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시인·소설가 숀] 시적인 은유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인간 사고의 정점이 아닐까요?: 아이슬란드의 시인·소설가 숀
[인터뷰 - 시인·소설가 숀] 시적인 은유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인간 사고의 정점이 아닐까요?: 아이슬란드의 시인·소설가 숀
  • 설재원 편집장
  • 승인 2024.10.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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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설재원 편집장
2024년 9월 10일 오후 1시 JCC아트센터 카페 ‘아리에따’

 

 

숀Sjón 시인, 소설가, 작사가, 시나리오 작가. 1962년 8월 27일 아이슬란드 출생. 1980년대 초부터 아이슬란드 음악계에서 Björk 등 당대의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 영화 〈The Northman〉(2022), 〈Lamb〉(2021)의 공동 작가, 애니메이션 〈Anna and the Moods〉(2007) 각본 집필. 주요 저서로 『Red Milk』(Sceptre, 2019), 『CoDex 1962』(Sceptre, 2016), 『Moonstone: The Boy Who Never Was』(Sceptre, 2013), 『From The Mouth of the Whale』(Sceptre, 2008), 『The Blue Fox』(Sceptre, 2003)이 있다. 『The Blue Fox』로 아이슬란드 국영방송 RÚV 문학상, 아이슬란드문학상 수상(2005), 『The Whispering Muse』로 노르딕 동화상 수상(2013), 아이슬란드 국가 문화상(2015), 『Red Milk』로 스웨덴 아카데미 북유럽상 수상(2023).

 

작가님 안녕하세요. 서울국제작가축제를 계기로 멀리 아이슬란드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하셨습니다. 작가님 필명인 ‘sjón’은 아이슬란드어로 눈, 시야를 의미하는 단어인데요, 한국말 ‘눈’에는 같은 소리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라는 단어도 있어 저희에겐 이름에서 조금 더 아이슬란드 느낌을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간단히 작가님 소개를 대신하면, 아이슬란드에서 오신 숀 작가님은 16살에 첫 시집을 내신 뒤 지금까지 12권의 시집을 출간하셨고, 시에서 출발하여 소설, 오페라 대본과 노래 가사, 그리고 최근에는 영화 각본 작업까지 하는 전방위 문화예술인이십니다. 지난 해에는 ‘작은노벨상’이라 불리는 노르딕상을 수상하셨구요. 전 세계에 작가님 책이 3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된 책이 없어 아직 한국에서는 작가님 책을 읽기 어려워 아쉽습니다. 독자분들께 인사말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필명이 한국어 단어와 연결점이 있다는 게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 말을 들으니 조금 더 한국과 연결고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눈이 내린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겨울에 서울에도 눈이 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날이 이렇게 더운데 말이죠. 제 고향 아이슬란드에서 눈이 내리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서울에 눈이 내린다는 말을 들으니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작가님께서는 시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신 뒤, 소설, 오페라 대본, 노래 가사, 영화 각본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할 때 각 분야마다 접근법이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일레트로니카 아티스트 비요크의 음악 작사 작업을 할 때에는 시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라임을 사용하시잖아요? 각 분야마다 작가님께서 특히 염두에 두고 작업에 들어가는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예술 활동 초기부터 완전히 분리된 두 가지 접근법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혼자 작업할작업할 때, 그러니까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쓸 때의 접근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오페라 대본이나 노래 가사, 영화 시나리오와 같이 공동 작업을 할 때의 방식입니다. 두 가지 방법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지만, 제가 생각할 때 이건 자연스러운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창작을 시작했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 저는 창작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습니다. 덕분에 레이캬비크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예술인들과 함께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저와 같은 시인도 있었고, 뮤지션이나 8mm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영화 감독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창작 커뮤니티는 일종의 문화적 용광로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흔히 시인은 혼자 활동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80년대 초반에는 시인들도 새로운 음악 씬의 일부가 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다른 여러 예술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할 기회를 얻었으니, 제 커리어는 시작부터 다양한 예술 형태와 함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일을 할 때에는 늘 일손이 부족합니다. 공연 포스터가 필요할 때가 있고 노래 가사가 필요할 때도 있고 누군가는 항상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커뮤니티는 서로를 돕는 데 진심이었기 때문에 항상 기꺼이 서로의 일손이 되어주었습니다. 저도 밴드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공연 포스터도 만들고, 노래 가사도 썼죠. 당연히 그 친구들이 공연을 할 때 사이 사이 시를 낭송하기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저는 시작부터 제가 혼자 하는 개인 작업과 남들과 함께 하는 공동 작업을 구분하여 트레이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 개인 작업에 있어서 저는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제 세계의 모든 걸 다 통제합니다. 저 혼자 이런 저런 규칙을 만들고, 또 혼자서 규칙을 없애 버리기도 하죠. 그러니까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작업에 임합니다. 혼자 글을 쓸 때 저는 저만의 목소리를 찾고 제가 매력을 느끼는 아이디어들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만의 글쓰기 방법을 만들어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콜라보를 할 때는 일종의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와 협업을 많이 진행하는 비요크Björk를 예시로 들면, 비요크 같은 경우에는 보통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멜로디 같은 게 이미 나온 상태에서 저를 불러 작업을 시작해요. 때로는 이미 주제까지 정해진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작업에 들어가면 우선 그 시점까지 비요크가 영감을 받은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이를테면 비요크가 영감을 받은 그림이라든가 사진, 이런 저런 아이디어와 컨셉을 서로 공유하는 거죠. 그럼 제 일은 비요크가 받은 영감과 느낌을 어떻게 가사로 구현할지 고민하는 것이고, 이렇게 완성된 가사를 비요크가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영화 각본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램〉의 경우 감독 발디마르 요한슨이 아이들이 나오는 책 하나를 들고 찾아왔는데, 양머리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붙이고 있었어요. 책은 양머리를 한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사진이나 엽서 같은 것이었는데 스토리는 없었고 그냥 아주 강렬한 이미지만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게 시골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농부들이 그런 아이를 돌보는 이야기로 어떻게 구체화할지 논의했습니다. 제게 처음 보여준 이미지는 다소 우스꽝스럽거나 얼토당토하지 않은 모습을 담은 다양한 이미지였지만, 요한슨이 찾고 있는 분위기에는 슬픔이 서려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로 만들지가 중요했습니다.

영화 감독 새뮤얼 풀러가 말하길 “영화가 성공적이려면 감정적인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는데, 저도 우스워 보일 수 있는 이미지 뒤에 신빙성 있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감정적 진실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게 제 각본 작업의 목표였습니다.

제 다음 영화 작업은 〈노스맨〉인데요, 감독인 로버트 에거스와 각본을 공동작업했습니다. 에거스가 함께 바이킹 영화를 만들지 않겠냐고 찾아왔는데, 당시에 제가 알고 있던 정보는 그가 바이킹 영화를 만들려 하는데 그 서사구조로 「햄릿」을 활용하려 한다는 것뿐이었어요. 사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아주 오래된 북유럽 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기에 중점을 두어 작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누군가와 함께 작업할 때는 아이디어가 먼저 정해진 경우가 많습니다. 덕분에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제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제 역할은 아이디어라는 방에 들어가 그 방 안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슬란드는 아이슬란드어라는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아이슬란드어가 상당히 재밌습니다. 현대 아이슬란드어가 고대 아이슬란드어와 크게 다르지 않아 800년 전에 쓰인 글도 그대로 읽을 수 있고, 외래어의 경우 직접 차용하여 사용하기 보다는 아이슬란드 어휘로 순화하는 방식이 주를 이룹니다. 작가님께서는 상당히 특색 있는 언어로 글을 써오셨고, 동시에 작가님께서 쓰신 글이 35개국으로 번역되는 것을 목격하셨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언어와 문학의 관계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푸른 여우』는 이제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된 것 같습니다. 아마 다음 번역은 한국어일 수도 있겠죠? 북대서양의 작은 섬 아이슬란드에서 아주 독특한 언어로 쓰여진 특수한 문화권의 특수한 이야기가 다양한 언어를 통해 전 세계로세계로 퍼져나가는 걸 보는 건 제게 있어서도 인생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에 있어서 번역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각적 이미지에 많이 의존하는 영화와는 분명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우린 시각적 이미지를 해석하는 데 더 익숙하죠. 그래서 번역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번역가는 원어를 새로운 언어로 치환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하며, 때로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문장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또한 원작의 맥락과 분위기를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구요. 전 세계에 이런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 번역이 우리 시대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교류하고 교감하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린 언어 속에서 살아가죠. 제가 어제 이제 갓 태어난 지 두 달 반 된 손자와 영상통화를 했는데, 벌써부터 입을 씰룩거리면서 제 입모양을 따라하더라구요. 제가 말할 때마다 입술을 움직이고 작은 소리를 내는데, 이미 자신만의 언어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어와 함께하고, 또 언어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어 깊은 생각을 나누기 때문에 언어는 우리 삶에 아주 필수적인 도구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언어의 세상에 파묻혀 살다보니 아무래도 종종 언어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커뮤니티에서 한발짝만 떨어져 다른 문화권, 언어권으로 가게 되면 언어적 미아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이러한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번역된 텍스트를 읽을 때는 그 텍스트가 다른 시공간의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스스로 상기시켜야 합니다. 번역을 통해 단어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언어의 배경에 서로 다른 문화와 신념 체계가 있다면, 그 내용을 오늘날의 세계를 살아가는 나의 언어로 적절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원텍스트가 의도한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 자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40만 명이 사용하는 아이슬란드어가 모국어인저는 언어라는 게 얼마나 취약하고 사라지기 쉬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언어는 소중하고 보존되어야 합니다. 모든 언어에는 그 언어가 유래한 환경과 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상황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북유럽 국가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에서는 미세하게 다른 ‘눈’의 상태를 표현하는 수많은 단어가 존재합니다. 눈이 녹고 언 정도에 따라 이를 지칭하는 표현이 다르고, 어느 곳에 얼마나 쌓였는지를 표현하는 각각의 고유한 단어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단어의 존재는 과거에는 아주 중요했습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눈의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를 서로에게 전달해야 했으니까요. 요즘에는 이렇게 수많은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제가 살고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와 같은 도시 지역에서는 이렇게 많은 눈의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이제 기후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에서 극히 일부만 사용하던 아이슬란드어와 같은 작은 언어가 다른 곳에서도 필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몇십 년 뒤에 작은 빙하기가 시작된다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어에 눈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이런 빙하기를 살아남기 위해 눈이라는 단어가 200개 정도 된다는 걸 떠올릴 수 있죠. 그렇다면 눈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줄 이가 필요할 텐데, 그렇게 되면 언어는 일종의 생존 도구가 될 수도 있죠. 그리고 저는 이러한 상황이 닥친다면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단어 중 상당수는 시인들이 준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번에 내한 행사를 하며 작가님께서 전설적인 바이킹 시인 에일 스칼라그림슨Egill Skallagrímsson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걸 알게 되니 작가님께서 2022년에 개봉한 영화 〈노스맨〉 각본에 참여하셨다는 게 한층 더 흥미로운데요, 말씀해주신 대로 〈노스맨〉은 10세기 바이킹 시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모티브가 된 덴마크의 전설 속 인물 암레스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익숙한 「햄릿」의 서사에 바이킹 시대라는 배경과 신화적 상상력이 더해지며 한층 ‘아이슬란드’적인 힘이 느껴지는 복수극이죠.

작가님께서는 아이슬란드어를 통해 고대 아이슬란드어를 사용하던 옛 작가 선배들과 직접 소통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신화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이런 각본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조상님과 선배님들 목소리가 각본에 잘 반영이 되었나요?

 

〈노스맨〉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바이킹 영화 중에 가장 바이킹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 에거스가 제게 이 영화를 함께 하자고 한 것은 제가 고대 아이슬란드 시나 자료를 직접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에거스는 제가 스칼라그림슨의 직계 후손인 걸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나선 깜짝 놀라긴 했죠.
고대 아이슬란드 시인들의 역할 중 하나는 시에서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견을 갖지 않았습니다. 초자연적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저는 이러한 부분을 각본으로 가져와 인간과 신, 초현실적인 것을 모두 통합하여 완전한 신념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러한 총체적인 세계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에거스와 함께 작업할 때 좋은 점은 그도 이런 방식을 즐긴다는 점입니다. 그 또한 영화에서 우리에게 낯설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총체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마치 타임캡슐을 탄 것처럼 그 당시 그 세계 사람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제게 낯설고 도전적인 신념 체계에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게 제가 아이슬란드 선배 시인들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모든 게 함께 존재하도록 글을 쓰는 것이죠.

말씀해주신 제 선조인 에일 스칼라그림슨은 바이킹의 일원으로 아주 난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슬란드어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쓴 놀라운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훌륭한 유머를 구사했는데 그의 유머는 아주 아주 어두운 유머입니다. 뭐랄까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깊고 어두운 유머라 할까요? 저는 이런 면을 〈노스맨〉에 가져오려 했습니다. 그래서 〈노스맨〉 기저에는 우울한 유머가 깔려 있습니다. 말씀드린 모든 게 〈노스맨〉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고, 특히 인간과 신, 괴물이 동시에 존재하고 때로는 그 사이에 틈이 있는 그러한 세계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화 감독 새뮤얼 풀러가 말하길 “영화가 성공적이려면 감정적인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는데, 저도 우스워 보일 수 있는 이미지 뒤에 신빙성 있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감정적 진실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게 제 각본 작업의 목표였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노스맨〉은 10세기 바이킹 시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모티브가 된 덴마크의 전설 속 인물 암레스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익숙한 「햄릿」의 서사에 바이킹 시대라는 배경과 신화적 상상력이 더해지며 한층 ‘아이슬란드’적인 힘이 느껴지는 복수극이죠.

 

 

여담이지만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비요크가 오랜만에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번 여름에 감독 특별전이 열려 극장에서 비요크에게 칸 여우주연상을 안긴 〈어둠 속의 댄서〉를 볼 수도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비요크의 여러 음악을 작사하셨고, 두 분의 친분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비요크 출연에 작가님이 개입한 부분이 있을까요?

 

에거스와 제가 비요크를 데려온 건 비요크가 사실상 〈노스맨〉의 대모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요크가 저를 에거스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에거스가 비요크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꼬드겼습니다. 방금 〈어둠 속의 댄서〉를 언급해 주셨는데, 저와 비요크는 〈어둠 속의 댄서〉에서도 함께 작업했습니다. 〈어둠 속의 댄서〉에 들어간 곡 몇 개는 제가 작사를 했어요. 저는 〈어둠 속의 댄서〉가 시적 정의poetic justice가 살아 있는 금세기 가장 강력한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최근에 재상영되었다니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노스맨〉은 저로서도 〈어둠 속의 댄서〉 이후 오랜만에 비요크와 함께 영화에서 만난 거라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김근 시인, 황유원 시인과 함께 ‘고요와 술렁거림’이라는 주제로 대담에 참여하셨습니다. ‘고요와 술렁거림’이라는 주제는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전체 주제인 ‘입자와 파동’처럼 모순된 것의 공존을 한층 문학적으로 담아낸 표현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푸른 여우』에서 “모든 것은 변하고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오비디우스의 구절을 인용하시기도 했는데 이번 주제와 비슷한 느낌도 있는 듯합니다. ‘고요와 술렁거림’, 그리고 ‘입자와 파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마디 해주실 게 있을까요? 그리고 한국 시인들과의 수다는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우선 한국에 초청받아 훌륭한 시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너무 큰 영광이었고 기쁜 마음입니다.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온 시인들과 만나면 재미난 게, 어디서 온 시인이든 시인들과 대화해보면 모두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더라구요. 왜냐하면 시인은 항상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의미와 가능성의 가장자리, 그 가장자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운이 좋으면 그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다른 훌륭한 시인들과 이런 것들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은 제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시라는 플랫폼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만나 해소되기도 하고, 함께 공존하며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이 저는 시가 인간 문화에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처럼, 입자가 파동이 되고 또 파동이 입자가 되고, 고요한 침묵이 소란스런 술렁거림이 되고 또 소란이 침묵이 된다거나, 아니면 침묵이 입자가 되고 입자가 소란이 되고 파동은 입자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에게 시의 핵심은 바로 은유입니다.

 

우리가 시를 통해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은유는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에 아주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비유하는 것인데, 은유에는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과 같은 초현실적인 은유도 있습니다.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은 19세기 시인 로트레아몽의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곧 초현실주의에 있어 은유를 다루는 핵심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한 요소가 다른 요소에 빛을 비추면 어떤 기묘하고 새로운 현실이 만들어지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또 신기하게 들리겠지만, 스칼라그림슨의 시대인 9-10세기 아이슬란드 시인들에게도 아주 복잡하고 특별한 은유 체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과 초현실주의자들 모두에게서 은유를 배웠습니다. 초현실주의 선언이 출판된 게 1924년이니까 딱 100년밖에 안 된 최근의 은유와 1,000년도 더 된 옛날 은유를 모두 공부한 것이죠.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에서는 반대되는 것들이 새로운 현실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제 작품을 번역한 스웨덴 번역가가 제 시를 번역할 때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으로 제가 사물을 단어처럼 다루고, 또 단어를 사물처럼 다루는 점이라고 말하더군요. 우리가 사물을 단어처럼 다루기 시작하면, 침묵이나 소동과 같은 단어를 가져와 예를 들어 봅시다. 만약 침묵이 광장으로 걸어가 눈앞의 작은 상자를 열었더니 상자 속에 있던 소동이 자유로워졌다는 시를 쓴다고 하면, 시적인 차원에서는 단어가 사물처럼 취급되고, 사물은 우리가 아는 단어처럼 취급되므로 실제와 창조해낸 언어의 경계가 흐려지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립니다.

저 스스로 생각할 때 제가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 작업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커리어를 시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15살 때부터 시를 쓰며 시적인 사고를 해왔고, 보이지 않는 인간 상상력의 핵심을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 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모든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시적인 생각으로 뮤지션이나 영화 감독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푸른 여우』 초반부 연꽃 먹는 사람들의 연회 장면에는 “나는 우주를 보았소! 우주는 시로 이루어져 있소!” “진정한 아이슬란드인 같은 발언이었소.”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시는 가장 높은 형태의 인간의 표현"이라고 말씀해주신 적 있는데요, 작품에서도 커리어를 시작한 시 작업에 대한 애정이 많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작가님께 시가 더욱 특별한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온 아이슬란드와 시의 관계도 궁금합니다.

 

시는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의 단계로 데려갑니다. 시를 통해 인간 존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시를 최고의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시적인 은유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인간 사고의 정점이 아닐까 해요.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번 삶에서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해답에 도달해가는 과정에서 시는 꽤나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어요.

9세기 무렵 아이슬란드 땅에 북유럽인들이 넘어와 정착한 이후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우선 표면적으로는 복수와 피의 가치, 다른 사람들을 공격해 물건을 빼앗아오는 그러한 명예를 중시했고 공학을 아주 강조했습니다. 은공예품이나 조선술을 보면 당시 아이슬란드의 공학 수준이 아주 높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당시 아이슬란드는 아주 물질적이면서도 공학적인 측면에 치중된 것으로 보이는데, 동시에 그 문화 속을 들여다보면 시와 시인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당대의 최고 시인이었던 에일 스칼라그림슨은 말 그대로 스타였습니다. 그는 바이킹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었는데, 그가 그만큼 스타로서 존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당시에 영국 궁정에서도 스칼라그림슨을 초청하여 그의 시 낭송을 듣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영국 왕이 북유럽 언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왕이나 왕실을 위한 시를 썼던 게 아닌데도 그냥 그가 쓴 시를 순전히 듣기 위해 그를 초청한 것이었죠.

결국 시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고, 시인들은 그 원천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소중히 여기고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에 대한 존중 문화가 이어지다가 양자물리학이 나타나면서 시가 좀 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행사 주제였던 입자와 파동으로 돌아가보면, 이걸 발견한 닐스 보어가 덴마크 사람입니다. 그의 피에도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시적인 은유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발견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음)

그리고 『푸른 여우』는 아이슬란드 같은 곳에서 시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에 상황이 아주 암울했던 아이슬란드에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푸른 여우』의 두 주인공은 정반대입니다. 주인공 한 명은 아주 현실적인 성직자로 자신의 농장의 모든 사람들을 거의 노예처럼 비참하게 부리는 인물이고, 또다른 주인공은 덴마크에서 아이슬란드로 넘어와 시와 시적인 사고, 시적인 삶의 방식을 퍼뜨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우주가 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체험한 인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에서의 삶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곳에 시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제가 이야기했던 초자연적인 것이 현실인 곳입니다. 동물이 말할 수 있는 곳이죠. 우리가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곤 하는데 그 경계를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묻고 싶습니다.

 

한국은 유난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인데, 아이슬란드는 반대로 아주 시원했던 여름이라 들었습니다. 이번 여름 동안 70년대를 배경으로 새 소설 작업을 하셨는데, 신작은 어떤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이번엔 혹시 한국어 번역서 출간 계획이 있을까요? 아니면 기존에 나온 책들의 번역 작업이라든지요.

 

영화처럼 돈과 시간의 구애를 받는 프로젝트와 달리 소설 작업을 할 때에는 제게 완전한 자유와 작업의 유연함이 있어 즐겁습니다. 주인공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또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넘나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으로 세네 페이지를 길게 쓸 수도 있어요. 제게는 이러한 소설의 형식과 저 혼자 무한한 창작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제 새 소설은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레이카비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핵심 플롯은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유명한 형사 사건으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되었는데 아이슬란드 역사상 가장 가혹한 형량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당국은 그러한 청년들에게 정말 지독한 형벌을 가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400일 넘게 독방에 수감되어 유럽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독방살이를 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레서 이 이야기에는 제가 다루고 싶은 요소가 여럿 있었고, 특히 저는 스스로를 정의롭고 인도적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어떻게 저런 일을 자행했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저희 집 아래층에 사건의 담당 형사 중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어린 나이긴 했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인지할 수 있었을 때 즈음부터는 제 머릿속에 이 사건의 주요 빌런과 제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점이 계속해서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녀로 설정하였는데, 저 나름대로 캐릭터와 거리를 두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이 아파트에서 홀어머니와 혼자 살고 있는 어린 소녀인데, 아이가 미디어를 통해 어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외부의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8살일 때 시작해서 20살 때 끝나는데, 실제 사건이 끝났던 1982년에 제가 스무살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소설은 실제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와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에도 상상력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과 주인공의 어머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주인공 아이를 보고 영매 같다고 하는데, 사실 소녀의 특별한 능력은 수감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번역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저도 한국에 제 번역서가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아는 한 아이슬란드어를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시는 분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영어나 독일어 판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정말 괜찮습니다. 훌륭한 번역자를 만난다면 이런 중역 방식으로도 아주 좋은 한국어 번역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저는 이미 다른 여러 경우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를 지켜봐주세요. 『푸른 여우』가 먼저 번역될지 『문스톤』이 먼저 번역될지 아니면 지금 쓰고 있는 신작이 먼저 번역될지 아직은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지만, 꼭 한국어로도 제 책을 만나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이번 호 특집이 ‘시네필’인데 작가님과도 잘 어울리는 주제인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해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살아있는 시네필living cinéphile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영화는 제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극장을 처음 간 건 7살 때였던 것 같아요. 당시 레이캬비크에는 7-8개 정도의 영화관이 있었는데, 도시 규모를 생각해보면 꽤 괜찮았어요. 교외에 살았던 저는 매 주말마다 영화를 극장에 갔는데, 특히 매주 일요일 3시 마티니 스크리닝은 항상 찾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루니 툰〉부터 서부극까지 온갖 장르의 영화를 볼 수 있었죠.

그러다 13살쯤부터는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친구들이 싫어하는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웃음) 친구들은 쿵푸나 추격전이 나오는 액션영화를 좋아했는데, 저는 혼자 다른 영화를 보러 다녔으니까요. 이 시기에 대중영화 외에 또다른 영화의 세계가 있다는 걸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버스를 타고 평일 5시에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저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단계를 밟게 되는 것 같아요. 엔터테인먼트로서 영화를 즐기다가 어느새 그 안에서 예술 형식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18살 때였나 잉그리드 버그만과 리브 울만이 출연한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를 보고 처음으로 영화에서 감독과 연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관에 앉아서 여성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기억이 나요. 18세 소년인 제가 이들 여성의 이야기에 푹 빠지게 한 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겠죠.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낮이 끝나고 저녁이 오는데 거기서 인물이 거실의 램프를 켜면서 조명이 바뀌어요. 이 장면을 통해 단순히 하루가 지나가는 것 이상으로 영화가 더 깊고 감정적인 차원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감독이 영화 속에서 만들어 낸 모든 것을 통해 감독과 함께 여행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제가 관객으로서 영화에 참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본격적인 시네필이 되었고, 필름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있던 감독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루이스 부뉴엘, 그리고 페데리코 펠리니가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영화를 보며 80년대를 보냈습니다. 제 책 중에 『문스톤』은 영화와 관련된 작품입니다. 이 책은 1980년대 스페인독감이 유행하던 시절 레이캬비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회 외곽으로 밀려난 고아인데, 그의 삶은 영화를 만나 의미를 찾습니다. 영화는 그의 삶을 부여하고, 그는 영화를 통해 삶을 이해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면 저는 시네필로서의 제 삶이 너무 좋고, 시네필이 되는 건 좋은 삶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네필로서 좋은 영화를 찾아내고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한 일입니다. 저도 겨울마다 레이캬비크에서 ‘블랙 선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를 큐레이팅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영화가 너무 많고 탐구할 영화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이게 좋은 삶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 계속해서 영화관에 가시길 권해드리며 그 속에서 좋은 삶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쿨투라》 2024년 10월호(통권 1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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