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켄드The Weeknd는 자신의 4번째 정규앨범 《After Hours》와 수록곡 〈Blinding Lights〉로 빌보드 앨범차트, 싱글차트, 아티스트차트 등 주요부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또 미국뿐 아니라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에서 1위를 차지함으로써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음악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싱글차트 1위에 오른 〈Blinding Lights〉는 1985년 A-Ha의 〈Take on Me〉가 떠오를 만큼 과거의 신스팝 사운드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인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은 용감무식하게 내지르는 투박한 신스synth 사운드의 테마 멜로디와 뒤로 깔리는 패드소리, 그리고 질주하는팝록의 비트를 표현하는 드럼머신의 소리다. 신스는 신디사이저synthesizer의 줄임말로 신디사이저는 전자발진기를 이용해 다양한 소리들을 합성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한 전자악기를 말한다.
고하건데 사실 이번 글은 ‘위켄드’의 《After Hours》 앨범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그의 음악을 듣고 스쳐가는, 신디사이저의 전자음과 신스팝synth-pop의 순간들에 담긴 인간의 의식에 관한 연대기적 상상 정도라 해두겠다.
신디사이저 소리는 언제나 미래적이었다. 인간은 종종 신디사이저 소리를 통해 불가지의 미래 풍경에 대한 영감을 얻고 또 그에 대한 상상을 투영해왔다. 그 상상도(想像圖)에는 곧 코앞에 닥칠 시대가 그려지거나 혹은 언제가 될지도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어렴풋한 스케치가 시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발성 과정에 인간성이 개입하는 종래의 아날로그 악기 소리와 달리 전자음의 발성에는 그것을 위한 전기신호의 명령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낸 전자음은 마치 기계문명처럼 가치 중립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에게 괄목할 만한 풍요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간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기계처럼, 기술과 물질 문명의 담지체라 할 신디사이저의 전자음은 때로는 이제까지 없던 질감과 신박함으로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문득 어떤 순간에는 생명체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조함과 인간성 소멸의 BGM으로 싸늘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것 또한 곧 전자음의 매력인지라 인간은 이 양가적 정서를 비롯해 새 시대의 새로운 감성들을 전자음을 통해 표현해왔다. 대중음악에서 드럼, 기타, 목소리 등 몇몇 소리가 선호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스팝에 곧잘 사용되는 신디사이저 소리도 다양한 연유로 자연스럽게 몇 가지 부류로 수렴되었다. 신스 스트링string 혹은 패드pad, 신스 벨bell, 신스 베이스bass, 리드lead 소리 등이다.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음악이 전 세계적 유행을 탄 1970년대 말~80년대의 음악 씬에는 물론 전자음이 품은 낭만 혹은 어두움에 기댄 음악들이 모두 풍성했다. 일찍이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팀들은 물질문명이 몰고 올 파국적인 스산함에나 어울릴 법한 사운드에 노래를 실어 보냈고 ‘휴먼리그’나 ‘유리스믹스’는 〈Don’t You Want Me〉, 〈Sweet Deams Are Made of These〉 같은 곡에서 두드러지는 신디사이저의 활용을 통해 복잡하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감정선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문화적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80년대의 풍경에는 새로운 기술과 8비트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새롭게 열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배경으로 〈Take on Me〉 같은 부류의 곡들이 흐를 것이다. 차갑지만 영롱한 신스 벨 소리로 울리는 이 곡의 테마는 새 시대에 대한 조금 낯설지만 질주하는 낭만을 담고 있다. 84년의 반 헤일런의 〈Jump〉의 신디사이저 테마는 또 어떤가.
이후 신스팝이 다시 시대의 주류 장르인 적은 없었으나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도 종종 팝 역사에서 신디사이저 소리가 인상적으로 남겨진 순간들이 스친다. 돌이켜 보면 90년대와 세기말에는 몽환적인 무아지경을 의미하는 트랜스와 테크노 음악의 유행에 물질만능에 심취해 해롱대던 인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했던 우리의 귀와 감성은 고도로 피로한 음압을 동반한 음악으로만 지탱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2004년 콜드플레이의 〈Speed of Sound〉나 〈Clocks〉 같은 곡에서 뿜어지던 신스 패드 소리가 기억에 선명하다. 이 음악들에서 뒤로 깔리지만 곡의 주요한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빛줄기의 다발 같은 신디사이저 패드 소리들은 디지털 시대로의 도입을 알리며 각종 뉴미디어와 모니터 화면으로 둘러싸여 가는 우리의 일상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한편 2010년대에 가장 강력한 기억이라면 넷플릭스가 제작한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오프닝 테마를 들고 싶다. 오직 신디사이저로만 이루어진 이 오프닝 테마를 포함한 OST의 수록곡들은, 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하지만 공상과학적 상상력이 합쳐져 시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드라마의 정서를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위켄드의 음악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의 음악에서 몽환적 신스 벨소리와 무한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패드 소리 같은 것들은 80년대의 그것에 비하면 보다 부정적인 미래의 풍경을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Blinding Lights〉나 다른 몇몇 주요 곡들에서 신디사이저 소리는 씬 시티sin city와 디지털 라이프 속에서 고뇌하는 화자의 삶의 배경을 묘사하는데 더 적절하게 기능한다. 이것은 위켄드가 주로 섹스, 마약, 범죄와 같은 주제들을 암울하고 사색적으로 다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 많은 음악에서 종종 시도되는 신스팝의 사운드는 여전히 미래적이다. 그리고 《After Hours》에서처럼 대부분 레트로 트렌드와 맞물린 과거 사운드의 현대적 변용은 그래서 동시에 회상적이기도 하다. 〈Blinding Light〉의 차트 정상 차지에는 낭만적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미래적이며 동시에 회상적인 신디사이저 팝 사운드에 대한 세대를 아우른 지지가 담겨있다.
* 《쿨투라》 2020년 5월호(통권 71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