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의 디카시 안테나] 벼리영 시인의 「응달」
[오민석의 디카시 안테나] 벼리영 시인의 「응달」
  • 오민석(시인, 단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24.10.3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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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

벼리영

 

내 안에 저렇게 예쁜 꽃이 피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네

응달에 산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진짜 나일지도 몰라

 

 


벼 리 영
2021 《월간문학》 신인상, 남강문학상 운문대상. 역동시조문학상 대상 외 다수,
디카시창작지도사(1급). 저서로 회화시조집 외 5집이 있음.

 


아름다운 인생

한강의 서울신문 신춘 문예 당선작인 단편 「붉은 닻」(1994)을 읽고 나서 소설가 최인호가 한강에게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참 어두운 이야기다. 그런데 후반부에선 이 어두운 가족이 바다로 소풍을 가는구나. 그게 나는 참 좋더라.” 세월이 지나 병석에서 다시 만난 한강에게 최인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한강의 산문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시대의 가장 민감한 안테나로 인간과 세계의 아픔을 포착하는 작가들에게 삶은 대체로 결핍이자 비극으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비극성의 바닥에서 끌어올린 긍정의 메시지는 더욱 소중하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 진창이 아름답다고?’, ‘그 와중에 소풍이라고?’ 그러나, 그런데도, 문학은 고통스러운 어둠의 수렁에서조차 인생이 아름답다는 정언 명령을 놓지 않는다. 비극과 고통의 밑바닥에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벼리영 시인은 영상 기호와 문자 기호의 절묘한 결합을 통하여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을 읽어내고 있다. 사진 속의 꽃들은 역설적이게도 어두운 그림자 안에서 더욱 밝게 빛난다. 화사한 빛 속의 꽃들은 강한 빛에 바래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인이 잡아내는 것은 바로 이런 패러독스와 반전의 미학이다. 진짜 희망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난다. 시인이 응달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그 안에 “저렇게 예쁜 꽃이 피어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기 위해서이다. 문학은 고통의 클리셰가 아니라 희망의 참신함을 위해 존재한다 .

 

 


오민석 시인, 문학평론가, 단국대 명예교수.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 기념 신인상에 시 당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당선,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외, 평론집 『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 외. 시작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4년 11월호(통권 1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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