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K-드라마, 글로벌 공감대: 내가 재밌으면 남도 재밌다
[8월 Theme] K-드라마, 글로벌 공감대: 내가 재밌으면 남도 재밌다
  • 주찬옥(드라마 작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8.01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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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이 우리나라에서 흥행한 것은 당연하다. 남한 재벌 딸과 북한 인민 장교의 로맨스라는 색다른 관계가 중심을 잡은 데다가 박지은 작가 특유의 맛깔나는 조연 캐릭터들의 재치있는 수다도 풍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유머를 좋아한다.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 로맨스물이나 박재범 작가의 〈열혈사제〉 〈빈센조〉등이 그렇다. 심지어는 군 탈영병 얘기인 〈D.P.〉에서도 유머는 윤활유로 들어간다.

물론 패러글라이딩 하다가 돌풍에 휘말려 북한에 불시착한다는 설정부터 판타지고 그 외 여러 디테일들이 현실적이진 않다. 그러나 탈북자인 보조작가를 기용, 꼼꼼히 취재한 뒤 남북한의 서로 다름을 유머코드로 활용한 점은 재치있다. 북한 사회가 드라마 전면에 등장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는 이유는 통일이라든가 남북 화해 모드를 굳이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사회의 일상은 복고풍의 향수 효과를 주었다. 사람들은 별 편견이나 혐오없이 북한의 일상을, 우리와 다른 언어를 즐겼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좋아할 요소가 충분해서 시청률이 수직 상승하는게 맞지만 해외에서, 특히 일본에서 장기간 넷플릭스 1위를 했다는 점은 얼핏 생각하면 의아하다. 왜? 번역도 충분치 않았을테고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정서적 공감대에 대한 이해가 없을텐데 무엇 때문에? 현빈이라서? 현빈, 손예진이라서?

당연 현빈은 무뚝뚝하고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었으며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담아낸 데다가 드넓은 어깨마저도 연기를 했고 손예진은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그래도 과연 그게 다일까?

나는 그 답이 대중성에 있다고 본다. 남북한의 특수한 설정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전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애절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렇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인 데다가 서로 목숨까지 건 사랑이라니! 실제로 리정혁과 윤세리는 한번씩 상대를 위해 몸을 날려 총을 맞기도 했다.

이번에는 오징어 게임을 보자.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드라마 틀은 해외에서도 흔한 장르지만 게임 내용은 사실 우리에게만 익숙하다. ‘딱지치기’부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 심지어 구슬치기의 무대세트는 8·90년대 흔했던 동네 골목길, 낮은 담, 양철 대문 양옥집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공되는 식사도 ‘밥에 계란 프라이’가 들어있는 옛날 양은 도시락으로 시작해 ‘소보로 빵과 우유’, ‘삶은 계란과 사이다’ 등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신파라고 혹평받았던 인정주의, 인간적인 이야기가 사이 사이 끊임없이 채워진다. 결정타는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 얻은 상금인데 일년동안 황금 보기를 돌같이 전혀 쓰지 않고 있다가 오일남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벽 동생과 상우 엄마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표표히 떠나는 결말에 있다. 너무나 한국적이지 않나? 물론 비행기 타러 가다가 돌아서긴 했지만.

기존의 익숙한 장르를 가져와 그 속을 멋대로, 우리 입맛에 맞게 채워 성공한 케이스는 그 외에도 많다. 〈지옥〉이 그렇고 〈킹덤〉 〈살아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좀비물이 그렇다.

지옥은, 커피숍에서 두려움에 떠는 한 남자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지옥사자들이 지축을 흔들며 나타나자 필사적으로 달아나지만 지옥사자들은 가차없이 쫒아가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한 뒤 안 그래도 왜소한 그 남자를 한 줌 숯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 보통 장르문법에 의하면 주인공은 그 괴생명체가 무엇인지 밝혀가면서 그 존재들과 맞서 싸우는 영웅담으로 흐르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에선 “고지”하거나 “시연”하는 존재와 과정에 대해선 끝내 밝히지 않는다.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이다. 종교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후 어떻게 세력화하고 부를 축적하는지를 따라가고 거기에 편승하는 화살촉이라는 미디어 환경을 말하고 싶어할 뿐이다. 연상호 감독의 도발적이고 참신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K-좀비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한국형 좀비물도 마찬가지. 시체처럼 흐느적거리지만 떼로 몰려들기 때문에 공포스러웠던 좀비들은 한국에 와서 좀 더 거친 활력, 생명력을 얻었다. 좀비들은 관절을 꺾으며 거꾸로 일어나 엄청난 스피드로 돌진한다. 단순 엑스트라가 아닌 비보이나 댄서들을 캐스팅한 덕분이라고 한다. 여기에 빈부격차, 혐오 등등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제가 기본으로 깔린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다.

K-드라마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자 국내외에서 숱한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그러니 이제는 기획 단계부터 세심하게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제발, 절대, 혹시라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업계에선 드라마 한 편 성공한 뒤 후속작이 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그렇다. 그게 부담감이든 자만심이든.

이쯤에서 싸이의 얘기가 떠오른다. “나는 그저 웃고 즐기자고 만든 음악이고 재밌자고 만든 〈강남스타일〉 뮤비인데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해외 클릭수가 어마어마해져서 놀랐다”

그냥 창작자들이 재밌어하면서 만들면 된다. 해외 시청자라고 다르지 않다. 같은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공감대를 믿으면 된다.

 


주찬옥 드라마 작가.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매혹〉으로 데뷔했으며, 〈사랑〉(MBC, 1998년) 〈수줍은 연인〉(MBC, 1998) 〈외출〉(SBS, 2001) 〈남자를 믿었네〉(MBC, 2011) 〈운명처럼 널 사랑해〉(KBS, 2014) 등을 썼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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