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넬리>를 본 적이 없어도 ‘울게 하소서’는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멜로디이기도 합니다. 파리넬리의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카를로 브로스키의 모습은 높은 굽에 푸른 깃털 장식, 붉은 립스틱, 압도하는 눈빛으로 관객들의 혼을 빼놓습니다. 영화 파리넬리는 1728년 나폴리의 한 광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파리넬리와 트렘펫 연주자의 대결이 펼쳐지고 파리넬리의 목소리와 트럼펫 소리가 서로 절정에 달하자 군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트렘펫 연주자가 패배를 하게 되고 파리넬리는 영국왕실의 공인 작곡가인 헨델과 만남을 가지게 되죠.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이탈리아를 넘어 전 유럽을 흔드는 카스트라토가 된 파리넬리. 영화 <파리넬리>는 한 시대를 풍미한 카스트라토의 드라마틱한 삶을, 아리아의 화려함에 가려진 한 남자의 가혹한 운명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거세당하고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파리넬리의 숙명은 절망과 비운을 머금고 피어날 수 없는 꽃이기도 하겠지요. 누구나 한번은 흥얼거렸던 ‘울게 하소서’의 가사를 살펴보면 한 남자의 기구하고 비참한 삶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La scia ch’io pian ga, la du ra sorte
울게 하소서 내 비참한 운명
e che so spiri la liberta
한숨을 짓네 나 자유 위해
e che so spiri e che so sprir la liberta
나 한숨 짓네 나 한숨 짓네 나 자유 위해
La scia ch'io pian ga, la du ar sorte
울게 하소서 내 비참한 운명
e che so spiri la liberta
한숨을 짓네 나 자유 위해
ll duol infranga queste ritorte
(이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de miei martirisol per pie ta, si
이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de miei martirisol per pie ta, si
자비를 내려 다 끊어 주소서
듣는 이의 가슴속을 후벼 파는 이 아리아는 대표적인 ‘사라반드’ 형식의 성악곡이라고 불립니다. 헨델은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에서 영감을 얻어 불과 2주 만에 완성을 했다고 합니다.
거세한 남성 가수를 가리키는 카스트라토는 ‘거세하다’(라틴어:castrare)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탈리에서는 에비라토(이탈리아어: evirato)라고도 합니다. 본래 이탈리아에서 행해지던 관습으로 소년의 음성이 성인의 음성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변성기 이전에 거세를 했고 특히 16-18세기에 성행했습니다. 카스트라토의 후두는 거세를 통해 성장을 멈추어 소년 시절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허파는 성장하여 폐활량이 커지므로, 음성이 힘차고 음역이 매우 넓으며 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 소프라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힘찬 고음과 풍부한 성량이 카스트라토만이 가진 매력이기도 합니다. 카스트라토의 대부분은 출신이 고아이거나 또는 가난한 집의 소년들 중에서 선발되었습니다. 18세기에는 유럽에서만 4천 명이 넘는 소년들에게 거세가 자행되기도 했지요. 수술 시기는 소년에게서 2차 성징이 오기 전에 6~8세의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시인이 되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시가 하나 있습니다.
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 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 시인의 시에서 ‘아버지’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권위와 희생이라는 의미를 함께 동반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이자 그런 애증 관계가 결국, 고통과 근원이 아버지로부터 시작하고 아버지에서 끝난다는 점입니다. 손택수 시인의 시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대상과 화자를 동일시하고,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슬픔의 촉수를 들어 자신의 옷을 벗기고 알몸의 감정을 그대로 대면하게 합니다. 그리고 헐벗은 자신을 보면서 아버지가 아버지로 되물림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엘피판에서 지직거리며 나오는 낮은 음역대의 돌림노래처럼. 높은 음역대의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거세시켜야 하는 가난한 집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영화 <파리넬리>에서와 달리 파리넬리의 아버지가 거세를 시킨 이유는, 몹시 아팠던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엔 성병에 대한 특별한 의학적인 처방이 없었고 용모가 뛰어난 파리넬리를 귀족 여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거세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해마다 6000여 명의 소년이 거세당했지만 이 소년들이 모두 성공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실패한 카스트라토의 삶을 살아야 했고 이들은 주로 우울증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0세기에도 카스트라토의 고유 영역을 노래할 가수들의 필요성이 있었기에 카스트라토를 대체할 카운터 테너의 등장은 필수였습니다. 화려했던 카스트라토의 시대가 저문 뒤에 재등장한 남성 알토를 현재 카운터테너라고 부르는데요, 이 용어는 르네상스 시대 폴리포니 음악양식에서 테너 성부 바로 위에 놓였던 ‘콘트라테너’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카운터테너는 거세하지 않은 남성이 팔세토 창법과 두성을 섞어 호흡으로 받쳐서 소리를 머리로 띄워 올리는 창법을 구사합니다. 사실, 이 글을 적고 있는 필자도 한때는 고등학교부터 성악을 배우며 카운터테너를 꿈꾸던 소년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어머니 몰래 원서를 넣었다가 등짝 스매시를 매우 세게 맞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실기가 있던 날 가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대성통곡을 했지만, 애초에 취미로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했기 때문에 다음 날 그나마 평범한(?) 삶을 선택해 국어국문과로 가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지금은 시인의 정체성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제게 이 시대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수들이 넘쳐나기에 성악을 하지 않은 이유를 수긍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웃음)
1994년 13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정규 1집 앨범 ‘마이 퍼스트 스토리(My First Story)’로 화려하게 데뷔한 조관우는 카운터테너의 발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특유의 발성법으로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입니다. 조관우는 중요무형문화재 수궁가 보유자인 박초월의 손자이자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장인 조통달의 아들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들 조관우의 목소리를 위해 인분까지 먹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관우의 대표곡 <늪>은 당시로서 남성이 내는 고음의 가성이 매우 파격적이라 데뷔하자마자 명성과 비난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늪>은 유부녀를 짝사랑하는 내용의 가사로 일부 종교계의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고 가슴엔 사랑이
꿈이라도 좋겠어 느낄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 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뒤엔 언제나 눈물이
까맣게 타버린 가슴엔 꽃이 피질 않겠지
굳게 닫혀버린 내 가슴속엔 차가운 바람이
꿈이라도 좋겠어 그댈 느낄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 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뒤엔 언제나 눈물이 흐르고 있어
오늘밤 내방엔 파티가 열렸지 그대를 위해 준비한 꽃은
어느새 시들고 술잔을 비우며 힘없이 웃었지
또 다시 상상속으로 그댈 초대하는 거야
조관우가 호평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음을 높게 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미성의 음색을 저음역부터 고음역까지의 음들이 단단하게 이어주기 때문입니다.
<もののけ姬> (원령공주)
はりつめた ゆみの ふるえる つるよ
당겨진 활의 떨리는 시위여.
つきの ひかりに ざわめく おまえの こころ
달빛에 수런거리는 너의 마음.
とぎすまされた やいばの うつくしい
잘 손질된 창의 아름다운,
その きっさきに よくにたそなたのよこがお
그 창끝과 매우 닮은 그대의 옆얼굴.
かなしみと いかりに ひそむ まことのこころをしるは
슬픔과 분노에 숨은 본심을 아는건
もりのせいもののけたちだけ もののけたちだけ
숲의 정령, 원령들뿐, 원령들뿐…
일본 내 1420만 관객 동원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던 미야자키 하야오에 감독의 전설적인 극장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일본에 유명한 카운터테너 요시카즈 메라는 원령공주의 메인 OST곡을 불러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선천적으로 골형성부전증을 갖고 태어나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풍성하고 흉내 내기 힘든 구슬픈 음색이 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카운터테너의 매력은 일반 남자가수들에게 쉽게 찾을 수 없는 섬세함, 그리고 미묘한 서정성입니다. 카운터테너의 기원인 카스트라토가 가진 태생적인 결핍의 시작이 슬픔과 결합했을때 폭발적인 에너지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요. 문학이나 음악의 시작은 마음의 가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가난이 알몸의 감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땅 위에 맨발로 섰을 때,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 나뭇잎 사이, 사이 흔들리는 작은 우주, 나의 귀밑머리를 만지는 푸른 바람, 맨발 아래로 땅속 깊은 곳에서 어둠을 묶는 뿌리의 힘, 이런 감정들은 내가 맨몸이 되어서야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에 편들 수 있는 마음, 그런 것이 문학을 하는 마음, 음악을 하는 마음 같은 것들 아닐까요. 거세를 당한 파리넬리의 알몸을 안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둥근 욕조 속에 파리넬리를 넣자, 석류보다 진한 핏물이 번져가는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가난에 마음껏 편들고 싶은 봄, 밤입니다.
* 《쿨투라》 2020년 6월호(통권 7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