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을 뒤흔든 놀라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2019)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즉위로부터 자진 사임, 이에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까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흥미로운 점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규율을 신봉하는 정통주의자인 것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혁을 지지하는 진보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안소니 매카튼이 자신의 2017년작 희곡 〈교황The Pope〉을 직접 각색하였고, 브라질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하였다. 안소니 홉킨스(베네딕토 16세 역)와 조나단 프라이스(프란치스코 교황 역)라는 두 거장 배우의 캐스팅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2019년 8월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되었고, 같은 해 10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에 초대되어 한국의 관객과 처음 만났다.
비밀스러운 바티칸 시국, 그 요새의 문이 열리고 가톨릭교회의 전·현직 교황을 꼭 빼닮은 두 교황이 등장하자 전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정통주의자인 베네딕토 16세와 개혁파인 프란치스코, 너무나 다른 두 교황이 과연 어떻게 갈등의 실마리를 풀어나갈지 기대가 되었다.
비밀스런 바티칸 시국, 환상적인 미술의 조화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을 맞아 추기경들은 교황청이 위치한 바티칸으로 모인다. 영화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인 ‘콘클라베’ 시퀀스를 통해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요제프 라칭거)가 교황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정교한 세트와 화려한 색감으로 재현한다.
교황 선출 비밀회의, 즉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릴 때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교황 선출이 진행 중이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있다. 영화 속 등장하는 배경이 세트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필자는 요한 바오르 2세가 즉위하던 2003년, 그리고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2005년,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다음해 2014년에 바티칸과 시스티나 성당을 취재한 적이 있다. 바티칸 내에서는 어디서도 촬영할 수 없기에 대화의 가장 주요 장소인 시스티나 성당 내부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는 실제와 너무나 닮아서 몰입감을 더했다.
이곳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가 천장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로도 너무나 유명하다. 미켈란젤로는 천장 프레스코화를 완성한 지 20년이 지나 서쪽벽에 다시 〈최후의 심판〉(1534~41)을 그렸다. 시스티나 성당의 제대 뒤 벽을 채우고 있는 벽화 〈최후의 심판〉은 맨 뒤에는 죄인을 심판하고 착한 이에게는 상을 주는 예수의 모습이 있다. 390명 이상의 인물이 그려진 200㎡가 넘는 거대한 그림이다. 예수를 중심으로 꼭대기의 천상계, 튜바를 부는 천사, 죽은 자의 부활 승천, 지옥으로의 추락 장면으로 나뉘어 있다. 예수 바로 옆에는 성모마리아가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는데 주위에는 순교한 성인과 교황이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세계 미술사상 최고의 명작 〈천지창조〉라는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게 된 것이 운명이었듯이 가장 정통을 중시한 교황이, 가장 정통적이지 않은 선택을, 그것도 신념이 다른 개혁파에게 권력을 넘기는 선택을 한 이유도 운명이었을까. 천장화는 직사각형 그림 둘레에 테두리 장식을 그려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두 교황〉 영화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처음 대하는 관람객들은 이 거대한 작품 규모와 신의 경지에 이르는 그의 초인간적인 능력에 압도당하고 숙연해진다.
또한 수 세기 동안 교황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던 이탈리아 로마 외곽의 카스텔 간돌포 저택의 내부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3층 규모의 ‘ㅁ’자의 건물이 안뜰을 에워싸고 있는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은 교황의 침실과 서재, 도서관, 교황이 미사를 드리던 성당, 교황의 부속 비서실 등 내밀한 공간을 품고 있다. 각 방에는 교황의 권좌와 책상 등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놓여있고, 역대 교황의 초상화와 흉상,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과 조각상 등 종교적인 색채가 물씬 묻어나는 다양한 그림들도 벽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실제 이곳을 방문해보지 않은 관객들일지라도 이 비밀스런 공간으로 꼭 여름휴가를 다녀온 기분이 들 것이다.
이처럼 〈두 교황〉은 ‘바티칸’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소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대화’라는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교황의 여름 별장, 로마로 향하는 교황 전용 헬리콥터 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진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의 제의실, 그리고 은퇴한 교황의 자택 등 장소를 옮겨가면서 두 교황은 가톨릭교회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 개인적 고민과 상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통한다.
두 교황의 다름, 그리고 환상 연기
즉 영화는 정통과 개혁이라는 두 가지 다른 입장으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면서도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권력의 무게와 책임, 리더십, 도덕적 갈등과 사람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모든 감동은 오로지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라는 명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 교황의 대화만으로 러닝타임을 채우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연기거장 안소니 홉킨스와 연극과 영화를 넘나드는 명품배우 조나단 프라이스가 완벽한 싱크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황의 모든 영상을 보고 걸음걸이, 말투, 움직임, 말을 끊는 방식까지 디테일하게 구현한 두 거장 배우를 보노라면 잠시라도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꼭 실제 교황이 직접 출연한 다큐인 줄 착각할 뻔했다. 흔히 안소니 홉킨스 하면 〈양들의 침묵〉에 나왔던 무시무시하고 엽기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 악랄한 한니발 역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연기 변신을 할 줄이야. 역시 연기파 배우라는 걸 실감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과 만날 때에도 복장까지 따지는 원칙주의자이다. 반면 권위적인 복장은 무시하고 오직 민중의 삶과 함께하려는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의 통치 방식이 불만이다. 지금 바티칸은 베네딕토 16세의 비서가 기밀문서 유출과 부패 혐의로 구속되었고 성직자들의 성추행으로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베르고글리오는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베네딕토 16세가, 베네딕토 16세는 이런 상황에서 추기경을 그만두겠다고 사직서를 제출하려는 베르고글리오가 서로 마땅치 않다. 그 대립과 갈등이 이뤄지는 현장은 교황의 여름별장에서다. 영화의 카메라는 각자가 주장을 펼칠 때마다 인물의 클로즈업으로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친다. 그러다가 베르고글리오 너머로 멀어지는 베네딕토 16세를 핸드헬드로 한 화면에 흔들리게 포착한다.
서로 갈등하고 등 돌리는 그들이 함께 공유하는 가치도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닌 한낱 인간이라는 것이다. 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의 갈등으로 관계의 장벽을 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차기 교황으로 베르고글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베르고글리오는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시절 동료 성직자와 신도들을 구하려 독재자와 만난 것을 두고 군부와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은 과거 전력 때문에 자신은 결코 교황 자격이 없다고 거부한다. 이를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벽화로 유명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베네딕토 16세에게 고백한다. 그의 고해성사를 들은 베네딕토 교황은 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가 납치 고문당한 신부 외의 다른 신도들을 학살로부터 구하기 위해 남몰래 활동했고, 이후 속죄하는 마음으로 빈민들을 돌보고 일하며 살아온 점을 들어 그의 죄를 사하고 용서해 준다. 순간 내 죄도 사함 받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아 나 또한 지난 과오를 고해성사하고 사죄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고해성사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참회의 행위요, 자신의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부끄러워하는 최소한의 인간 된 도리가 전제된다. 베네딕토 16세도 사면초가에 놓인 바티칸의 위기 앞에서 고해성사했으면 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베르고글리오다. 그 때문에 교황은 베르고 글리오 추기경을 바티칸으로 부른 것이었는데 베르고글리오가 부름이 있기 전 바티칸 행 비행기표를 구했다는 얘기를 듣고 베네딕토 16세는 신의 응답임을 확신한다. 베네딕토 교황도 자신의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를 한다. 교황의 권위와 안녕을 위해 성추문 사건의 은폐를 시도한 자신의 행동과 그 이후 성령의 존재를 느끼지 못함을 고해성사한다. 그는 바티칸의 권위 때문에 후속 조처를 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자진 사임할 것을 알린다.
흔들리면서도 이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건 그런 전력에 벽을 세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고 신이 인도하는 길로 나가는 숭고한 행위에 있다. 〈두 교황〉을 보고 있으면, 적대할 수 있는 사이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그 갈등의 과정에서 쌓이는 단단한 신뢰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신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관계의 다리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름과 변화를 인정하는 갈등의 힘
대화가 진행되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신과 달리 적극적이며 자유로운 진보적 성향의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에게 끌린다. 그들의 대화는 어느새 교리 논쟁을 넘어서 일상생활과 취미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스웨덴 팝 그룹 아바가 등장하고 비틀스를 언급하고, 어린 시절 성직을 택하던 고뇌의 순간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피아노를 치는 음악가 지망생, 유머를 모르는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어느새 탱고를 좋아하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이해하게 된다. 맛 없는 독일 음식을 혼자 먹던 그가 추기경과 함께 길거리 피자도 즐긴다. 추기경도 교황의 인간적 고뇌를 알게 되고 그의 은퇴 계획을 받아들인다. 1년뒤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서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압도적 표차로 선출된다. 교회의 역사가 바뀐 것이다. 약 1400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권 교황에다 개혁적이고 진취적이며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간 그의 ‘남다른’ 활동 이력처럼 그는 시대의 과제인 불평등 구조를 비판하고, 가난한 사람과 불쌍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교황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한국인에게도 꽤 친숙한 교황이다. 2014년 8월 방한했을 때 차에서 내려 세월호 희생자 유민 아빠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해주던 모습은 한국인의 뇌리에도 강하게 박혔다. “장벽이 아닌 다리를 지어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모두의 잘못이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오늘날 우리 상황을 일깨우는 죽비와도 같다.
베네딕토 교황 또한 교황은 신이 아니며 사람으로서 길을 가다 헤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과 죄를 참회하고, 개선과 치유와 화합을 몸소 실천하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다. 대의를 위해 가톨릭이 직면한 변화와 위기를 자신보다 더 잘 감당할 수 있는 추기경에게 권력을 넘겨준 사실만으로도 그는 세속적인 삶을 넘어선 사람이다.
영화 마지막에 두 교황이 와인과 독일 맥주를 마시며 2014년 월드컵을 시청한다. 이 또한 교황도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지극히 휴머니즘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 예다. 두 교황은 흑백논리, 진영논리가 아니라 서로 다름의 견해 차이를 어떻게 풀어가는 지 실증적인 방식으로 일깨운다. 서로 너무 다르지만 또 묘하게 닮은 두 사람의 밀당과 완벽한 케미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묘미이다. 베르고골리오에게는 베르고골리오만의 방식이 있고, 베네딕토 교황에게도 베네딕토 교황만의 방식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그 갈등을 함께 대화로 소통하는 동안 그들은 “타협한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이다. “삶은 본래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정순 _ more-son@hanmail.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과 저서로 『흰 그늘의 미학, 김지하 서정시』, 『목월 詩의 현대성』, 『문화예술현장에서 통섭적 글쓰기』 등이 있음. 숭의여대 겸임교수.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