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오늘의 영화 -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걸작은 아닌... 홍상수 영화 '여행'의 한 전환점
[2010 오늘의 영화 -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걸작은 아닌... 홍상수 영화 '여행'의 한 전환점
  • 김경욱
  • 승인 2010.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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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지

“저는 영화 그냥 만드는 거고 그걸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겠죠. 제 영화 속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드라마나 서사도 없고 교훈이나 메시지 뭐 이런 것도 없거나 불확실하고 예쁘거나 좋은 화면 없습니다. 제 능력과 기질은 하나뿐이 못하는 겁니다. 정말로 몰라서 들어가야하고 그 과정이 정말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제가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과정이 나로 하여금 계속 뭔가를 발견하게 하고 저는 그걸 수렴하고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것 뿐 입니다…. 저는 세상의 귀중한 것은다 공짜로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고 싶은 겁니다.”—영화감독 구경남

홍상수 영화는 수학적이다. 반복과 차이, 대구와 대조가 방정식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해변의 여인〉의 영화감독 김중래가 바람피웠느냐고 추궁하는 문숙에게 도형을 그려가며 교묘하게 논점을 피해가는 기술을 떠올려보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영화감독 구경남이 제천과 제주도를 방문하면서 두 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홍상수는“제주도 커플이 좀 더 당당하게 세상에 열려 있는 커플, 제천 쪽은 좀 더 구석으로 숨은 커플로 대비시켜놓고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2008년 여름, 충청북도 제천에 도착한 구경남으로 시작한다. 이때 경남은 매우 지친 얼굴로 서서 반쯤 졸고 있는 상태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제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공현희에게 버스에서 졸았던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경남은 자다가 애인의 전화를 받고, 영화제 심사위원이면서도 영화를 보아야할 시간에 호텔방에서 잠을 자고, 영화를 보면서 정신없이 존다. 제천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경남이 극장 앞에서 만난 후배 부상용에게 이끌려 그의 집에 가는 대목이다. 여기서 상용에게‘귀신인 줄 알았다’고 했던 경남은 캄캄한 밤중에 귀신이 나올 법한 오래된 집에서 자신을 빛이라 부르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여자 유신을 만나게 된다. 그 집에서 자게 된 경남은 꿈을 꾸는데 그 다음에 펼쳐지는 현실의 장면은 꿈보다 더 이상하다. 꿈에서 깨어난 경남과 함께 우리가 보고 들은 건 유신이 목욕하는 물소리와 콧노래 그리고 바닥에 놓인 그녀의 속옷가지뿐이다. 다음 장면에서 경남은 상용의 집을 떠나는데, 배웅 나오지 않은 유신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극장에 도착한 경남은 또 정신없이 존다. 경남은 호텔방바닥에서 상용의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는 “어젯밤 이후로 당신을 사람 취급하는 걸 그만하기로 했다. 당신이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 상관없이 당신을 경멸하며 이제 모든 관계를 끝맺겠다”는 내용이다. 이건 우리가 아는 사실과 너무 다르다. 만일 상용의 분노와 유신의 목욕 장면이 관계가 있다면 그 사건은 밤이 아니라 새벽 내지 아침에 일어났으며, 경남이 술에 취해 있지도 않았다. 경남이 오해를 풀겠다며 상용의 집을 찾아갔을 때, 상용의 왼손은 언제 다쳤는지 붕대로 감겨 있다. 경남은 상용이 던진 돌에 얼굴을 맞고 그 집에서 도망친다. 오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천을 떠나기로 결심한 경남에게 현희는 흥행감독에게 강간당했다면서 그 책임을 경남에게 돌리며 온갖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던 장면만으로는 그녀의 판단을 믿을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상용과 현희의 분노가 완전히 오해에 의한 것이라면, 진심과 가짜가 일치한다는 유신과 경남의 영화를 통해 인간 심리의 이해 기준을 얻었다는 영화평론가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 이야기의 시작부분에서 고국장이 경남에게 얼굴의 상처에 대해 묻자, 경남은 남자애 한 명이 자기 여자 친구 다리를 훔쳐본다고 시비하다 남자 세 명과 싸우게 되어 다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 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의 홍상수식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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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꿈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자.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까지, 홍상수 영화의 꿈 장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이상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갈수록 꿈과 현실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밤과 낮〉에서 꿈 장면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말하려고 하면 홍상수의 게임에 말려드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꿈 장면의 범위는 생각할수록 모호하다. 장면만으로 경남의 꿈은 상용이 자다가 급사하자 경남이 유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대목까지이다. 그러나 만일 음악의 사용만으로 판단한다면, 분수장면에서 유신의 목욕장면까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경남은 첫 장면에서부터 끊임없이 졸거나 자고 있다가 깨어나기 때문에 심지어 제천 이야기의 전부가 꿈이라고 해도 그렇게 틀린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여자와 자는 문제에 몰두했던 홍상수의 주인공은 이름 그대로 구경하는 남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과 섹스를 놓고 벌이는 게임을 지켜본다. 장면과 장면은 일종의 점프 컷으로 연결될 뿐 인물들이 공간을 이동해 가는 동선은 생략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경남이 상용의 집에 가는 장면을 보면, 귀신같은 집부터 보여주고 나서 그곳에 도착하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그들이 대문으로 들어가는 장면 다음에 바로 유신이 등장해 세 사람의 술자리가 만들어진다. 반면, 제주도에서 경남이 양천수의 집을 아침에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집까지 가는 자동차의 동선과 현관까지 걸어가는 동선이 순차적으로 연결된다.

분수에서는 개구리가 헤엄치고 땅바닥에는 녹색의 애벌레가 기어가는 공간,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제천에서의 기나긴 꿈, 어쩌면 오해의 연속인 악몽 다음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에서의 이야기, 남의 영화를 심사하는 자리에서 자기 영화를 설명하는 자리로의 이동, 이제 경남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펼쳐진다. 여기서 경남은 존경하는 선배 양천수 화백과 그의 젊은 부인 고순을 만난다. 양천수 앞에서는 모른 척 했지만, 경남과 고순은 예전에 애인사이였고, 고순이 경남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헤어졌다. 고순은‘친구 이상으로 생각한다면 인연을 조금 더 확인해 보고 싶으니 전화 달라’며 경남의 마음을 떠보는 편지를 준다. 수영장을 바로 옆에 두고‘정말 물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던 경남은 제주공항에서 양천수가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을 본 다음에야 고순에게 연락을 한다. 고순의 집에서 두 사람이 만나 섹스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집 근처에 사는 조각가 청년이 그들의 밀회를 목격하면서 ‘꿈같은’ 현실의 순간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바닷가에서의 마지막 장면. 여기서 고순은 자신을 잡으려 하는 경남에게, (경남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작은) 문창길이 경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두 번이나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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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상영 시간에 참석했던 여학생도 경남이 아니라 문창길을 선택했었다. 경남과 문창길이 자신의 영화와 예술,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에 대해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표현만 다를 뿐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그 여학생은 경남에게는‘감독이 아니라 철학자’라고 냉소하고, 문창길에게는‘천재’라고 찬사를 보낸다. 제천의 여자들도 경남이 아니라 흥행감독과 자고 싶어 했었다….

경남과 고순의 마지막 대화는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무언가가 잡히는 게 아니라 자꾸 미끄러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경남은 고순의 말에 결국 모두 수긍을 한다. ‘내가 나도 잘 모르는데 딴 얘기를 어떻게 하냐’고 했던 경남이‘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라’는 고순의 말에 긍정을 한다. 그러니까‘잘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긍정. 거듭된 실패와 패배 뒤에 오는 비통한 긍정. 이때 카메라는 바다로 패닝을 하고 영화는 바다의 이미지에서 끝난다. 홍상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자연의 이미지만으로 끝나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인 것 같다. 다른 영화는 실내이거나 답답한 도시 공간 또는 꽉 막힌 공간에서 막을 내렸다. 〈해변의 여인〉에서조차 마지막 이미지는 멀리 즐비하게 서 있는 호텔이 보이고 모래사장에 자동차가 힘겹게 달려가는 장면의 정지화면으로 끝난다. 〈밤과 낮〉의 마지막 장면의 하늘은 벽지의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홍상수 영화에서‘자유’라는 말의 대구처럼 처음으로 탁 트인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정말 홍상수는 그 누구도‘잘 알지 못하는’것과 마주하려고 결심한 것일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홍상수의 걸작은 아니지만, 무언가 그의 영화‘여행’속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 것처럼 보이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유, 자연, 홍상수의 새로운 시작.

 


김경욱 영화평론가. 저서로『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이 있음.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겸임 교수. nirvana1895@hanafos.com

 

*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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