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누구나 결함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파수꾼』
[문학 월평] 누구나 결함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파수꾼』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0.07.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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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파수꾼』

  언젠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소설을 이야기하는 데 이 작가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어서다. 누군가 하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여 일본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읽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아베 정권에 충성하는 어용 예술가가 아닌 한에서, 그가 매력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인 한에서, 얼마든지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도 좋다고 여긴다. 문화와 정치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부정하는 입장에 선 것은 아니다. 다만 문화가 정치에 압도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문화가 그 자체로 내적 자율성을 보존하고 있음을 내가 믿는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는 작가다. 독서 시장에서 그는 신뢰받는 브랜드다. 출판사와 서점과 독자,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뜻이다. 출판사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판매량이 보장되니 좋고, 서점도 덩달아 마진을 남길 수 있으니 좋고, 독자는 재미와 감동의 만족도가 높으니 좋다. 보통 다작의 작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박하다. 많이 쓰면 아무래도 개별 작품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예외다. 다작이되 태작이 거의 없다. 『유성의 인연 1·2』, 『환야 1·2』, 『녹나무의 파수꾼』,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아들 도키오』, 『숙명』. 올해 1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 한국 출판계에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이 이 정도다. (재출간을 포함한 목록이나, 재출간 역시 인기가 없으면 될 수 없는 법이다.)

  이 중에서 내가 관심 있게 읽은 소설이 3월에 나온『녹나무의 파수꾼』이다. “소원을 100% 들어주는 신비한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옆 사람과 서로 마음을 열고 만나기를 빌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서다. 그는 본격미스터리소설 외에도 추리형식과 휴머니즘 주제를 결합한 소설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 대표작이 한국에서만 누적 판매 부수 100만 부를 기록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2)이다. 시간을 넘나드는 편지—상담을 통해 개과천선하는 세 도둑의 기묘한 체험을 담은 이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쁜 길에서 바른 길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긍정하고 응원한다. 이와 같은 메시지가 『녹나무의 파수꾼』에도 반영돼 있다.

  주인공은 ‘나오이 레이토’라는 청년이다. 주거 침입·기물 파손·절도 미수로 유치장에 갇힌 그는 자신을 면담하러 온 한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유가 없던 레이토는 그가 도대체 왜 본인을 찾아왔을까 궁금하다. 그 변호사는 어떤 의뢰인의 부탁을 받아 레이토를 만나러 왔다고 용건을 밝힌다. 의뢰인의 전언은 간명하다. 변호사가 일을 처리하면 레이토가 곧 석방이 될 테니, 그 뒤 곧바로 자신을 찾아오라는 것. 레이토는 미지의 의뢰인이 자기에게 특별히 시킬 게 있다는 말을 듣고, 혹시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긴가민가하던 차에 그는 동전던지기로 자신의 선택을 결정한다. 운명의 결단을 운에 맡긴 레이토는 동전의 점지에 따라 제안을 승낙한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유치장에서 나온 레이토. 그는 드디어 의문의 의뢰인을 만난다. 그녀는 예순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야나기사와 치후네’라는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치후네는 지금까지 있는지조차 몰랐던 레이토의 이모였다. 그렇다고 갑자기 두 사람이 살가운 사이가 된 것은 아니다. 치후네는 변호사를 거쳐 이전에 전했던 그 임무를 레이토에게 사무적으로 맡긴다. 그가 ‘월향신사’라는 곳의 녹나무를 관리하는 파수꾼으로 일하라는 명령이었다.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던 레이토는 녹나무의 파수꾼이 돼, 이 나무와 관련된 여러 사람을 만난다. 이상의 내용이 『녹나무의 파수꾼』 줄거리다. 스포일러가 되므로 자세한 언급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 작품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바람직한 성장에 강조점을 둔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천성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결정론에 관한 반박으로 이어진다. 레이토가 유치장에 수감된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장은 그를 다음과 같이 비난한 적이 있다. “결함 있는 기계는 아무리 수리해도 또 고장이 난다, 그 녀석도 마찬가지로 결함품, 언젠가 훨씬 더 나쁜 짓을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갈 것이다.” 변호사는 레이토에게 이 말을 전하며 덧붙인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해.” 『녹나무의 파수꾼』은 레이토가 이 말을 실천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는다. 그는 삶의 중요한 판단을 동전던지기에 의존할 만큼, 자신감이 결여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토는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치후네를 비롯해 월향신사 녹나무를 방문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덕분이다.

  이 소설의 녹나무가 영험하기는 하다. 하지만 진짜 영험한 것은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소원을 100% 들어주는 신비한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옆 사람과 서로 마음을 열고 만나기를 빌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핵심은, ‘신비한 나무’가 아닌 ‘옆 사람과 서로 마음을 열고 만나기를 빌어보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녹나무의 파수꾼』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 나은 작품이라고 보진 않는다. 이 작품은 빈민가 출신의 인물을 교육시켜 상류층에 편입시키는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의 강점(변신 서사의 입체성)과 약점(교화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가스 라이팅)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인간은 누구나 결함을 갖고 있으며, 결함을 고치기보다는, 이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존재임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돼서다. 이런 인간에게 기계라니, 그럴 리가.

 

 

* 《쿨투라》 2020년 6월호(통권 7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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