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김한솔 기자 통번역_옥유롬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이향진(영화평론가, 릿쿄대 교수) 달시파켓(번역가, 영화배우) 강수미(미술평론가, 동덕여대 교수)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손정순(사회, 본지 발행인)
손정순 안녕하세요? 한류열풍으로 한국문화는 이제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K-콘텐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쿨투라는 제75회 칸영화제 기간 동안 칸 프레스센터에서 25개국 100명의 기자를 만나 ‘한류열풍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기자들은 한류와 K-콘텐츠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성심성의껏 설문에 답했습니다. 20여 년 전부터 한국영화를 접한 기자부터 최근 방탄소년단과 K-POP,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몰이로 한류를 떠올리는 기자까지 한류와 K-콘텐츠에 대한 다양하고 의미 있는 답변이 모였습니다. 설문에 참여한 이들의 공통 답변은 한류와 K-콘텐츠는 더 이상 세계문화의 변방이 아닌 세계 주류문화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호 한류토크에는 다양한 K-콘텐츠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모셨습니다. 먼저 선생님들의 근황과 각 분야의 활동 현장에서 경험한 생생한 한류 얘기로 물꼬를 터볼까요?
Nice to meet you. Korean culture is now settling in the center of the world culture thanks to the Korean wave, and K-Content is playing a major role in this phenomenon.
For this talk on the Korean wave, CULTURA is meeting experts on different fields of K-Content. Why don’t we start with catching up and sharing your hands-on experience related to the Korean wave in your field?
1. 문화예술 현장에서 경험한 한류
유성호 우리는 지금 새로운 세계문학 지도가 그려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말할 것도 없이 서구의 명작들이 비서구의 언어로 번역되어 고전의 지위를 차지하는 과정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한국문학을 비롯한 비서구문학이 서구어로 소개되는 과정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전벽해의 변화지요. 특별히 서양의 출판사에서 한국문학을 자발적으로 앞 다투어 번역하거나 출판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해졌습니다. 우리가 번역하여 소개해달라고 애원하던 시대는 이미 까마득한 과거가 된 것이지요. 세계문학 시장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펼쳐가는 이러한 가능성을 일러 혹자들은 ‘K-문학’ 혹은 ‘문학한류’로 명명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문학이 인류의 문화자산을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셈이지요. 확장 가능성으로 충만한 지금, 한국문학은 단순한 번역과 소개를 넘어 세계의 심장부로 진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줍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세계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향진 1991년부터 영국 세필드대학에서 동아시아 영화를 가르쳤습니다. 2000년에는 한국영화에 관한 첫 영어 단행본인 『현대한국영화: 문화, 정체성, 그리고 정치』를 출판했고, UK한국영화제를 시작해 2006년까지 개최했고요. 칸과 베를린 영화제도 2000년부터 보러 다녔어요. 올 2월에는 베를린 자유 대학 한국학 연구소 주최로 “Korean Cinema With Hyangjin Lee 2022”를 시작했고, 매년 영화제 기간에 맞춰 작지만 좋은 프로그램으로 키워갈 생각입니다. 영국에서 시작해 미국과 일본으로,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가르친 지 30여년, 이런 시간이 오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처음엔 자막이 딸린 영화 찾기도 쉽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그간 보여준 역동성은 “서구 비평가들의 새로운 아시아 감독 발견”과 “일본중년여성들의 판타지, 한류드라마”에서 다양한 지역의 일반 관객들이 취향에 따라 한국 감독, 아티스트, 작품을 골라보는 글로벌 문화로 진화했다고 할까요?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장르의 혼종화, 분야 간의 협업, 온라인 미디어와 OTT 산업의 글로벌 확장, 등으로 일반 관객과 드라마 시청자가 까다로운 비평가들과 보수적인 문화권력에 맞서,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밀어내던 이분법적 구분, 예술극장과 상업관 영화의 구분을 허물고, 글로벌 문화의 변방과 중심의 경계를 지우고 있는 주체들로 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달시파켓 Recently the demand for translations of Korean content has greatly increased. Any Korean production company hoping to pitch their idea for a series or feature film to Netflix or Apple TV+ has to first get it translated into English. The overseas market for Korean films and TV series continues to expand, but none of that is possible without translation. I’ve recently set up a translation company and am working with other translators to try to meet some of this demand, but trying to keep up with the large number of requests is exhausting. Apart from that, I continue to teach Asian producers at the Busan Asian Film School, and I am also teaching a yearlong workshop in media translation at the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of Korea. The ‘Wildflower Film Awards Korea’ wrapped up its 9th edition in May, and we are thinking ahead to the 10th edition next year.
최근 들어 K-콘텐츠 번역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국 제작사가 넷플릭스나 애플 TV+에 드라마나 영화를 내려면 먼저 영어로 번역을 해야하죠.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위한 해외 시장은 계속 확장되고 있지만 번역 없이는 그 시장에 진출할 수가 없죠.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 보려고 제가 최근에 번역 회사를 하나 세워서 여러 번역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엄청난 수요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와 별도로, 부산아시아영화학교에서 아시아 제작자들을 가르치는 일도 계속 하고 있고, 한국문학번역원에서 1년 과정의 미디어 번역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제9회 들꽃영화상이 개최되었는데 내년에 10회 들꽃영화상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강수미 현재 한국 미술계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봐야 합니다. 한편으로 한국사회 내부에서 한국미술에 보내는 경제적·정치적·개인적·공적 관심과 대중적 반응이 혼합돼 작동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 오늘 우리 대담의 주제인 ‘K-콘텐츠’에 입각할 때, 글로벌 미술계에서 한국미술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 가치 평가 및 실제 수행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두 번째에 대해서는 제가 작년에 풀브라이트 중견 학자로서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얻은 현장 경험도 있고 한데, 차차 말씀드리고 전자를 볼까요. 최근 10년 사이에 미술을 향한 한국사회의 기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김대중정부부터 본격화된 문화예술 정책의 DNA가 MZ세대의 정체성/감수성으로 성장 발현되면서 드러난 경향이라고 봅니다. 물론 미술계 내적 요인으로는 2014~2016년 미국과 유럽 미술계가 열풍 수준으로 한국 ‘단색화’에 반응하면서 국내외 미술시장이 뜨거웠고, 미디어가 앞 다퉈 미술콘텐츠를 제작 유통한 것이 큰 계기였죠. 미술 전문적 역량과 시스템을 넘어 온갖 분야가, 온갖 사람들이 ‘미술’과 관계하고 싶은 욕구를 촉발시켰어요. 이를테면 미술로 통상 ‘힐링’이라고 말하는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 수준에서 나아가 좋아하는 미술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영향력과 유명세를 얻고… 등등을 기대하게 된 현실입니다. MZ세대들은 SNS에서 유명 미술가 그림에 ‘좋아요 ♥’를 누르는 데 그치지 않죠. 무명 일러스트레이터를 단숨에 스타미술가로 만들고, 자신이 직접 창작자로 나서는 경험을 즐깁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까지, 정부 공공기관에서 시민단체까지 ‘문화 감수성cultural sensitivity’ 전략으로 시각예술을 적극 활용하는 양상이 이제는 자리를 잡았고요.
김민정 전 세계 사람들의 K-드라마 사랑에 힘입어 요즘 저는 《쿨투라》와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에 드라마 비평을 연재하고 KBS World Radio의 드라마 소개하는 코너에 고정패널로 출연하여 한국드라마를 국내외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평론가 이전에 드라마애호가로서 한국드라마뿐 아니라 드라마란 장르 자체의 위상이 많이 높아져 요즘 참 기쁩니다.
올봄에 배우 이준기 주연의 드라마가 방영되었었는데, 촬영 당시 이준기 글로벌 팬연합에서 커피차를 보냈더라구요. 30개국 정도 되는 그 숫자도 놀라웠지만 그중에 우크라이나가 있었어요. 전쟁도 가로막지 못한 한국드라마를 향한 사랑에 절로 감탄이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쁨과 함께 책임감도 느껴졌어요. 한국드라마가 이 무게를 잘 감당해야 할 텐데 하고요.
2. 한류콘텐츠의 성공 원인
손정순 문화예술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선생님들과 토크를 나누다보니 이제 한류는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깊숙이 번져가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저는 지난 2021년 10월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참석하여 《쿨투라》 BTS 특집호와 한류도서들을 전시했는데 개막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BTS를 좋아하는 아미들은 물론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한류 팬들이 부스를 찾아왔으며, 전시 마지막 날 도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모두 완판하였습니다.
올 4월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석한 콜롬비아 보고타국제도서전에서도 한류열풍은 한국에서 체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폭발적이었습니다. 한국문화를 좋아하다보니 한국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깊어서 연예인이 아닌 한국인에게도 사진 촬영 요구가 쇄도했습니다. 이 한류열풍은 비수교국인 사회주의 체제의 쿠바에서도 비껴갈 수 없었으며, 올 칸영화제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칸 해외 기자들에게 한류콘텐츠의 성공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과반이 넘는 57.5%의 인원이 작품성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시의성(18.8%)과 재미(16.3%)가 비슷한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설문에 참여한 기자 대부분은 한류콘텐츠의 완성도가 수준급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메시지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팬데믹과 OTT의 약진이 돋보이는 현 시점에 가장 핫한 콘텐츠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평입니다. 즉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한류콘텐츠가 팬데믹 상황을 기회로 세계 시장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는 것이죠. 한류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가도 궁금합니다. 한류콘텐츠가 성공한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What do you think is the main reason for the success of Korean content?
유성호 서구 일색의 변역 문화가 다원적으로 흩어지는 이 시대에, 한국문학은 번역과 해외출판, 세계문학과의 교류, 차세대 번역가 양성 활동을 통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한류문화와 문화콘텐츠 차원에서 한국어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어 콘텐츠가 크게 성장한 것이지요. 그 핵심 역할은 역량 있는 번역가들이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양성해온 노력이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온라인 강국인 우리나라가 비대면 국제 문학교류를 활성화하고 비대면 플랫폼을 활용하는 문학행사를 적극 펼쳐간 것도 역설적으로 한 몫 한 것 같아요. 서구권은 이미 문학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데 비해, 한국문학은 아랍이나 아시아, 남미와 함께 문학적 전통이 살아 있습니다. 언어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그쪽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퍽 반기는 것 같아요. 한국어에 관심을 가진 서양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문학을 활발하게 번역하여 소개하는 흐름이 강해진 측면도 이러한 성공을 도운 것 같습니다.
이향진 작품성, 시의성, 재미에 공감합니다. 동시에 그 세 가지가 성공 요인이 된 것은 콘텐츠를 만든 이들과 즐기는 이들 간의 로컬리티, 즉 서로 다른 지역 문화와 사회 현실이 교차하며 생긴 상호 문화주의적 요소 interculturality?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해에 국내 최고 인기드라마 중에서도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클라스〉가 일본의 4번째 한류를 불러왔지만, 〈부부의 세계〉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크게 회자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코로나 팬데믹을 견디고 있던 시청자들의 동시대적 향수,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만족시킨 시네마 투어리즘과 연결시켜 보면 어떨까 합니다. 또, 해외기자들의 과반수가 한류콘텐츠의 성공을 작품성에서 찾을 때, 저는 영화라면 대체적으로 수긍하지만 드라마는 좀 다릅니다. 작년 한해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오징어 게임〉은 재밌게, 그리고 아주 익숙한 방식의 장르적 패턴을 따르며, 관습적인 드라마 보기를 하는 한류 팬이 아니라 글로벌 사회의 흩어져 있는 데스 서바이벌 게임 팬들을 불러 모았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한국콘텐츠의 성공요인에 대한 질문은 누가 어떤 지역에서 어떤 매체, 어떤 방식으로 보고 듣는지 좀더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달시파켓 Broadly speaking I think we can say that the level of professionalism in the Korean film industry is very high, not only directors but also technical crew and actors. So Korean films do stand out for their quality. But there are ways in which Korean films feel different from films produced in other countries. To international viewers they often come across as feeling quite fresh and new -- even works that feel cliched and familiar to Korean audiences. One of the reasons may be that the emotional texture of Korean films and TV dramas is different. The emotions in the story are transmitted to the viewer in a very direct, unfiltered way. The storytelling in Korean films is often structured around moments of intense emotion, in the same way that Hollywood blockbusters are structured around moments of spectacle. All of this gives Korean content a unique character.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 영화산업에서 감독 뿐 아니라 기술진이나 배우 모두 전문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작품 퀄리티가 뛰어나죠. 그런데 그것 말고도 한국영화는 다른 나라 영화와 차이점이 있어요. 이게 외국관객에게는 상당히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죠. 그게 한국관객한테는 진부하고 익숙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감정의 결이 다르다는 게 성공의 한 이유인 것 같아요. 이야기 속의 감정이 아주 직접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채로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돼요. 한국영화에서는 감정이 격하게 표출되는 장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짜여져요. 할리우드 영화가 스펙터클한 장면에 맞춰 구성되는 것처럼요. 이런 모든 게 K-콘텐츠를 독특하게 만듭니다.
강수미 미술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명시하는 K-POP이나 한국드라마, 영화, 게임, 출판 분야의 ‘한류’와 자연스럽게 묶이기는 어렵습니다. 또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에서 규정한 범주와는 달리 곧바로 ‘문화산업’이나 ‘문화상품’으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기본법이 ‘문화콘텐츠’를 “문화적 요소가 체화된 콘텐츠”로 정의했기에 느슨한 의미로 미술을 문화콘텐츠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창설된 광주비엔날레가 글로벌 아트 현장에 ‘비엔날레 붐’을 일으켰고,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한국 현대미술을 ‘K-Art’라는 명칭으로 순환 교류해왔기에 오늘 우리 미술계가 이만큼 확장과 다변화, 고도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사실들을 강조하는 이유는 동시대 한국미술이 한편으로는 ‘순수미술fine art’이자 ‘고급예술high art’이라는 모더니즘 예술이념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동시에 대중문화와 자본주의 내 고부가가치산업의 숨은 보석처럼 존재함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양가성이야말로 한국(만이 아니라 글로벌)미술의 특성이자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여타 문화산업분야의 콘텐츠보다는 미학적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접근이 쉽지 않고 배타성도 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꺼이 미술의 독특한 소통방식 및 창작과 수용에서의 까다로움을 더욱 숭배하도록(‘리스펙’이라는 용어가 갑자기 엔터산업에서 유행한 현상이 역설적으로 말해주는바) 이끄는 것이죠.
김민정 한국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배경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를 모티프로 해서 현실을 반영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을 하는데요. 저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드라마 속 갑과 을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전복적 상상력이 팬데믹 이후 더욱 심해진 불평등과 불공정한 현 상황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 것은 맞아요.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꾸준히 현실 비판적 주제 의식을 담은 드라마를 제작해왔거든요. 사회적 이슈와 현실 반영을 한국드라마 특유의 성질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슷한 내용일지라도 왜 유독 한국드라마의 파급력이 클까에 주목했는데,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한국드라마의 세계관이 일제 식민지·한국전쟁·군부독재정권 등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낸 한국의 역사, 그러니까 저항의 역사와 만나 메시지의 진정성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변부가 중심을 구원하는 세상을 드라마 안과 밖에서 전 세계인이 목격하게 된거죠. 현실과 판타지의 만남, 그게 바로 한국과 한국드라마인 거예요. 굉장히 멋지지 않나요?
3. 한류 콘텐츠가 보완할 점
손정순 한류콘텐츠의 성공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성공이 있기까지의 과정들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요? 해외 기자들은 한류콘텐츠가 보완할 점으로는 먼저 번역(36.2%)과 문화적 차이(33.3%)를 들었습니다. 특히 영어 이외의 언어로는 번역이 잘 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했고,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알면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질 것 같다는 의견도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1인치의 장벽’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요구는 한류콘텐츠가 세계 주류문화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보완할 점이 없다는 의견도 무려 15.9%나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한류콘텐츠가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허심탄회하게 짚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Based on your experience in the field, what do you think needs to be improved in Korean content?
유성호 한국문학은 양질의 번역 결과를 통해 세계 독자들과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가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다문화, 세계화 시대 환경을 반영하는 ‘분단된 남과 북의 문학’, ‘한국인문학과 한국어문학’, ‘다문화환경 속에서 등장할 새로운 한국문학’ 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다방면으로 소통해가야 합니다. 좋은 문학콘텐츠가 받쳐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잖아요. 그러나 우수한 문학콘텐츠 발굴과 소개도 중요하지만 다른 언어권의 문학적 전통에 대한 이해도 중요합니다. 우리도 외국문학 이해를 넓혀가야 합니다. 쌍방향과 호혜성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저는 세계무대에서 남북문학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한국문학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알리는 노력도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작가 해외 출간기념 온라인 대담이라든가 문학한류 연계 한국문학 홍보도 그동안 충실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흐름도 매우 중요합니다. 나아가 문학에서의 한류 전략을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제안한 번역대학원대학 같은 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향진 보완할 점, 문화적 차이가 만드는 입장에서 다 채워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감독이 만든 외국영화, 또는 외국어로 연기하는 한국배우를 보며 불평을 하는 관객을 만나거나, 감독의 국제 정치나 역사인식, 글로벌 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을 지적하는 글을 읽으면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한국”을 그리고 연기하는 외국감독과 배우에 대한 한국관객들의 불만도 좀더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올해 칸 초청작인 〈브로커〉나 〈헤어질 결심〉, 〈헌트〉 역시 일본과 중국, 북한, 미얀마 등 다른 사회의 역사와 지역사회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고, 그 노력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고 믿습니다. 물론, 만든 이보다 그 사회를 잘 아는 이들, 그 지역 관객들에게는 많이 불편할 수 있고요. 그래서 K-무비와 K-콘텐츠가 원하는 관객이 한류팬이 아닌 국내관객을 포함한 글로벌 관객이라면 그만큼의 철저한 고증과 자료 조사, 정성이 필요하겠지요. 한국얘기만이 아니라 걸처져 있는 다양한 사회 얘기를 하려면 다른 지역 관객과 시청자들과 공감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성이 보편성”이라며 〈오징어게임〉의 성공요인을 “글로벌자본주의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한국가족이야기로 친숙하고 재밌게 그렸다”는 외신 보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하겠죠. 글로벌 사회에 시의성이 있는 한국영화, 드라마가 되어야 하고 함께 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들”도 공감할만한 주제와 소재, 수긍할 만한 이야기꾼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달시파켓 I worry sometimes that the highly developed structure and commercialization of the Korean film industry does not give young directors an opportunity to reach their potential in terms of creative expression. The generation of Bong Joon Ho and Park Chan-wook still dominate Korean cinema, because the creative freedom enjoyed by this “1%” is not available to other directors in the industry. I’m not sure how the industry will solve this problem, but the problem of translation quality is one for which the solution is more clear. The government has begun to put more resources into training young translators, but this can be further expanded. Given the large number of people around the world who are studying Korean language, the long-term prospect for improving translation quality is very good, but in the short term more effort needs to be made to support young translators.
한국영화산업구조가 크게 발달하고 상업화되면서 젊은 감독들이 창의성 측면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 좀 걱정이 됩니다.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 세대가 여전히 한국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건 이 상위 “1%”가 누리는 창작의 자유가 다른 감독들에게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계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는 모르겠지만, 번역의 품질을 높이는 문제에 한해서는 보다 분명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정부가 젊은 번역사를 키우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더 확장될 거에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상황에서, 더 좋은 번역을 제공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는 매우 훌륭합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젊은 번역사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강수미 한국미술의 국제적 성공은 물질적 성과물이나 경제적 지표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워낙에 미술이란 분야가 추상적 판단과 비언어적 가치를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앞서 제가 주장한 ‘미술을 향한 한국사회 내부의 대중적 반응’은 유사 이래 본 적 없는 열광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국제 미술계는 김환기, 박수근, 윤형근,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들 작품을 지속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고,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되는 청장년 미술가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7월 말 국립현대미술관이 《MMCA 아시아 프로젝트》 포럼으로 카셀도큐멘타 15에 참여하고, 9월에는 영국의 간판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서울에서 처음 개최될 것입니다. 이렇듯 국제미술계와 한국미술계가 교류, 융합하는 프로젝트들이 정규화된 지 꽤 됐습니다. 여기서 예증하는 사실은 한국미술이 동시대적으로 움직이는 중이라는 점이죠.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최근 보고서가 제시하듯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1조원’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도 세간의 기대를 키웁니다.
김민정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드라마의 성공 요인과 보완해야 할 점이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움이란 건 늘 그 순간에만 유효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금세 낡아져 버리니까요. 한국드라마는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성공 공식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갑과 을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그 안에서 갑과 을이 서로 죽고 죽이는 악순환의 반복이 바로 그것인데요. 다크 히어로와 사적 복수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거구요.
근데 이런 한국적 세계관이 처음에는 사이다 맛으로 통쾌하긴 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타자 인식도 단순하고, 문제 해결 방식도 굉장히 폭력적입니다. 물론, 서사 전개와 캐릭터의 단순함이 드라마의 대중성과 연결되는 의도된 서사 전략일 수도 있지만 이게 누적되어 일종의 패러다임으로 굳어지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를 야기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성공이 사실 조금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어서 빨리 정점을 찍고 그다음의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구요.
4. 한류, K-콘텐츠가 나아갈 방향
손정순 이제 우리는 한류열풍의 다음을 다시 또 준비해야 합니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던 3년 전에도 한류는 존재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한류콘텐츠는 아직 서브컬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한류콘텐츠를 접할 수 있고, 직접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라도 한류의 존재 자체는 대부분이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특정취향을 타게팅한 서브컬쳐로서의 한류가 아닌 보다 대중적이면서도 다양한 계층을 섭렵하는 한류를 준비해야 합니다.
칸 프레스 설문에서도 드러났듯, 한류콘텐츠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번역과 문화적 차이입니다. 한류 팬덤에 속하지 않는 절대 다수의 대중은 번역이나 문화적인 부분에서 거부감(의아함)이 들면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번역에 더욱 신경 써야 하고, 콘텐츠 속에 한국문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세심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지금 한류는 한 발짝 더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러한 한류열풍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 K-콘텐츠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또한 한류와 K-콘텐츠에 대에 추가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The Korean wave is now seeing good opportunities to expand its domain further. Where do you think the K-content should be headed for the Korean wave to continue to grow? Also, please feel free to tell us whatever you like to add more about the Korean wave and K-content.
유성호 한국어 콘텐츠 번역 역량 신장, 한국문학 소개 전략이 매우 중요합니다. 문학은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궁극적인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이를 접하고 누리는 이들로 하여금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게끔 하는 문화 예술의 한 영역입니다. 그 점에서 아무리 영상 매체가 주도적인 예술로 자리 잡아간다고 해도, 문학을 통해 경험과 생각을 계발해가는 과정은 전혀 손상되지 않을 것입니다. 문학은 인간이 깊이 생각하고 사물을 인식하는 데 더없이 필요하며, 언어를 통해 감동과 사상을 키우는 데 변함없는 중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국가가 문학 창작과 번역과 연구와 향유의 저변 확대와 내실화를 위해 나서준다면, 개인 차원의 일로만 여겨졌던 문학의 세계적 소통 회로를 빠르게 진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욱 탄탄하고 견고한 공공적 구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정부와 민간, 작가와 출판사, 비평가 등이 이러한 한국문학의 콘텐츠 확장에 동참해야 할 중요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향진 미국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러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을 때, 전 언어가 영화의 경계를 긋고, 다민족사회에서 소수민족을 타자화하는 폭력처럼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징어 게임〉의 영어 번역이 미국 시청자들 사이에 논란거리가 됐었고. 한류의 기원이 미8군에 있는데도 통역 없이 인터뷰를 하지 않는 봉준호 감독, 한국말로 노래하고 인터뷰하는 BTS를 예로 들며 미국과 가장 친하다는 나라의 감독이나 아티스트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꼬집는 글을 읽었을 땐 좀 황당했어요. 그런 소모적인 논쟁보다 다양한 지역의 관객과 시청자들을 위한 영화 자막 작업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 하는 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헤어질 결심〉에서 통역기를 들고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서로가 함께 언어의 경계를 넘는 거죠. 글로벌 OTT 제작 드라마는 배급하는 측에서 자막 작업을 하니 다행이지만, 그 경우에도, 자막이 창작자가 의도한 대로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요. 몇 년 전, 일본군 포로수용소 시절을 회고하는 영국군 베테랑을 그린 작품은 천황에 대한 묘사가 문제가 되어 일본 배급이 좌절된 적이 있어요. 그 지나친 완역, 의도된 오역에 절대 동의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도 말이죠. 결국, 글로벌화하는 한국영화를 이야기하며 가장 우려되는 건, 상업성이 부족한 예술영화, 독립영화, 젊은 감독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쫓아갈 수 있을까예요. 586세대가 예술영화로 글로벌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던 때와 다르잖아요. 이제 한국영화는 메이저 국제 영화제 초청작 중에 상업극장에 소개되어 백만 관객을 기대하는 거의 유일한 지역 영화가 되었어요. 그 자부심이 젊은 감독, 예술영화 제작에는 더 큰 그림자를 드리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달시파켓 If we look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film and TV industries, we can find cases where a more localized film industry enjoyed sustained regional or global success, as with Hong Kong cinema in the 1980s and 1990s, or the international appeal of Mexican and Latin American telenovelas in the 1990s and beyond. For such periods of success to continue in the long term, the industry needs to find a way to continue adopting fresh, original ideas. This requires a conscious effort on the part of the industry to welcome new voices and embrace novel ways of thinking. Personally I feel that the Korean film and TV industries could gain a lot in the long term from more international exchange and co-production. From a short-term view, one might argue that international co-productions are rarely successful in a commercial sense. But they help to expose Korean filmmakers to new ideas, techniques and perspectives. Personally, I feel that Bong Joon Ho’s experience making Snowpiercer and Okja in other countries probably influenced some aspects of Parasite as well, and the same could be said of Park Chan-wook’s experience with Stoker in some way influencing the making of The Handmaiden and Decision to Leave. More generally, if the Korean film and TV industries open themselves up to global exchange, the benefits will be felt in the long term.
영화와 TV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 지역의 색채가 강한 영화산업이 해외에서 널리 성공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80-1990년대 홍콩영화나, 1990년대 이후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의 텔레노벨라(Telenovela; TV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열풍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려면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영화계에서 계속 받아들여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계가 새로운 목소리를 환영하고 참신한 사고 방식을 끌어안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죠. 저는 국제교류와 합작 등의 방식이 장기적으로 한국영화와 TV산업에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단기적으로는 외국과의 합작이 상업적 측면에서 별 성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한국 감독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 관점을 접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와 〈옥자〉를 외국에서 제작한 경험이 〈기생충〉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역시 〈아가씨〉와 〈헤어질 결심〉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요.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영화와 TV산업이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히 한다면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수미 지금까지 제가 쭉 논한 내용으로 보면 한국미술의 지금 여기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합니다. 하지만 대중적 열광의 실체는, 어떤 면에선, 단순합니다. 요컨대 미술이 ‘매력적인 것, 멋진 것, 젊고 부유한 것, 고급스러운 것, 지적이고 독특한 것, 그래서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수준 높은 미적 취향’으로 각광받는 분위기가 급격히 번성하고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한국미술계에 끼치고 있는 선한 영향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죠. 국내 미술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농담을 가장한 진담으로 “오늘날 전시는 RM이 가서 사진 찍고 SNS에 올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는 말이 회자됩니다. 또 국제적인 온라인 미술저널인 《아트뉴스ART news》는 6월 28일 자 기사로 “세계적으로 엄청난 팝스타 중 한 명”인 RM이 미술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몰두하면서” 국내 미술관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 예술기관까지 그의 방문에 영향 받는 상황을 조명했습니다. 사회 심리적으로 보면, 2021년 하반기에 갑자기 평년의 3배 이상 튀어 오른 한국미술시장 거래 규모나 RM 같은 성공한 젊은이의 미술 향유/컬렉션 취향이 팬덤 속의 고급문화로 이접하는 현상에는 이면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근거 삼아 나와 타자를 차별적으로 구분하고자 하는 동시대인의 욕망이 그것이죠. 누구나 동등하다는 ‘정치적 올바름’의 명분을 지키면서, 미술을 통해 나의 우위를 부드럽고 세련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죠. 속물적이지 않게, 그러나 알만한 이들은 반드시 알아채도록. 특히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고 전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그 같은 ‘아비투스’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경제적 양극화와 그로 인한 차별이 노골화된 현실이지만, 역으로 다들 높은 교육수준과 디지털 정보력 조건에서 삶이 고만고만해 보이기에, 사람들은 내가 너보다 낫다는 표식을 미술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시장과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거리를 두려한 20세기 초 유럽의 전위예술을 뜻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가 피자광고의 유머가 된 지금, 한국미술이 취해야 할 스탠스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다른 콘텐츠분야와 달리 미술은 ‘번역’, ‘문화적 차이의 극복’ 같은 명시적 과제보다 더 안팎으로 난해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문제의 덩어리를 쪼개나가는 분석이 창작, 미술비평, 미술행정, 미술시장에서 고루 이뤄져야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김민정 〈오징어 게임〉에 대한 호불호도 좀 갈렸는데, 제가 주변에 보니까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드라마를 좀 챙겨 보던 사람들은 좀 익숙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에 열광했던 해외와 달리, 한국드라마 누적 시청 경험이 많은 국내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갯마을 차차차〉가 조금 더 반응이 좋았습니다. 물론 넷플릭스와 공중파라는 매체의 영향이 있긴 했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것이 하나의 징후적 사건이라고 보고 한국드라마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좀 있었습니다. 한국드라마가 오늘의 성공에 안주하여 자가복제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근데, 제 걱정이 기우였더라구요. 〈지옥〉과 〈고요의 바다〉를 시작으로 최근 방영 중인 〈유미의 세포들〉 〈환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드라마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해졌습니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한국드라마가 스스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을 잘 가고 있어서 저는 그냥 마음 푹 놓고 드라마를 사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드라마야.”
손정순 감사합니다. 한류열풍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 이 토크는 더 나은 한류의 풍토와 K-콘텐츠의 저변확대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오늘의 K-콘텐츠가 나아갈 방향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보는 소중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