 하는 것도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파리 샹젤리제를 지날 때 마침 거리의 큰 광고판에 대형 영화포스터를 교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멋지고 큰 대형의 인쇄물을 얻고 싶어서 한참 졸라서 한 장 받아온 포스터를 아직도 귀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또 다른 새로운 작품 세계를 체감할 수 있는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개인작업과 대중매체와의 작업을 경계 없이 오랜 기간 활동해 왔습니다. 비록 일부분이지만 80년대 90년대 활약한 배우들의 몇몇 인물사진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큰 행운입니다. 오랜 기간 후대에도 기억될 수 있는 배우들의 모습이길 기대합니다.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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