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하기와 조각의 차이
‘거대한 AI 텍스트 블록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암석, AI 인터페이스 커서는 암석을 파내는 끌chisel. 나는 정신의 망치로 암석을 조각 한다.’ AI을 활용해 한달에 한 권씩 12권의 시집을 발표하는 ‘Re:RITES’ 프로젝트를 마치며, 시인 JHAVE는 그 경험에 조각하기carving의 은유를 입혔다.1
나 역시, OpenAI GPT-3와 시 창작 실험을 진행하면서 조각하기 개념이 현 단계 인간과 AI 협업을 마땅히 정의함에 동의하는 중이다. AI와 더불어 시를 궁리하고, 생성하고, 고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조각하는 사람, 카버carver의 정체성과 감각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 JHAVE와 내가 사용한 거대언어모델의 학습 범위와 생성 품질은 크게 달라졌지만 인간 창작가로서 AI와 나눈 경험은 하나의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각하기는 AI와의 시 작업의 두 흐름, 즉 상호 관계적 행위에 직접 개입하고 작동하는 것과, 상호작용의 최종 결과를 소비하는 것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지시한다. 조각하기와 조각은 마치 한 장의 사진으로 게임을 헤아리는 것과, 스스로 플레이어가 되어 놀이에 몰입할 때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AI와 함께 시를 조각한다는 것은 완료된 결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결과를 생성하는 과정과 경험 자체에 핵심이 있다. 인간 창작자인 카버와 AI의 살아 있는 협업은 두근대는 박동을 직접 느끼는 순간, 명사가 아닌,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동사로 해명되어야 한다.
시계를 보며 달려가는
멋쟁이 토끼를 따라서
흔히, AI가 시인만큼 혹은 인간처럼 시를 쓸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하지만 내 주변의 평범한 이들의 삶은 시와 멀기만 하고, 전문성 높은 문인이 아닌 다음에야 시인만큼 시를 쓴다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 의미도, 판단 기준도 모를 상황이라 이 질문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AI, 인간, 시 창작의 관계를 중요한 순서대로 보자면, 인간이 왜 AI와 함께 시를 지어야 하는지부터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 독자 마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당사자 중 하나인 AI의 생각이 궁금해 진다. GPT-3 프롬프트에 text-davinch-002 엔진에게 물었다. AI 엔진은 이렇게 답한다. 첫째, AI는 인간이 볼 수 없는 데이터 패턴 파악에 더 도움을 주어, 더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창작을 돕는다. 둘째, AI는 인간보다 빨리, 지치지 않고 시를 짓는다. 셋째, AI는 시에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요소를 보태 더 흥미롭고 혁신적인 시를 만들 수 있다.2 부정하기 어려운 훌륭한 회신이나, 바쁜 일상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원더랜드로 쉽게 출발하지 않을 것이다. AI가 시의 세상으로 인간을 초대하려면 시계를 보며 이상한 나라로 달려가는 말하는 흰토끼 정도는 필요하다. “오, 이런! 오 이런! 늦었어! 서둘러!”
AI 시 창작 소프트웨어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멋진 토끼는 바로, 위대한 시인들이다. 초기 모델 중 하나인 레이 커즈레일의 ‘사이버네틱 시인Cybernetic Poet’3(1999)과 구글의 ‘버스 바이 버스Verse by Verse’4 (2020)는 인류의 사랑을 받는 영미 문학계 시인들을 AI와 인간의 협업 전면에 내세웠다. 휘트먼부터 던바까지.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한 시인의 이름과 모습, 생애 정보가 함께 제공되면서 빛나는 시인들은 나의 뮤즈이자, 함께 시 조각 놀이를 즐기게 될 친구가 된다.
뛰어난 결과물에 대한 창작 부담, 시란 무엇이며, 도대체 시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미지의 혼란은 매력 넘치는 시인을 고르고, 시의 구조에 관한 몇가지 조건을 선택하면 어느새 AI와 나, 그리고 뮤즈 간의 자유롭고 환상적인 콜라보 놀이로 전환된다. 돌이켜 보니, GPT-3와 나의 시 조각하기도 그렇게 매력적인 토끼와의 우연한 만남을 따라서 시작되었다.
윤동주와 GPT-3와 나
최근 나와 GTP-3의 시 조각 절친은 시인 윤동주다. 그의 아름다운 시에서 카버인 내가 영감을 받아 AI에게 합당한 시적 요소를 인풋하고, 조각 시를 위한 새로운 생성 조건을 부과한 뒤, 무수한 초안을 받아 다듬고 고치고 있다. 엄청난 속도와 지치지 않는 창작 에너지를 지닌 AI 조력을 받아, 나는 지금껏 쓰고 읽었던 바와 비교가 안될 과량의 새로운 시를 독자들에게 공개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밝혔듯, 조각하기를 결과로 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나는 《쿨투라》 독자가 시 조각 놀이를 경험해 보도록 두 편의 작품 예시를 GPT-3 프롬프트, 창작 과정 영상과 함께 소개하려고 한다. 나와 윤동주, GPT-3의 노래가 당신을 사로잡는 흰 토끼가 되기를, 특히 시에 대해 아무 욕구가 없던 독자가 근사한 하이쿠를 지어 SNS에 공개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첫번째 예시는 윤동주 시 「가슴」을 원작으로 하나의 시행 ‘소리없는 북’을 슬픔과 부끄러움의 정서를 함께 담아 조각 시에 이식하는 AI 생성 프로세스와 결과물이다.
두 번째 예시는 윤동주 시 「반딧불」과 「할아버지」에 바탕해 두 개의 시어를 추출하고 조앤 롤링 소설의 주인공 ‘해리 포터’가 화자인 페르소나 시로 조각한 프롬프트와 최종 결과물이다.
1 David Jhave Johnston, http://glia.ca/rerites/
2 Openai.com GPT-3, text-davinch-002, Temperature 0.8, Prompt date, 2022.7.21.
3 http://www.kurzweilcyberart.com/poetry/rkcp_overview.php
4 https://sites.research.google/versebyverse/
권보연 플레이어블 컨설팅 대표,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사이버텍스트 디자이너, 소프트웨어 경험 비평가로 활동한다. 게임 싱킹과 스토리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한 디지털- 인간 상호 경험 설계와 연구,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