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처음에 그 조각이 비누로 만들어졌으니까 야외에 설치해놓으면 비 올 때 막 거품이 일거나 녹아서 줄줄 흘러내릴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걱정들을 많이 했죠. 하지만 수개월의 전시 동안 작품은 눈에 띄는 변화가 거의 없이 미술관 바깥에 꿋꿋이 서 있었어요. 심지어 어떤 관람객은 그 조각이 비누로 만든 것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위는 국내외 현대미술계에서 ‘비누조각’을 대표하는 중견작가 신미경의 작품에 얽힌 일화다. 코리아나미술관이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아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2023. 3. 2. - 6. 10.)을 주제로 신미경 개인전을 개최하고 연계 프로그램으로 아티스트 토크를 열었는데, 그때 대담자인 내게 한 말이다. 우리는 작가가 영국 유학 초기에 작업의 영감을 얻은 계기부터 ‘시간’과 ‘물질’이 이번 개인전과 미술관 20주년의 공통 테제가 되는 인문학적 배경까지, 흥미로운 대화로 2시간을 꽉 채웠다. 하지만 유독 서두에 인용한 말이 뇌리에 남는다. 그 날것의 에피소드에 신미경의 30여 년 예술 이력은 물론 뮤지엄museum의 본질과 역할을 논할 분석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존재physis가 피할 수 없는 시간의 강력한 질서, 물질의 변성을 현대미술 작품과 미술관/박물관이 어떻게 미학으로 승화하는지 가늠해볼 만한 것이다. 그 작은 이야기 조각에서 깊게.
조각-비누
서구 미술에서 조각의 기원은 ‘기념비monument’를 일순위로 꼽는다.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피라미드, 그리스의 신전과 신상, 로마의 초상조각과 전쟁 승리탑 등이 모두 예술적 아름다움에 앞서 절대자의 영광을 만천하에 알리고 영원세세 권력을 굳건히 할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때문에 주재료가 화강암, 대리석, 청동, 철, 못해도 콘크리트는 되어야 했다. 미술관/박물관의 기원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미술관 소장품은 전시 기회도 없이 수장고에 고스란히 보존된 채 말라가기에 작품 입장에서는 미술관이 곧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뮤지엄의 역사는 ‘육신은 썩어문드러져도 영혼은 불멸해 회귀함’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무덤이 기원이다.1 죽은 파라오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온갖 부장품과 상형문자 벽화, 노예를 한데 묻고 봉인한 피라미드 말이다. 하지만 인간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질서와 매체가 세련되면서, 특히 죽음이 일상과 격리된 병원, 상조회사, 납골당 등 의료와 장례 서비스의 일처럼 제도화되면서 미술(관)과 죽음의 근본적 연결고리는 헐거워지고 잊혔다. 미술관/박물관이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미술 진품 또는 역사적으로 기릴만한 사물의 전시장/전당으로 형식화된 미술사 과정 또한 그러한 문명화, 혹은 산 자의 삶에서 죽음지우기와 궤를 같이 한다. 요컨대 사람들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았든, 미술은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물질을 써서 생태계 내 필멸의 질서에 언제나 저항해왔다. 또 뮤지엄에서 전시, 관리, 소장, 보존하는 방식을 통해 유한한 존재들의 박복함과 덧없음, 부패와 소멸을 유미주의 미학으로 승화했다.
그런데 신미경의 비누조각은 그러한 뿌리 깊은 미술의 역사, 조각의 원형, 그리고 뮤지엄의 기능을 뒤집는다. 카라라 대리석을 깎는 대신 수십 톤의 기성품 비누를 녹여 형태를 빚은 조각. 오리지널한 미술품을 선보이거나 영광스런 과거의 유물을 기념하는 대신 문화사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것들이고 가치와 역할이 부여된 것들을 외관만 비누로 복제하는 미술. 그렇게 의도적으로 선택한 질료와 기법에 따라 제작한 작품들을 신미경은 미술관박물관학museology의 정전이나 현대미술의 전시공학을 따르는 대신 그 원전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전시방식으로 제시해왔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젊은 남녀 입상부터 17세기 유럽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문양의 중국 도자기까지, 형태가 일그러진 작은 불상에서 영국 정치사의 문제적인 인물 기마상까지, 낭만주의 풍 여인초상화부터 현대 추상회화까지. 그렇게 신미경의 비누는 미술사를 차용하고 미술관박물관학을 타고 미끄러지면서 작가만의 미술세계를 만들었다. 특히 물과 습도에 취약하고, 미술의 정통성을 따지기에는 턱없이 평범하며, 미를 논하기에는 어딘가 확실히 모자란 ‘비누’라는 물질로 자신만의 강렬한 시각성과 문화비판적 미술을 구축했다는 데 그녀의 영광이 있을 것이다.
기념의 방식
코리아나 미술관과 화장박물관 전관에서 펼쳐진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이 감상자에 앞서 작가에게 더욱 값진 의의를 갖는 데도 이유가 있다. 언급했듯 이 전시는 한국 미술계 대표 사립 뮤지엄인 코리아나 미술관과 화장박물관의 20년을 자축하고 그 시간의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미술관이 한 명의 미술가만을 초대해 개인전을 기획한 것이다. 예술가 개인과 문화예술기관이라는 점에서 둘은 차원이 다르다.2 정체성도 다르고 사회적 역할도 다르며 규모나 무게도 다르다. 때문에 문득 이런 호기심이 동한다. 신미경의 미술이 미술관/박물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코리아나 미술관은 자신들의 영광스런 기회를 왜 신미경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전시로 돌렸는가? 어쩌면 코리아나는 그간 소장한 고미술품부터 기획전시까지를 바탕으로 컬렉션+아카이브를 구성해 전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국내 유일 화장박물관으로서의 위상과 동시대미술 담론을 견인한 현대미술관으로서의 독자성을 공인받아도 좋았을 것이다. 헌데 미술관 측은 신미경을 단독 초청했고 그녀가 이룬 성취를 돋보이도록 전체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대규모 개인전은 물론 도록 발간과 아티스트 토크 등을 통해서. 이쯤에서 다시 미술관의 선택 배경이 궁금해진다.
왜 신미경일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논리로 궁금증에 답할 수 있다. 먼저, 신미경의 미술이 명작들, 유물들을 비누로 재해석/재제작(작가의 개념으로는 “번역”)하는 형식이기에 미술관은 이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기성 예술제도(미술관, 미술이념, 미적 형식과 내용, 문화정치학 등)에 생산적 긴장과 담론 확장성을 꾀한 것이다. 그 점에서 코리아나 미술관은 좋은 선택을 했다. 다음은 전시의 부제인 “생동하는 뮤지엄performing museum”에 힌트가 있다. 즉 이 미술관은 과거의 확립된 성과에 안주하는 대신 언제나 지금 여기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고전이 되고 경전이 된 미술을 따르는 대신 직접적으로 흔들고, 뒤집고, 이종異種을 만들어 미술제도에 개입해온 신미경의 작업을 미술관의 물질적, 비물질적 차원들과 직조했다. 그것은 앞으로 코리아나 미술관의 퍼포먼스와 비전에 역동성과 유연성이 함께 할 것임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행보에 다름 아니다. 내가 서두의 일화를 특별한 의미로 해석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신미경이 비누조각을 수장고에 모셔두거나 고고한 진열장 디스플레이로 과시하는 대신 야외에 세워놓고 풍찬노숙風餐露宿시킨 것은 미술에 살아있는 시간을 담고 물질의 변성을 긍정해서다. 또한 그 과정과 결과가 작품임을 승인하는 미의식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과 다원화를 거듭하는 현대미술 역학, 특히 진보적인 미술관과 유동적인 감상자의 화학작용chemistry에 불꽃같은 역할을 한다. 그 예후로 신미경의 비누조각과 ‘비누페인팅’, 미술관의 기존 회화 및 조각 소장품이 새로운 미술 집합체를 이룬 미술관 지하 2층 현장서 특히 감상자의 반응이 생생해질 것이다.
빈 좌대와 비누 기마상, 생동하는 미술관
사실 서두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작품은 신미경이 2013년 《올해의 작가상》 최종후보에 올라 만든 전시 중 〈비누로 쓰다-좌대 프로젝트(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하 〈좌대〉)다. 꽤 알려져 있다시피 《올해의 작가상》은 201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운영하는 국내 최고 미술상이다. 1차 심사를 거쳐 선정된 4인의 최종후보들은 4천만 원의 전시지원금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펼치고, 거기서 한 명/팀의 수상자를 뽑는 구조다. 때문에 작가들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양상은 고스란히 각 전시의 규모나 작품들의 독특함 내지는 과열된 스펙터클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2013년은 수상제도가 시작되고 두 번째 ‘올해의 작가’를 뽑는 때였다. 그런 만큼 신미경 또한 자신이 그때까지 쌓아온 성과는 물론 많은 주목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전시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좌대〉도 그 선상에 있었다. 그런 중차대한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바깥에 설치하겠다니 담당 큐레이터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걱정을 이만저만 했단다. 수상을 향한 작가의 예술적 도전이 비누거품이 되어 사라질까봐 그랬을까? 형태가 녹아내려서 흉측해질까봐 그랬을까?
신미경이 국내에서 그 프로젝트를 전시하기 직전인 2012년, 작가는 그 첫 번째 에디션을 런던 번화가 옥스퍼드 서커스 부근 카벤디쉬 광장에 설치했다. 그곳에는 수백 년 동안 기념비 없는 좌대가 덩그러니 박혀있었다. 영국왕 조지 Ⅱ세의 셋째 아들이었고 스코틀랜드의 반혁명 세력을 학살해 전쟁영웅 대접을 받은 컴버랜드 공작의 기마상이 있던 자리다. 1770년에 세워졌다가 정치적 재평가 끝에 1868년 철거된 이후 여태 빈 좌대로 방치된 것인데, 신미경은 역사자료를 뒤져 원래 형상을 찾아냈고 2012년 비누로 재현했다. 놀라우리만치 탄탄한 형태와 고전적 조형미가 흐르는 그 비누 기마상은 프로젝트가 끝나고 2016년 철거되기까지 4년여 세월을 재야에서 견뎠다. 당시 런던 시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큰 관심을 보인 유명 현대미술작품이자 공공미술이었기에 현재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량의 현장 작품 사진을 볼 수 있다. 그 사진들이 증언하는 바, 길고 험한 세파가 그대로 조각상에 새겨져 공작의 몸 곳곳에 균열이 가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갔다. 그래도 거품이 일고 녹아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라처럼 빠짝 마른 상태로 점차 망가져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한 기마상은 그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런던의 그것과는 달리 짧은 기간 전시된 후 거둬들여졌다. 이러한 사실들이 의미심장한 것은 신미경의 미술이 비누를 질료로 함으로써 예술(관념)의 추상적 시간과 현실(삶)의 물리적 시간이 용해되는 형국을 지각 가능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다. 또한 실제 역사의 파편들, 지리적 차이들, 미술제도의 질서들, 작품과 감상자의 소통 양상들을 엄격한 미술관 제도 안팎으로 침투시켜 다르게 보게 한 점이다.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전에는 컴버랜드 공작의 기마상이 없다. 그와 달리 세르반테스 상, 마리 앙투아네트 상, 낭만주의 조각 시리즈, 색색의 반투명 도자기가 유령 같은 아름다움을 발휘하는 고스트 시리즈, 거대한 비누 회화 시리즈가 미술관/박물관 4개 층을 밝힌다. 그렇게 우리 관객에게 시간과 물질로 점철된 인간의 역사, 삶의 세속성과 영고성쇠를 감각하고 성찰할 문을 열어준다. 『돈키호테』를 쓴 세계적 문호의 비누조각은 남자화장실 세면대 옆에서,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가 된 프랑스 왕비의 비누조각은 여자화장실 거울 앞에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더러움을 씻어내며 미술 감상의 극대화를 이룬다(〈화장실 프로젝트〉). 엄청난 분량으로 녹인 비누를 평면 철제 틀에 부어서 하나 당 무게가 200kg인 비누회화들은 오로지 표면만을 조명하는 빛줄기로 우리에게 마치 디지털 우주를 보는 듯 한 경험을 선사한다(〈라지 페인팅〉). 때문에 코리아나 미술관/박물관은 신미경에게 자신들의 내부를 내어줌으로써 더 멀고 화려한 공간, 측량할 수 없는 시간, 생생한 미적 경험에 더 능통한 감상자를 품게 되었다고 축하할 수 있다.
1 기원 전 2800년 경 바빌로니아인들은 사포(Sapo) 언덕에서 양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낸 후 양을 태운 기름과 재로 세탁을 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비누(soap)’라고 부르는 물건의 시초다. 사포와 솝은 그렇게 희생제의와 세정/정화, 자연물과 인공물의 인류사적 연결고리를 감추고 있다. 이러한 유서 깊고 흥미진진한 역사 배경은 뮤지엄에도 있다. 이를테면 미술관/박물관과 무덤은 어원으로 따지면 지근거리인 셈이다. 단어 ‘museum’은 고대 그리스의 왕족 필로파포스(Gaius Julius Antiochus Epiphanes Philopappos)가 116년에 죽은 후 그를 기려 기념비를 조성한 지역 이름 ‘무세이온(mouseion)’과 무덤을 뜻하는 ‘마우솔레움(mausoleum)’으로 연결된다.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남서쪽에 원래 ‘뮤즈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그곳이다.
2 강수미, 「예술, 시간, 물질-신미경의 작품들과 미술관/박물관」,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전시도록,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 2023 근간.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