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매거진] 잡지와 아카이브 사이에서
[K-매거진] 잡지와 아카이브 사이에서
  • 호경윤(아트 저널리스트)
  • 승인 2025.03.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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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함을 써야할 때 ‘아트 저널리스트’라고 쓴다. 잡지사를 떠난 후의 시간이 잡지사에 근무했던 시간을 곧 따라잡을 만큼 오래 지났지만 아직은 다른 직함을 찾을 생각이 없다. 여러 매체에 고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 기고를 하거나 출판이나 편집, 그 밖에 미술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고집하는 이유는 첫 직장으로 미술 잡지사를 들어가서 형성된 나의 세계관이 다른 일을 하는 지금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세계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때는 모든 출판물을 보면 편집디자이너가 설정해둔 그리드가 매직아이처럼 보였고, 매체마다 다른 교열 세칙들이 도드라져 보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직업적 세계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저널리스트 앞에 붙은 ‘아트’, 즉 미술의 생태계에서 스스로 떠안은 (누구도 시키지 않은) 윤리의식과 책임감 때문에 나는 여전히‘아트 저널리스트’를 고수하고 있다.

미술 잡지는 현재 열리는 전시회들을 기반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전시회 중에서 소개할 만한 것을 선별하고, 때로는 비평적으로 강조할 새로운 담론을 찾아 다루는 곳이 미술 잡지다. 이러한 지점에서 ‘게이트 키퍼’라는 별칭을 붙여 미술 잡지의 역할을 추켜세워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 산업의 시스템들이 발전하고 시장논리에 편입되며 각 영역들이 분업화/고도화되면서 하나의 전시회가 열리는 데 이미 여러 단계의 판단과 선택의 장치가 개입되어 버렸고, 미술 잡지의 영향력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들, 그곳을 채우는 작품들과 작가들, 그 사이들을 잇는 매개 인력들과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을 소비하는 관객들. 이러한 생태계 구조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며 광고료 또는 구독료로 유지하는 잡지사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은 다른 장르도 비슷할 것이다.

또한 미술 잡지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인쇄와 출판이 확대되던 100여 년부터 여러 시도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전문지로서의 영역과 역할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은 88올림픽 전후에 가능해졌다는 점에서도 다른 문화 잡지들과 대동소이할것이다. 내가 근무했던 《아트인컬처》에서 지난해 창간 25주년을 맞아 전 편집장들을 대상으로 주어진 미술 잡지에 대한 제언의 기회를 얻었다. 나는 그 지면을 통해 미술 잡지들의 온라인 구독제나 전자책 플랫폼 입고 등의 동향을 짚었다. ‘종이잡지의 위기, 디지털로의 전환’ 같은 이야기도 이미 출판계와 잡지계를 막론하고 아주 오래된 이야기일 테지만 미술 잡지의 경우,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면상의 한계로 딱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이미지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예술에서도 ‘시각’적인 영역에 속하는 미술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잡지라면 이미지가 텍스트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면이 많다. 이미지 없이 텍스트만으로 정보 전달이 어렵다는 근본적 특성을 들 수 있다. 또한 미술애호가인 독자가 잡지를 구입하는 이유를 작품 이미지를 (비록 인쇄본이라 할지라도) 소유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온라인으로 서비스한다고 해도 판매율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미술 잡지들의 온라인 서비스에 대해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잡지가 매체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잡지 제작의 과정부터 결과까지 ‘축적’해 나간다는 점이다. 미술 분야의 전문지는 영리 목적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매달 미술계의 다양한 현상을 ‘한 달’(또는 한 계절, 한 해)이라는 시간 단위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기능이 강하다. 이는 기록학 분야의 ‘수집’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록’의 개념은 특히 이미지의 측면에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미술 잡지의 주된 재료인 작품사진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했으나,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인하우스 사진기자의 필요성이 줄었다. 대신 기자나 에디터가 DSLR로 직접 촬영하거나, 미술관이나 작가로부터 제공받은 디지털 이미지 파일의 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정리 및 보관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에는 저작권에 대한 규제가 높아지면서 2차적 활용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

 

* 기사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

 


호경윤 아트 저널리스트. 현재 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과정, 서울시립대 출강 중. 미술전문지 《아트인컬처》에서 2001년부터 2015년까지 기자, 편집장 등으로 근무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아카이브 북『마지막 국가관』의 총괄 편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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