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와 9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오늘의 복고와 뉴트로가 소환하고 있는 시절은 왜 주로 8090일까. 첫째로는 물론 80~90년대가 지금 대중문화의 주 생산·소비층의 일부인 3040세대가 자신들의 청춘을 수놓았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성장과 방황의 생채기가 남긴 각인은 강렬하며 젊은 날의 초상을 반추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들추는 행위 중 가장 낭만적인 일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복고문화에서 이를테면 90년대 생들이 자신이 겪어보지도 못한 80년대의 문화를 즐기는 현상에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도 충분치 않아 보인다. 80년대 생들이 70년대를, 70년대 생들이 60년대를 소환하여 즐기는 것이 당대 주류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복고, 뉴트로문화는 전통·신 미디어 모두에서 다루어지는 주류 현상이다. 옛것을 불러들여 곱씹는 놀이가 이렇게 만연했던 적이 있을까.
특히 요즘의 복고와 뉴트로는 패션과 음악에서 두드러진다. 아마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80~90년대가 음악적인 다양성이나 멜로디 창작 등에 있어서 다채로운 시도가 만개하고 레코드 산업도 절정에 달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80~90년대가 아날로그의 문명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였기에 그런 걸까. 편의와 속도로 무장한 21세기의 디지털 문명은 그 기술적 진보가 가져다준 효율성과 편의만큼 분명 무엇인가를 앗아간 느낌이 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여하튼 이러한 디지털 문명의 효율과 편의성이 확실히 ‘과거 호출’ 행위를 비약적으로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디지털 기술은 곧 기록 기술의 혁명을 가져왔고 인간의 기억이 기록된 ‘데이터’의 대량 복제와 편집, 전송, 저장을 너무나 손쉽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혁명의 수혜를 입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오늘의 복고문화가 왕성히 꽃피는 가장 주요한 토양이다. 말하자면 유튜브는 일종의, 집단 지성에 의한 새로운 라이브러리다. 음악과 관련해서는 유튜브의 주요 음악 콘텐츠, 즉 오피셜 뮤비, 리릭 비디오를 포함한 팬 메이드 뮤비, 리메이크와 커버 영상, 리액션 영상, 아티스트의 공식·비공식 라이브 공연 영상, 뮤비와 곡에 대한 해석 영상 등은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전체 음악 콘텐츠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 아직까지는 가장 지배적인 음원소비 형태인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측면에서 보더라도 유튜브가 제공하는 파생서비스의 하나인 ‘유튜브 뮤직’은 제작사에서 제공한 공식 음원 외에도 유튜브에 올라온 개인들의 자료를 서비스에 활용한다. 따라서 이렇게 유튜브상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진, 개인 소장자료의 집체를 포괄하는 음악 아카이브는 기존의 관련 미디어나 전문 기관의 그것보다 방대하거나 그것을 보충, 때로는 수정하기도 한다. 연관 동영상이 끊임없이 딸려오는 유튜브 인터페이스의 하이퍼텍스트적 성격은 관련 음악에 대한 출구 없는 탐색 여정에 이용자를 몰아넣는다. 여기에 모바일 기술까지 더해져 우리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오늘의 맥락 속에 놓아보고, 즐기고, 그 의미를 새롭게 입혀 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개인들이 유튜브에 꺼내놓은 과거의 조각들과 거기서 파생된 2차 콘텐츠, 그리고 이에 대한 다양한 담론은 자연스럽게 복고와 뉴트로 문화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된다.
소위 ‘가창 경연대회’의 포맷을 띄는 예능프로그램들에서 불러들인 옛노래들이나 거기서 파생되고 공유된 다양한 유튜브 영상들은 이러한 음악적 복고문화를 발단시킨 주연들이다. 얼마 전 영화 <보헤미안 렙소디>에서 촉발된 록 그룹 ‘퀸’에 관한 신드롬이나 우연한 90년대의 영상에서 얻은 영감으로 오늘의 가수 GD와 매치시킨 한 영상에서 촉발된 양준일 신드롬의 사례도 모두 이에 속한다.
가장 최근에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그 OST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99학번 의대 동기들인 드라마 속 다섯 주인공은 이제 40대 의사가 되었지만 자신들의 젊은 시절 추억의 노래를 밴드로 함께 연주하며 우정을 다져간다. OST에서 배우들이 리메이크 해 부른 옛 시절의 인기곡 <아로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등은 드라마 시즌이 끝난 지금도 음원 인기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튜브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관련 검색결과도 드라마 속 장면 관련 영상보다 OST 관련 콘텐츠들이 모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OST 수록곡 중 몇은 아이돌 음원 강자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으며 장기간 5위권 내에 머무르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드라마 자체의 인기, 그리고 반가움에 옛노래를 추억하는 세대의 지지가 작용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차트 성과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매우 높은 순위의 음원차트 성적은 주 소비자인 2030 세대의 지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노래들은 드라마와 추억에 기댄 복고와는 별도로 독립된 음악콘텐츠로서도 젊은 세대에게 어필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가수와 가창 그리고 오늘의 편곡과 사운드로 새롭게 태어난 옛노래는 복고와 레트로 사이의 그 어느 지점을 통해 새로운 세대에 수용되고 있다.
세대가 바뀌며 대상으로 삼는 시절도 바뀌겠지만 과거를 복고하거나 그것에 현재적 의미를 덧입혀 새롭게 즐기고자 하는 뉴트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도될 것이다. 유튜브를 필두로 한 디지털 미디어는 거대한 인간 기억의 아카이브로 기능하고 있으며, 따라서 아름다웠던 과거를 추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을 가능케 한 디지털 시대에 복고문화의 상존은 필연적이다.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