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장재선 시집, 『별들의 위로』
[신간 안내] 장재선 시집, 『별들의 위로』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4.12.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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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대중문화 스타들의 빛, 
위로의 시어詩語로 품다

 

 

노래하며 춤추는 봄의 마음들 곁에서    
빛을 잃은 이들을 잊지 말기를 바라며 

- 장재선 시집 『별들의 위로』

 

‘멀리서 보면 아득히 빛나는 별이어서 좋다. 가까이 만나면 동시대를 함께 걷는 벗이어서 정겹다. 이 책에서 시(詩)로 만난 스타들이 그렇다. 

나는 이분들에게 빚을 크게 졌다. 일상의 나날에서 상실감, 우울증, 치욕감으로 휘청거릴 때 이들의 영화와 드라마, 노래에서 위로를 받았다.  

어찌 나 뿐이겠는가. 곡굉지락(曲肱之樂), 몸 누일 곳 없어서 자기 팔뚝을 베고 누운 처지여도 애써 즐거움을 찾으며 웃고 사는 이가.’

 

장재선은 시집 『별들의 위로』 여는 글에 이렇게 적었다. 이걸 보면, 그는 우리 시대를 건너가는 여느 사람처럼 일상의 나날에서 상실감, 우울증, 치욕감을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스스로를 격려하며 나날을 견딘다. 그때 그는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가상의 세계, 즉 영화와 드라마로부터 힘을 얻었다. 대중의 정서에 소구하는 가요에게서도 위로를 받았다.

그 영화와 드라마, 가요의 주인공인 대중문화 스타들의 빛. 그것에 빚졌다는 것이 장재선의 고백이다. 

시인인 그는 그 위로의 빛을 시(詩)에 담기 시작했다. 빚진 것을 갚고자 하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발로였다. 언론사에 오래 재직하며 대중문화계를 취재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지난 2017년에 나온 책 『시로 만난 별들』이다. 황정순, 최은희 배우부터 걸그룹 소녀시대까지 자신이 만났던 스타들의 이야기를 시와 산문에 수록했다. 대중문화와 순수문학을 결합한 형태의 새로운 책이어서 독자의 반향이 컸다.

 

이 책 『별들의 위로』는 『시로 만난 별들』의 후속편 격이지만,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산문 비중이 높은 전작과 달리 시문에 중점을 뒀다. 시작 메모 형태의 산문은 시 작품을 이해하는 데 거드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 “시문을 중시 여기는 한국인의 문화 전통을 존중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유를 댔다. 그는 “서울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 도어에 시를 게재하고 있을 정도로 시문을 사랑하는 우리 한국인이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장재선은 이번 책 여는 글에 이렇게 적었다. “짧은 시문을 읽으며 길게 미소를 지었으면 한다. 그 웃음이 모여서 우리 모듬살이를 조금이나마 환하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광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어질머리를 느끼는 분들이 잠시 숨을 고르셨으면 한다.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를 시로 호흡하며 모쪼록 즐겁기를 바란다.”

 

 

이번 책은 고 송해(1927-2022) 선생부터 차은우(1997- ) 배우까지 생년 순으로 수록했다. 37명의 인물을 4부로 나눠 수록함으로써 각 부마다 한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알 수 있게 했다.

 

 

1부는 송해, 남궁원, 박근형, 김혜자, 박정자, 윤정희, 박인환, 윤여정, 김민기, 고두심 등 한국대중문화사의 큰 별들을 대상으로 한다.

맨 처음에 나오는 송해는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3년간 진행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를 다룬 시 「노래하는 마음 곁에서」는 세상에 밝은 기운을 전하고 싶어 했던 방송인의 삶 이면에 있는 아픔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서울시가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 도어 시로 선정했다. 「전국노래자랑 송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다.)

 

세상 고샅고샅 노래를 전하는
삐에로를 자처했으나 
그는 망향의 시간을 다스리느라
나날이 면벽한 도인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도통해 청춘으로만 살게 돼
푸른 계절의 빛을 노래에 실어 
가을과 겨울에도 마구 퍼트렸다
무거운 세월을 경쾌한 웃음으로 바꾸고
취흥에 겨워서 흔들거리는 척
모든 계절의 곡조를 다 품어주다가 
툭, 사라졌으나

지금도 누구 눈에는 그가 보인다 
노래하고 춤추며 웃는 
그 봄의 마음들 곁에서.

- 「노래하는 마음 곁에서 - 故 송해 방송인」 전문

 

 

책의 2부는 가수 겸 배우이자 방송 진행자이며 화가이기도 한 김창완이 첫머리를 장식한다. 윤석화, 이미숙, 최수종, 박찬욱, 강수연, 김혜수, 이정재, 전도연 등의 이름이 그 뒤를 이어서 함께 자리한다. 1950~1970년대에 출생한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서양의 대중문화와 한국의 수준을 견주며 그걸 높이는 데 기여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들이 쌓아 온 바탕 위에서 우리 대중문화가 외부 세계와 가까워졌다. 이들의 기여는 대부분 현재 진행형이지만, 고 강수연 배우처럼 이별의 아우라로 그걸 되새기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이별이 낳는 것은 그리움만은 아니다
짧았던 날이어서 그토록 뜨거웠구나
결국은 다 탔구나

이제야 저들이 질시의 칼날을 거두고
저녁노을에 서서 술잔을 기울인다
당신을 할퀴었던 입들이 단술을 쏟아낸다

푸른 나무의 그늘 아래서
당신의 꿈은 늘 여리게 숨 쉬었건만 
저들은 일찍 얻은 화관에 당신을 가두었구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꿈속에도
당신이 살아 숨 쉬니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 또 무얼 주고 있구나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 「이별이 낳는 것은 - 故 강수연 배우」

 

 

3부는 그룹 god, 박해일, 박진희, 탕웨이, 한혜진, 전미도, 윤시윤, 한효주 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출생인 이들은 대중문화 인물로서 개인의 성공에 힘쓰는 한편 더불어 사는 가치를 존중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퍼트린다. 탕웨이처럼 중국 국적이면서도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계에 스민 인물도 마찬가지이다. 3부의 맨 마지막 인물인 한효주를 다룬 시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자신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세계로 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뚜렷하다.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꼭 나아간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제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며
오늘의 외로움과 동행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뒷면에서 온힘을 들여 
앞면으로 자신의 색을 밀어보이듯
남다르게 쌓아온 시간의 공력으로 
슬기를 품은 백지를 짓는 것이다
그 백지에 천 개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어디로든 여행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꼭 새 길로만 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길 위의 얼굴이 달라서 
그 모든 얼굴로 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 한효주 배우」 전문

 

 

4부는 그 이름들(권유리, 임윤아, 서현, 임지연, 이세영, 수지, RM, 문가영, 차은우)에서 보듯 현재 크게 주목받는 이들이다. 1990년대생인 이들이 일구는 밭이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일 것이다.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며 활동하는 이들의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길 바라는 마음을 각 시편에 담았다. 또한 그들이 세상의 한 켠에 존재하는 그늘을 잊지 말아 주기를 바랐다.

 

오월의 햇살 아래 그녀와 정동 길을 걸으며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그녀의 아들을 생각했고
잊지 못하기에 한 번도 말하지 않는 그 마음이 
못내 걸려서 걸음을 몇 번 멈춰야 했다

그날 밤 당신의 눈물을 만났다
친구를 잃은 당신이 
괜찮아 보이는 것도 싫고
안 괜찮아 보이는 것도 싫다며 
눈시울을 붉힐 때 
내 눈도 뜨듯해졌다 

세상의 모든 햇살을 받는 당신이
빛을 잃은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언제나 잃지 말기를 바라며

나는 그날 밤 잠 속에서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었다.

- 「세상의 모든 햇살을 받는 당신 - 차은우 배우 겸 가수」 전문

 

책의 순서대로 각 시편을 읽으면, 한국 현대 대중문화사 흐름을 헤아릴 수도 있을 듯싶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이 익숙하게 아는 인물이 나오는 부분부터 읽어도 좋겠다.

저자는 앞으로도 이 작업을 할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스타가 시의 공간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그들을 통해 개인의 성공 욕망과 공동체 정신이 어떻게 만나는지 살피는 일은 매혹적이다.

 

부록으로 영문 번역 시를 담았다. 영문학자인 김구슬 교수가 옮긴 것들이다. 시인이기도 한 김 교수의 내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자막을 번역했던 달시 파켓이 감수했다.

이번엔 5편만 선보이지만, 향후 더 많은 작품을 외국어로 옮기고 싶다는 게 저자의 소망이다. 한국 대중문화 인물에 대해 운문으로 읊은 것을 외국인들도 함께 즐기기를 바라서이다.

 

 


저자 장재선 시인

고려대 정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업.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신인상), 서정주문학상 등 수상.

 

 


차례

여는 글

 

1부

노래하는 마음 곁에서 - 故 송해 방송인 16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였다 - 故 남궁원 배우 18
그리워진 정읍井邑 - 박근형 배우 20
오늘을 사셔요 - 김혜자 배우 22
고도를 만나는 순간 - 박정자 연극인 24
사랑의 기억 - 故 윤정희 배우 26
춤의 꿈, 나빌레라 - 박인환 배우 28
그 모든 시간이 - 윤여정 배우 30
사람농사 뒷것 - 故 김민기 음악인 겸 연출가 32
섬의 유전인자 - 고두심 배우 34

 

2부

허공이 그릇이다 - 김창완 가수 겸 배우 38
기막힌 동행 - 윤석화 연극인 40
언제나 당신으로 - 이미숙 배우 42
지지 않는다 - 최수종 배우 44
범신에 닿기 - 박찬욱 영화감독 겸 사진작가 46
이별이 낳는 것은 - 故 강수연 배우 48
풍염한 전설을 함께 짓다 - 김혜수 배우 50
적요를 어루만지며 - 이정재 배우 겸 감독 52
비밀의 햇빛에 갇히지 않고 - 전도연 배우 54

 

3부

이십 오년의 조각 - 그룹 god 58
헤어질 수 없는 향기 - 박해일 배우 60
에코 지니의 가방 - 박진희 배우 62
꿈속의 빛 - 탕웨이 배우 64
그래도 장미향이 남는다 - 장나라 배우 겸 가수 66
하트 수세미 - 한혜진 배우 68
언제나 해피엔딩- 전미도 배우 70
탄생 - 윤시윤 배우 72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 한효주 배우 74

 

4부

알다가도 모를 - 권유리 배우 겸 가수 78
중심의 자격 - 임윤아 배우 겸 가수 80
그래도 오늘의 나는 - 서현 배우 겸 가수 82
멈추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임지연 배우 84
여름 꿈에서 - 이세영 배우 86
화로에 던질지라도 - 수지 배우 겸 가수 88
그림에 스미다 - RM 가수 겸 미술 수집가 90
내일의 행복 - 문가영 배우 92
세상의 모든 햇살을 받는 당신이 - 차은우 배우 겸 가수 94

 

부록 Appendix: Poems traslated into English 영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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