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61)은 유럽 영화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인간 감정을 다룬 그의 멜로 영화들은 언제나 관객의 상상을 한 뼘쯤 넘어선다.덕분에 알모도바르는 1935년부터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멜로드라마 장르를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일컬어진다. 그의 영화들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영화에서 등장 인물들이 걷는 감정의 행로는 거의 비현실적이라 불릴 만큼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아내가 남편을 양고기로 때려죽이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식물인간 여인과 사랑을 나누며 (〈그녀에게〉) 가톨릭 사제에게 당한 유년기 성추행 체험을 영화로 만들고자 시도한다 (〈나쁜교육〉). 이런 인물과 행동을 단순히 나열만 했더라면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정교한 미스터리 형식을 도입해 흥미를 배가시켰다. 주인공들이 어디에 당도할지 마지막 순간에야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거의 모든 장면들은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 원색의 향연으로 채색하거나 연극과 무용, 영화 속 영화 등 여러 장르 예술을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으로 삼는다. 이같은 장치들이 보태지면서 영화 속 기묘한 과장과 충격은 언제나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신작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 세계가 한층 원숙해졌음을 보여준다. 기괴한 상상은 잦아든 대신 한층 설득력 있는 장면들로 사랑의 본질을 명쾌하게 그려낸다.
영화감독 마테오(루이스 오마르)가 실명한 채 소설가로 살아가는 사연을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모의 여인 레나(페넬로페 크루즈)가 마테오 감독을 찾아와 오디션을 본다. 그녀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백만장자 에르네스토(호세 루이스 고메즈) 정부로 살고 있지만 여배우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다. 마테오는 단박에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한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두 사람은 에르네스토 몰래 깊은 관계를 맺는다. 마테오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한 레나는 에르네스토에게 결별을 통보한다. 그러나 에르네스토는 그녀를 쉽게 놔주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또 하나의 플롯이 곁들여진다. 실명한 마테오 감독의 곁을 지키는 여성 매니저 유디트(블랑카 포스틸로)와 그녀의 청소년 아들의 이야기다. 그들 사이의 말 못할 비밀들이 하나 둘씩 밝혀진다.
영화는 사랑의 불평등한 본질을 탐색한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기브앤 테이크(준 만큼 받는다)’란 비즈니스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사랑은 노력한다고 반드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랑의 총량제는 유효한 듯 싶다. 사랑이 다른 쪽으로 옮겨질 때 그들과 관계를 맺었던 상대에게는 그만큼의 분노와 질투, 혹은 희생을 요구한다. 에르네스토와 유디트는 레나와 마테오를 대단히 사랑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사랑을 잃은 그들의 행동은 각기 달랐다.
유디트는 사랑의 이타적인 희생과 헌신을 상징한다. 한때 마테오의 연인이었던 유디트는 그의 정념이 사라지자 스스로 매니저 역할로 강등시켜 그의 곁을 지킨다. 도입부에서 그녀는 실명한 마테오가 다른 여자와 욕정을 풀도록 자리까지 만들어준다. 단순히 매니저인줄 알았던 유디트의 과거는 마지막 순간에야 모습을 드러내 관객에게 충격을 던져준다.
에르네스토는 사랑의 이기심과 집착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는 게이 아들로 하여금 레나의 촬영 현장을 찍도록 감시한다. 그리고 레나를 잃었을 때 분노와 탐착으로 끔찍한 비극을 초래하고 만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무너진 포옹)이란 제목이 시사하듯, 알모도바르 감독은 사랑의 실패자들에게 시종 시선을 떼지 않는다. 레나와 마테오에 대한 에르네스토와 유디트의 사랑의 속성은 집안에 걸려 있는 그림으로도 표현된다. 에르네스토의 집에는 앤디 워홀의 ‘총’과 ‘칼’시리즈 그림들이 걸려 있다. 앤디 워홀은 황금 만능주의와 대량 소비심리를 반영하는 팝아트의 거장이다. 현대 소비사회의 총아격인 백만장자가 좋아하는 화가일 수밖에 없다. ‘총’과‘칼’시리즈 그림들은 현대인의 공격성을 시사한다. 이는 에르네스토가 집착하는 사랑과도 잘 어울린다. 탐욕과 소유욕은 으레 공격성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반면 실명한 마테오가 작가로 일하는 작업실에는 인간과 자연이 합일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동양 회화의 여백을 서양화에 도입한 미국 화가 로버트 마더웰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실명한 마테오에게 이 그림들은 사실 의미가 없다. 마테오와 함께 일하는 유디트와 그의 아들이 보고 즐기는 소품이다. 유디트에게 사랑이란 이처럼 영혼의 안식과 평화를 의미한다.
사랑과 영화가 극중에서 시종 긴밀한 관련을 맺는 것도 흥미롭다. 루이 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직접 끌어들인다. 종반부에는 젊은시절 망쳐진 마테오 감독의 영화를 복원하는 것과 흘러간 사랑을 회복시키는 상황을 겹쳐놓는다. 오랜 세월이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고,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셈이다.
극 중 마테오가 레나를 여주인공으로 찍었던 영화 〈걸스 앤 슈트케이스〉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코미디다.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통해 레나와 마테오, 에르네스토의 감정과 행동에 관객들이 더욱 공감할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불일치와 간극은 세 인물 사이에 놓인 페이소스를 길어올리는 데 기여한 듯 싶다.
레나의 촬영 현장을 찍은 다큐 필름을 에르네스토가 살펴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촬영장에서 마테오 감독과 나누는 레나의 속마음을 에르네스토가 입술을 읽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 듣는 이 장면은 기묘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목소리 감정(목소리 읽기 전문가)과 화면 얼굴 표정(레나)이 불일치한 모습이 어긋난 사랑의 상처를 절묘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이런 솜씨는 전작들에서도 발견된다. 가령 〈그녀에게〉에서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 〈카페 뮐러〉와 흑백 무성영화 〈쉬링킹 러버〉 등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이야기의 국면을 이끌어갔다.
섬세한 장면을 연출해내는 능력이야말로 그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많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일반 관객들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는 주제에만 빠진 나머지 세심하게 장면을 구성하지 못해서다.
그는 뛰어난 색채 감각을 여기서도 발휘했다. 눈물 한 방울이 빨간 토마토 위에 떨어진 후 미끄러져 내리는 쇼트는 얼마나 감각적인가. 화면 속 레나와 화면 밖 레나가 흰옷과 붉은옷을 입고 한 장면에서 같은 말을 하는 모습에서도 인물의 심리적 충격을 색감으로 시각화한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음악을 통해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도 탁월하다. 많은 작품을 함께 해 온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 음악 감독의 공이 크지만 감독 자신도 음악에 조예가 깊다. 여기서는 미국 인디 뮤지션 캣 파워Cat Power의 곡 〈베오울프Werewolf〉가 사랑에 거침없이 빠져든 연인들의 로맨스를 표현한다. 늑대인간과 한 여인의 사랑을 노래하는 이 곡은 레나와 마테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애틋하게 들려준다. 특히 몽환적인 느낌의 멜로디는 마테오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있던 레나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 행복이 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겹쳐진다. 알 수 없는 사랑의 미래를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감독과 백만장자로부터 동시에 사랑받는 여인 역은 페넬로페 크루즈다. 〈라이브 플래쉬〉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 이어 〈귀향〉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데 이어 알모도바르 감독과 네 번째 작업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만의 특별한 공감대와 유대감 때문에 나는 언제나 크루즈에게 어울릴 만한 캐릭터를 찾는다. 그녀와 작업한 이후 나는 더 나은 감독이 됐다.”
유재혁 고려대 영화 동아리 <돌빛> 창립 멤버. 《한국경제신문》문화부 차장. yoojh@hankyung.com
*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