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쿨투라 어워즈] 한강 이후를 설계하는 2025년 오늘의 한국문화
[2025 쿨투라 어워즈] 한강 이후를 설계하는 2025년 오늘의 한국문화
  • 유성호, 허희, 강수미, 설재원, 김민정, 손정순
  • 승인 2025.01.24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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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전반의 이슈와 동향動向

손정순 2025년 을사년 새해에 편집위원님들을 한 자리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난 해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계엄령 선포로 이어진 탄핵정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수선한 정치적 상황 속에 2025년 새해를 맞이했는데요. 《쿨투라》는 새해에도 변함없이 문화전문지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며 문화현장에서 중핵을 짚어내는 매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합니다.

해마다 신년 초에는 편집위원들과 함께 쿨투라 어워즈 좌담을 진행하는데요.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졌던 우리 문화의 동향을 개괄적으로 점검하고, 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큰 틀에서 검토함으로써, 현재 우리 문화를 성찰해보는 자리입니다. 올해도 《쿨투라》가 문화예술가들의 설문을 통해 살펴본 ‘오늘의 시,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미술’ 등의 목록을 살펴보면, 오늘의 한국문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분씩 각자 활동 분야의 이슈나 동향을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

 

오늘의 시 동향 - 한국시는 서정 장르 본래의 위엄과 가능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유성호 최근 우리 시단은 세대, 매체, 장르, 지역 등 그동안 한국시를 분할해왔던 지표들이 모두 약화되면서 이러한 경계들이 작품의 완결성이라는 차원으로 도열해오는 듯 보입니다. 한때 시단을 주도했던 미래파 흐름의 난해시편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서정적 심화 경향과 새로운 소통을 욕망하는 신서정 경향이 시단을 주도하는 양대 축으로 보입니다. 특별히 젊은 세대의 시편들이 한층 의미론적으로 고전적 세계 이해의 차원을 강화해가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만큼 이제 한국시는 삶의 심층을 이해하고 탐구하고 충격하는 서정 장르 본래의 위엄과 가능성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소설 동향 - 실험적 서사의 활발한 창작과 정치적·사회적 문제 소설의 지속성

허희 우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부터 거론해야겠죠.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녀가 이룬 개인적 성취인 동시에, 한국문학의 저변 확대와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출판계를 포함한 한국문학번역원과 같은 지원 기관의 노력이 빚어낸 결실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2024년 한국소설의 동향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흐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서사의 활발한 창작입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작가가 인공지능과 기후 위기 등 현대사회의 주요 이슈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SF·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젊은 독자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한국소설의 확장성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소설에 대한 지속적 관심입니다. 지난해 출간된 다수 작품도 젠더·계급·노동·이주민 문제와 같은 사안에 착목하여 뚜렷한 존
재감을 남겼습니다.

 

오늘의 영화 동향 - 한국영화는 장르적 다양성과 새로운 시도로 관객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

설재원 2024년은 한국영화의 장르적 다양성과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한해입니다. 최고 흥행작인 〈파묘〉부터 한국에서 자주 시도하지 않던 오컬트 장르이구요. B급 호러 코미디를 표방한 〈핸섬 가이즈〉와 19금 미스터리 스릴러 〈히든 페이스〉의 선전과 상업영화의 틀에서 현대적 퀴어 장르를 시도한 〈대도시의 사랑법〉, 익숙해 보이는 그릇 안에서 영화적 힘을 밀고 나간 〈리볼버〉와 〈하얼빈〉 등이 특히 눈에 띈 한 해였습니다. 스코어가 아쉬운 작품들도 있지만 흥행 공식에서 탈피한 톡톡 튀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 관객을 만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름 시즌 메가히트작이 없었음에도 한국영화의 관객 수가 작년보다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구요.

지난해 한국 독립영화는 해외 아트시네마 대작에 밀려 스코어만 보면 아쉬움이 남는 한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여행자의 필요〉와 〈수유천〉 두 작품을 선보인 홍상수 감독과 신예로서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을 보여준 〈장손〉의 오정민 감독과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김다민 감독의 활약은 독립영화만이 지닌 힘을 한껏 보여주었습니다. 요컨대 2024년 한국영화는 관객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한 한 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올해는 어떤 다양한 작품들이 참신한 시도를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오늘의 드라마 동향 - 지금 모든 드라마는 ‘유니버스’를 향해 가고 있다

김민정 세상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모든 드라마는 ‘유니버스’를 향해 가고 있어요. 세계관 확장이 대세입니다. 〈경성크리처〉 〈지옥〉 〈열혈사제〉는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2024년 시즌2가 방영되었고, ‘힘쎈 여자 시리즈’도 도봉구에 이어 강남구 배경의 〈힘쎈 여자 강남순〉을 선보였어요. 〈비밀의 숲〉의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가 제작되고 나서 티빙의 효자로 등극했고요. 전설의 웹드라마 〈좋좋소〉의 스핀오프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호응이 좋았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랄까요. 최근 세계관 확장의 스케일이 많이 커졌어요. 지난겨울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되었는데, 제작비가 1,000억 원이었어요. 한 편의 드라마에 뭘 그리 제작비를 많이 쏟아부었을까 싶으실 텐데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시작된 ‘오징어 게임’ 유니버스는 스크린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봤던 게임들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해볼 수 있어요. 작년 10월 오픈한 ‘오징어 게임: 더 익스피리언스’는 뉴욕에서 8주 연속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해요. 참고로 한국은 2월 28일부터 성수동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5만 5천 원. 넷플릭스 ‘광고형 스탠다드’ 구독료의 10배에요.

 

오늘의 미술 동향 - 국내외 사회에 누적된 격변의 원인들이 후폭풍으로 현실에 나타나는 해

강수미 2025년은 팬데믹 이후 최근 몇 년간 국내 및 국제 사회에 누적된 격변의 원인들이 후폭풍으로 현실에 나타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 여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 등 각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개개인에게 실체적인 고통을 유발할 것입니다. 반대로 생성형 AI의 일상화, 젊은 세대의 사회적 개입과 참여, 문화적 삶에 대한 욕구의 대중화는 기성의 문화예술을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변화시키는 자원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 미술계는 미술시장 만능주의를 벗어나 미술제도, 미술인, 담론, 교육 등 질적 발전을 위한 일들을 시작할 때입니다.

 

기타 오늘의 문화 동향

손정순 말씀하신 오늘의 문화 동향을 정리해보면 이제 한국시는 삶의 심층을 이해하고 탐구하고 충격하는 서정 장르 본래의 위엄과 가능성을 되찾아가고 있으며, 오늘의 소설은 실험적 서사의 활발한 창작과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소설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작품집에 뚜렷한 존재감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국영화는 장르적 다양성과 새로운 시도로 관객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며, 지금 모든 드라마는 ‘유니버스’를 향해 가고 있다는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한국 미술계는 팬데믹 이후 최근 몇 년간 국내 및 국제 사회에 누적된 격변의 원인들이 후폭풍으로 현실에 나타나는 해로, 미술시장 만능주의를 벗어나 미술제도, 미술인, 담론, 교육 등 질적 발전을 위한 일들을 시작할 때라는 언급도 경종을 울립니다 .

 

이어 지난해 대중음악 시장을 살펴보자면 K-팝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장르로 부상하였으며,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들이 K-팝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 대중음악의 글로벌화, 기술 혁신,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와 가상 아이돌의 등장 등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이 K-팝의 2025년 활약도 기대하게 합니다.

작년 2024년을 마무리하는 본지의 12월호 테마는 ‘2024 ICON’이었는데요. 《쿨투라》는 한해를 빛낸 문학, 영화, 드라마, 음악, 미술, 스포츠 부문의 아이콘을 선정하여 집중 조명했습니다. 음악 아이콘으로는 데이식스가 선정되었는데요. 서영호 음악평론가는 “데이식스는 아이돌의 나라(조금 과장하자면)에 매우 자연스럽게 출현할 수 있는 밴드라는 점에서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며, “이들의 여정은, 시작은 기획사 주도였을지언정 대부분의 성공 아이돌의 경우처럼 결국 자신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통해 주체성과 정체성을 획득해가고, 또 만들어하는 오늘날 K-팝 아이돌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언급합니다. 따라서 데이식스의 선전은 “오늘날 우리의 음악적, 문화적 욕망의 결과라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아이콘”이라고 평합니다.

음악 부문 외 ‘2024 아이콘’으로는 문학의 김주혜 작가, 영화의 김고은 배우, 드라마의 변우석 배우, 미술의 함경아 작가, 스포츠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T1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쿨투라문화예술연구소가 주관한 제2회 최인호청년문화상은 〈파묘〉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오컬트영화 신드롬을 일으킨 장재현 감독이 수상하였습니다. 이 또한 오늘의 문화 동향을 잘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2. 쿨투라 어워즈 수상작에 대한 평가

손정순 그렇다면 ‘2025 쿨투라 어워즈’ 수상작에 대해 한번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2025 쿨투라 어워즈’는 2024년 지난 한 해 동안 한국문학과 문화가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살펴보며 그 의미를 기념하는 상입니다. 2006년 《쿨투라》 창간 이후 문화예술인, 평론가, 출판 편집인으로 구성된 100명의 추천위원을 통해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소설, 영화』를 비롯한 문화 분야 수상작을 선정하여 장르별 시상과 단행본을 출간해왔습니다.

2025년 올해에는 시 「미래 세계」의 안미옥 시인, 소설 「좋아하는 마음 없이」의 김지연 작가, 영화 〈하얼빈〉의 우민호 감독 세 분을 ‘2025 쿨투라 어워즈’의 수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편집위원 선생님들께서는 올해의 수상작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기타 장르에 대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오늘의 시, 안미옥 시인의 「미래 세계」
미래 세계에 대한 간절함과 그 간절함의 불가능성

유성호 「미래 세계」라는 안미옥 시인의 이 시편은 ‘미래’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는 역동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밝고 환하고 소망스러운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 시편의 양축은 시선과 행동의 주체인 ‘나’와 그 시선과 행위가 향하는 ‘너’라는 2인칭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 2인칭이 “작은 돌멩이라면” 그리고 “작은 눈송이라면”이라는 가정법에 의해 ‘나’는 ‘너’와 불가분리의 관련을 맺습니다. ‘너’를 향한 미래 세계에서의 사랑은 ‘지금-여기’를 넘어 다른 풍경으로 이월해갈 가능성으로 충일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 “그러나 너는/녹지도 부서지지도 않고”라는 말을 배치함으로써 그 미래 세계에 대한 간절함과 그 간절함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어쩌면 시인이 불러보는 ‘미래 세계’는 이미 와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불가능한 영원의 사랑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써가는 ‘시詩’의 비유체일지도 모릅니다. 시인에게 ‘시’는 녹지도 부서지지도 않고 그렇게 미래 세계를 상상케 하는 현장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오늘의 소설, 김지연 작가의 「좋아하는 마음 없이」
동시대 한국 문학의 방향성과
그 깊이를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

허희 이 작품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감정의 다면적인 양상, 그 가운데에서도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감정의 부재와 그로 인한 삶의 균열을 섬세하게 들여다봅니다. 작품의 구조와 문체도 주목할 만합니다. 김지연 작가는 비약적이거나 과잉된 서사를 지양하고, 담백하면서도 밀도 높은 문장을 통해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를 묘사하죠. 이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에게 몰입의 계기를 제공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 속 인물과 상황을 해석할 여지를 남겨둡니다. 또한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오늘날 한국 소설이 추구하는 사회적 성찰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설 속 캐릭터들의 관계와 상황—그 이면에는 현대인이 느끼는 정서적 단절과 자본주의적 삶의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죠. 이러한 점에서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쿨투라 어워즈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서, 동시대 한국 문학의 방향성과 그 깊이를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로 평가될 만합니다.

 

오늘의 영화,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
하얼빈이라는 공간 속 독립군‘들’의 숭고함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재현

설재원 2024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영화 〈하얼빈〉은 주지하다시피 안중근을 다룬 작품입니다. 하지만 영화 제목이 ‘안중근’이나 ‘영웅’이 아닌 ‘하얼빈’이듯, 〈하얼빈〉은 안중근의 거사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독립군들의 이야기까지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영웅의 삶에 집중하는 쉬운 길 대신 그의 인간적인 행적과 어려움까지도 늘어놓는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지요. 어쩌면 이렇게 어려운 도전을 감수하는 것이 인간 안중근을 풀어내는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결과 〈하얼빈〉은 주어진 기회를 살리고 변화하는 인물과 그렇지 못한 인물을 대조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하얼빈이라는 공간 속 독립군‘들’의 숭고함을 감각적으로 잘 포착하고 재현해 냈습니다. 특히 영화의 백미이기도 한 촬영과 미술은 그들의 숭고한 행적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배치되어 영화 전체를 감싸 안는 대동강 호수 신은 세트장이나 CG를 통해서는 담아낼 수 없는 공간이 지닌 분위기와 공기까지도 담아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리 알렉사 65를 활용한 아이맥스 촬영분은 로케이션 촬영을 고수한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의 한국영화에 아이맥스 활용법을 제시하는 좋은 레퍼런스로 남을 듯합니다.

 

오늘의 드라마, 한아영 작가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한국 드라마에서 가족애를 이토록 세련되게 활용한 적이 있었나

김민정 요즘 드라마는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인 경우가 많아요. 드라마 자체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경우가 드문데요. 오늘 제가 ‘오늘의 드라마’로 이야기할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2021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당선작으로 한아영 작가의 데뷔작입니다. 제가 지난 1월호 드라마월평에서 이미 극찬을 했는데요. 한국드라마에서 가족애를 이토록 세련되게 활용한 적이 있었나, 감탄하면서 본 작품입니다.

오늘의 영화 〈하얼빈〉도 저는 굉장히 좋게 보았습니다. 두 번 봤어요. 안중근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보면 영화 주인공으로는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뮤지컬 〈영웅〉을 비롯해 영화 〈영웅〉, 그리고 소설 『하얼빈』까지 이미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만의 안중근 캐릭터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그려내더라구요.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것, 이것이 참 쉬운 듯 어려운 일이잖아요. 익숙한 가족애를 낯설게 하기, 익숙한 안중근을 낯설게 하기. 역시 좋은 작품은 다 통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3. 쿨투라 신인상과 K-콘텐츠에 대한 의견

쿨투라 한 해의 문화를 짚어보는 쿨투라 어워즈는 좋은 한국문학과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고 한국 문화콘텐츠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소중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도 문학 분야 투고가 상승세를 보이는 한강 효과가 발휘되었는데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중문화 중심으로 알려졌던 한국문화가 본격문학 장르의 단단한 벽을 꿰뚫고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선 쾌거였습니다. 한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핫뉴스가 아닐는지요?

《쿨투라》는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바로 11월호를 한강의 전체 작품을 조명하는 한강 특집으로 기획하여 문단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잡지가 짧은 수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보문고 광화문 매장에서 한강 특집호가 전시 판매되고 있는 현실은 한강 효과를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 12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역사적인 노벨문학상 시상식과 노벨 주간을 집중 취재하여 새해를 여는 1월호를 ‘노벨문학상’ 테마로 장식했습니다. 독자들은 기사의 한 꼭지 한 꼭지를 정독하고 날카롭게 오류를 짚어주기도 하였으며, 한강 작품을 읽고 느낀 각각의 감상과 교감을 기고해 왔습니다. 이처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오랫동안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먹먹했으며,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의 감동을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편집위원님들 또한 그때의 감흥이나, 쿨투라 신인상 심사와 한강 이후 K-콘텐츠에 대한 전망 등 최근 한국문화의 경향을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유성호 올해에는 우리가 선정한 2025 오늘의 시, 소설, 영화 등 수상작들을 잘 번역하여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으로 나아가는 매개적 역할을 우리 쿨투라 어워즈가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이 당면한 역할을 수행해가야 한다고 할 때, 한국문학의 생산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양질의 번역을 통해 세계 독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우리의 차후 과제가 될 것입니다. 문화콘텐츠 차원에서 한국어 콘텐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핵심 역할을 수행할 번역가를 양성하고 또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더욱 다양한 루트로 발굴하고 지원해가야 합니다.

 

김민정 제가 아까 오늘의 드라마 경향으로 ‘유니버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유니버스의 확장이 여러 갈래로 현재 진화 중입니다. 유니버스의 중심이 드라마 작품일 수도 있고 작가나 감독일 수도 있어요.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작가와 감독이 스스로 스토리 IP가 되어서 자기만의 유니버스를 형성하는 것인데요. 드라마와 영화, 소설, 방송 등 장르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작가와 감독의 활동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어요. ‘크리에이터’로서의 역할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것인데요.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거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연상호 감독입니다. 드라마와 영화, 애니, 웹툰 등 장르의 경계를 무술 고수처럼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니버스’의 스토리 IP를 무한 확장하고 있어요. 올해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지옥〉의 세계관을 계승한 단편소설을 모아 소설집을 기획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허희 쿨투라 신인상은 젊은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인지도를 쌓아온 덕분이겠지만, 응모 열기뿐만 아니라 응모작의 수준이 높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독창성과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대거 투고되고 있는데요. 이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문화 전반의 질적 향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례에서 증명됩니다만,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국문화가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심화하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강수미 한국 미술계는 한편으로 국내 미술의 대중화 차원에서 유례없는 전기를 맞이했고, 다른 한편으로 국제 미술계가 공인하는 미술관이나 국제미술행사에서 위상과 전문성을 더욱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대중성과 전문성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컨대 다소 어렵고 비대중적인 작가와 주제를 내건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에 몰리는 관람객을 근거로 보자면 오늘의 미술이 대중의 미적 역량과 동반 성장하는 중이라 봅니다.

손정순 전문성을 내포한 편집위원님들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활약하시는 편집위원들의 좌담은 오늘 우리 문화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의 문화를 짚어보는 ‘쿨투라 어워즈’는 좋은 한국문학과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고 한국 문화콘텐츠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소중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전국 만 20세-64세 성인남녀 대상으로 2024년 12월 진행한 「2025 콘텐츠 소비 전망」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주당 평균 콘텐츠 소비 시간은 22.89시간으로 예상되며, 이는 2024년에 비해 3.86%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월평균 콘텐츠 소비 지출액은 29,603원으로 2024년 대비 1.5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즉 콘텐츠 소비는 즐기되 지출은 신중히 할 것이라는 거죠. 또한 미디어 플랫폼 환경 변화와 매체 발달로 인해 OTT 및 유튜브 등 온라인·구독 기반 영상콘텐츠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도서콘텐츠에 대한 소비 또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어 기대가 됩니다. 《쿨투라》는 번역에도 힘을 기울여, 새해에는 한강 이후를 꿈꿀 수 있는 오늘의 한국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해 나가겠습니다.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쿨투라》 2025년 2월호(통권 12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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