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허희(문학평론가) 사 진 김태웅
일 시 2025년 1월 20일 장 소 카페 느티

3년 전 여름 김지연을 편집자로서 처음 만났다. 얼마 후 나는 그녀가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발표하는 작품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부터였다. 문예지 업무와 관련한 회의가 주기적으로 열려 그때마다 그녀와 대면했지만, 둘 다 말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않았으나 내심 그녀의 소설을 애독하며 조용히 응원을 보냈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작품을 특히 동료 문인이 아꼈다.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그녀의 소설집이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각종 문학상 수상도 이어졌다. 얼마 전 현대문학상을 받은 「좋아하는 마음 없이」(《문장웹진》, 2024년 7월)는 <쿨투라 어워즈—‘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도 선정되면서 겹경사를 맞았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결혼하고,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했으며, “지갑 속에 죽은 전남편 가족사진을 넣어”다니는 ‘안지’의 삶을 담은 이 작품을 주제로 그녀와 나는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희 <쿨투라 어워즈—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김지연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지난해 여름 발표한 소설인데 계속해서 이 소설에 대해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 어쩐지 묘한 기분입니다. 선정해주신 분들이 이 소설의 어떤 점을 좋게 봐주셨는지 궁금하기도, 또 감사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쓸 때의 마음가짐들을 계속 돌이켜보게 됩니다.
허희 제가 보기에는 호감과 반감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을 세련되게 묘파하는 작품이라 많은 분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김지연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채로, 그저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듯한 친구와 대화하다가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그저 유행과 대세에 따를 뿐인) 대단히 예외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할수록 그와 같은 형태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끝없이 탐색하고 그에 따라 사는 삶이 더욱 희귀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국처럼 정해진 생애주기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심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인물에 대해서 써보자고 마음먹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허희 발표 후 어떤 피드백을 가장 많이 들으셨나요?
김지연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답답하거나 어둡게 끝나지 않고 약간은 밝고 가벼운 장면으로 전환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설을 써나갈수록 이 이야기가 불행한 느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그런 장면을 그려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허희 주인공 안지가 어릴 적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혼을 겪으면서 그녀는 여러 면에서 본인이 생각하던 전형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죠. 그렇다고 그것이 곧 안지의 불행과 등치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편이 오히려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지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기보다 다른 사람과 사회의 시선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쪽이 당연히 더 불행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을 원할 뿐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안지는 후자처럼 살기를 바라지만 결국 모든 것이 어그러졌지요. 만약에 안지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도 않고 그래서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살던 대로 살았을 것 같은데 그 삶 역시 불행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안지는 후자처럼 살다가 전자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안지에게는 이혼이 자신이 삶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탐색해 볼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며 썼습니다.
허희 ‘좋아하는 마음 없이’라는 문구는 등장인물-특히 안지의 감정적 상태나 삶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지연 이 소설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출발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처음에는 크게 애호하는 마음도 없이 여행을 다니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에게도 그런 면면이 당연히 있었고요. 나중에는 그게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대다수 사람의 삶이 그런 방식인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도 진짜 바라는 것 대신 여건에 맞춰서 따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경험들이 있고요.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특별히 원하지도 않는 채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며 썼던 것 같습니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어쩐지 조금은 가볍고 굉장히 일상적인 감정인 것 같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체험이 차곡차곡 쌓여 있지 않으면 쉽게 판별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안지는 자신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해본 적이 없으니 그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직접 해보고 난 다음에야 그 선택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겠죠. 얼핏 생각하면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살면 안 된다는 의미로 붙였던 제목 같기도 하지만요.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인생을 완전 다른 방향으로 이끌 거라 생각했던 어떤 변곡점이 아주 무서운 일이라거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싶기도 했습니다.

안지는 자신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해본 적이 없으니 그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직접 해보고 난 다음에야 그 선택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겠죠. 얼핏 생각하면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살면 안 된다는 의미로 붙였던 제목 같기도 하지만요.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인생을 완전 다른 방향으로 이끌 거라 생각했던 어떤 변곡점이 아주 무서운 일이라거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싶기도 했습니다.
허희 안지의 전남편이 사망한 이후, 그녀의 아들을 “여자”가 계속 키우고 싶어 합니다. 안지 역시 친아들을 자신이 데려와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강하지 않죠. 그녀 스스로 혈연 중심의 가족상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이를 보면서 독자 역시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되묻게 되는데요.
김지연 혈연으로 묶여 있다고 해도 아예 남보다 못한 사이를 많이 보기도 했고, 혈연으로도 법적으로도 묶여 있지 않더라도 누구보다도 각별한 사이를 많이 보았습니다. 안지가 아이를 데려와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해보며 그 아이를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데요. 여자가 아이를 원하는 것은 함께 살며 좋았던 날들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일 텐데요. 이제 와서 그런 날들을 새로 쌓아야 하는 안지는 그런 날들이 아직 미지의 세계이고요. 어느 관계에서나 긍정적으로 유지하려면 그런 날들의 축적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시간도 없이 혈연만으로 묶는 것은 이제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껴집니다.
허희 소설 속 ‘해괴한 디저트 대회’, ‘해괴한 에피소드 대회’는 독특한 설정으로 다가왔습니다. 해당 에피소드는 작품 마지막에 등장해 자칫 무겁게 끝날 수도 있는 분위기를 유머스럽게 바꿔놓았는데요. 앞서 작가님께서도 이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받으셨다고 이야기 하셨죠.

주인공 안지가 어릴 적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혼을 겪으면서 그녀는 여러 면에서 본인이 생각하던 전형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죠. 그렇다고 그것이 곧 안지의 불행과 등치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편이 오히려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지연 안지의 삶이 불행한 이미지로만 그치지 않길 바랐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원하던 삶의 형태를 발견했으면 했고, 자신의 과거 역시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였으면 했습니다. 이다음에는 또 이상한 일들이 닥쳐올 수 있겠지만 이 소설 안에서는 그래도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끝을 맺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이상한 구석이 하나씩(그 이상씩)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해괴함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갖고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안지에게는 그게 전남편의 가족사진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 텐데요. 그 점이 안지라는 사람의 성격의 여러 면을 보여줄 수 있을 듯해요.
허희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길 바라셨나요?
김지연 소설을 쓰면서 누군가는 읽어주기를 바라면서도, 어떤 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해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서 사실 제일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메시지라기보다는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소설을 구상하는 첫 단계에서 그렸던 장면입니다. 안지가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의 내연녀와 카페에서 만나 컵을 놓치는 장면이에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장면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저에게는 이 장면이 제가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각자의 삶이 대단히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두 사람이 만나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와 고별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희 앞으로 다루고 싶은 소설적 테마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또 이번 작품에서 얻은 독자들의 반응이 차기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합니다.

김지연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일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있어요. 그에 대해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있나 싶었는데 이 소설을 쓰면서 어쩐지 더 아리송해진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내면을 지키는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교류하며 만들어 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며 그 세계와 불화하고 어떻게든 화해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 글을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저서로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가 있음.
* 《쿨투라》 2025년 2월호(통권 12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