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에 관한 이야기가 늘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인간 능력의 한계에 관한 질문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소위 천재라는 사람들에 관한 일화를 접할 때면 우리는 종종 어느새 호기심 천국의 시청자 같은 자세가 되고 만다. 나와 다름없는 인간의 종으로 태어났음에는 틀림없는데 그 천재는 도대체 어디까지 더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이다. 특히 그것이 어느 정도 ‘기예’라는 요소를 포함하는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 3살짜리 꼬마가 트리플 악셀을 했다거나 4살 꼬마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연주했다거나 하는 식 말이다. 우리는 이때 그 퍼포먼스의 예술적 해석력과 표현력보다는 페달에도 겨우 발이 닿는 꼬마가 성인 연주자들이 몇 년씩 연습해도 쉽게 못 하는 고난이도의 연주를 완벽하게 하고 있다는 상황이 주는 짜릿함에 몰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어린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뇌운동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유튜브에서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던거 같다. 그가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8세 때인 2012년에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통해서다. 팝의 명곡들을 직접 편곡, 연주, 노래한 소위 분할-화면(split-screen) 형식의 영상에서 이 청년이 보여주는 음악의 각 영역에서의 경지가 이미 최정상급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메인 악기인 피아노 연주는 물론 베이스, 드럼, 기타를 비롯한 팝에서 주로 사용되는 거의 모든 악기들을 섭렵한 상태였다. 다른 천재들의 신화가 보통 이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한 이야기들이기는 하지만 제이콥도 18세 당시 음악의 제 영역에서 고루 이룬 성취도를 보았을 때 그중에서도 특화된 피아노 연주 같은 실력은 이미 훨씬 더 이전에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여튼 분할 화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강조된 멀티-인스트루멘탈리스트의 영상을 보며 느끼는 희열은 음악적 감동보다는 기예를 구경하는 구경꾼의 심리에 가까웠지 않았나 싶다.
음악에 몰두한 지 어느덧 20여 년이 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결론적으로 최소한 음악 영역에서 천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모짜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제이콥 콜리어를 포함해서 소위 음악천재라 불렸던 이들의 음악을 들어 봐도 어느 정도의 환경과 학습이 뒷받침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천재란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최근의 논의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천재 이야기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적 이해의 사고 범위를 비웃듯 뛰어 넘어버릴 초인적 존재를 은연중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로는 부정하면서도 누군가는 이 세상사 모든 것을 지켜봐 주고 있다거나 우리가 죽은 후에도 다른 세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낭만은 무신론자에게도 늘 유혹적인 아이디어인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에디슨이 말했던 1%의 영감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이 1%는 우리가 말하는 재능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천재라는 것이 있다 한들 수학천재가 다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음악천재가 모두 다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수학천재는 ‘수’에 능통한 자일 뿐이고 음악천재는 ‘음’에 능통한 자일 뿐이다. 가치 있는 것은 훌륭한 음악이고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에 재능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예술가의 태도와 사상이다. 특히 그것이 멜로디에 가사가 얹어진 ‘노래’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작곡 대 작사의 저작권 비율이 괜히 5:5가 아니다.)
제이콥 콜리어는 최소한 음악 ‘영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음에 능통한 자가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제이콥 콜리어도 소중한 인재이며 앞으로가 기대되는 음악가임은 분명하다. 그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어릴 적 뛰어난 가창력과 음악적 해석력을 기반으로 기존 곡을 리메이크 하면서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던 스티비 원더의 사례가 스쳐간다. 삶에 관한 어떤 성찰이나 단서를 작품에 담아내려면 아직 경험과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이다.
이번 앨범 Djesse(Vol.1)는 이미 그래미에서 ‘최고 편곡상’ 부문을 두 개 수상한 전작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21세기 음악 영재(혹은 천재이든 뭐든)가 다루는 화려한 화성과 리듬의 향연이 궁금한 이는 들어보길 권한다. 다행히 그가 추구하는 음악은 다분히 대중음악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쇤베르크의 현대음악처럼 난해하진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아직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빠짐없이 보여주고픈 치기가 조금은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오리지널 곡들보다 커버 곡들이 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긴 하지만, 그가 선택한 커버 곡들의 초이스를 보건대 앞으로 더 훌륭한 뮤지션이 되리라는 기대가 남는다.
서영호
음악가, ‘원펀치’와 ‘오지은서영호’에서 활동.《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영화음악평론’으로 당선.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