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문인 선정, 작년 최고의 시는 신철규 시인의 「심장보다 높이」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기억에 남았던 좋은 시와 시집을 모아 열일곱 번째 『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하『2018 오늘의 시』)를 내놓는다.
이제는 문학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지만, 최근까지 우리 시단에서 도출된 쟁점 가운데 가장 첨예한 메타적 흐름을 형성했던 것이 아마도 서정을 둘러싼 개념적, 수행적 논의였던 것 같다. 이 흐름은 우리로 하여금 오랜만에 시의 장르적 본질과 기능에 대한 근원적 사유에 이르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일정한 합의를 도출해가기보다는 각양각색의 파생적 논의로 번져가는 외양을 띠었고, 또 저마다의 이념과 방법의 차이를 품은 채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갔다. 특별히 우리는 서정의 오랜 인식론적 기반이었던 동일성 미학이 균열을 보이는 현상, 곧 반反서정으로 불릴 만한 비동일성의 경향이 어떻게 서정 범주 안에 포괄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강력하게 대두했던 현상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래파’라는 담론적 명명 속에서 해석되고 평가되었던 일군의 시인들이 암시하였듯이, 강렬한 비동일성의 경향을 고전적 서정 개념과 어떻게 연루시키는가 하는 문제로 출현했던 것이다.
주지하듯 이러한 경향은 가령 비주류 하위문화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감각의 환유적 나열 그리고 혼성적 문화 의식을 통해, 모어母語의 세련을 기조로 했던 지난 시대의 국민국가적 상상력과 날카로운 단층을 형성하였다. 또한 깊은 우울과 환멸에서 우러나온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은 이미지의 연쇄적 나열과 충돌을 통해 그 자체로 정제된 의미론을 해체하면서 메타 시학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우리는 동일성 미학에 균열을 내면서 구축되었던 이러한 비동일성의 경향을 두고 일단 서정의 원심적 확장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조화와 화해의 세계관보다는 갈등과 길항의 세계관이 깊이 담겨 있고, 대중문화적 감염이 일상화됨에 따라 시의 표면에 물질로 구체화되는 속도감이 현저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들의 시적 언어는 전통적 서정 원리와 결별하면서 새로운 서정의 원리를 당당하게 확장해갔던 것이다. 특별히 이들 시에 나타난 집체적 성격의 ‘우리’에 대한 관심은, 개체적 성격의 ‘나’로 중심을 옮겨갈 수 있는 서정시의 한 편향에 대한 적극적 반성의 시선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채로울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이들의 현실에 대한 성찰과 제언이 그 나름대로 ‘나’로서의 개별 체험을 절대화하는 미적 편향에 대한 적극적 항체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2018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는, 이러한 서정성의 움직임을 다양한 극점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충실하게 감당하려고 한다. 그러한 바람을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은, 우리 시단의 다양한 풍경을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유력한 미적 근거들을 갖춘 수많은 가편들을 수록하였다. 많은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시편과 시집은, 미적 완결성과 개성적 목소리를 아울러 견지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성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되었던 시편 가운데 신철규의 「심장보다 높이」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는 슬픔에 대한 시이기도 하고 외로움에 대한 시이기도 하며 공포에 대한 시이기도 하다. ‘슬픔’을 주제로 다룬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서처럼 이 시 역시 슬픔을 다룬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천착이나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중심으로 슬픔을 형상화했던 시집과의 연속선상에서, 이 슬픔은 역시 타자와 주체의 경험이 연동되고 있다. 이 시의 슬픔은 시인 자신의 슬픔이며 인간의 본질적 우울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존재의 근원적 슬픔’ 같은 추상적인 설명보다도 더 실감나는 문학적 현실로서의 슬픔이란 지금은 이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약진을 소망해본다.
좋은 시를 선정하기 위해 『2018 오늘의 시』는 100명의 시인,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인을 추천위원으로 추대, 좋은 시 85편(시조 24편 포함)을 선정, 수록하였으며,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시집 가운데 ‘좋은 시집’으로 평가되는 21권의 시집(시조집 4권 포함)들도 선정하여 소개하였다. 그리고 기획위원들의 「2018년 한국 시의 미학」이란 주제의 좌담은 최근 시의 지형과 지향을 살피며, 오늘의 시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시의 행간으로 읽고 있다. 또한 말미에 붙인 신철규 시인 인터뷰(함돈균)는 “시가 세계의 가장 어두운 곳에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이 세계를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따뜻한 밝음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믿는 신철규 시인의 시적 성취와 시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지면이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시단은 시에 대한 믿음으로 2018년 이후의 풍경을 꿈꾸게 될 것이다. 지난 한 해의 시적 성과들은, 이러한 시적 과제에 확연하고도 분명한 미학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탄탄한 미적 완결성을 두루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시대의 이러한 과제들에 대해 유추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PS:『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는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가 가장 좋은 영화로 선정되었습니다. 『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영화』시상식은 오는 6월 북아현동 쿨투라 아트홀(작가출판사)에서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