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봉순이
학교 종이 울리면
나는 무섭다
길을 가다
술에 취한
울 아부지 만날까 봐
도랑물에
빠져 자는
주정뱅이 아저씨가
너그 아빠 아니냐고
친구들이 물어보면
울 아버진 물질 갔다
거짓말만 수백 번째
서울살이 13년째
고향에서 고모가 보내온 편지
네 이름만 부르다가
하늘에 간 네 아버지
밥 한 그릇 떠 놓고서
인사 한번 드리거라
아닙니다 아닙니다
울 아버지 아닙니다
울 아버진 날씨 좋다고 물질하러 갔습니다
아니, 아니, 마루에서
술 따르고 있습니다
─ 『삶이 나에게』(천년의시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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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를 부인하고 싶었습니다
뭐 이런 시시한 시를 다 뽑았냐고요? 미안합니다. 화를 가라앉히고 잠시만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이 시는 탈북자가 낸 시집에 실려 있습니다. 1987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난 봉순이(필명) 씨를 직접 만나 장시간 얘기를 나누면서 이 시의 내용이 실제상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에 어부였던 것 같은데 배를 안 타고부터는 술독에 빠져버렸나 봅니다. 도랑물에 빠져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동무들이 너그 아빠 아니냐고 물어보았을 때 봉순이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동네 여기저기서 쓰러져 잠들어 있곤 했나 봅니다. 이곳에서라면 알코올 중독자 수용 시설에 들어가 있을 텐데 북한에서는 그런 시설이 없나 봐요. 내 아버지를 동무들 앞에서 아버지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면 그 수치심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흔히 하는 말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겠지요.
세월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시집의 날개를 보니 봉순이는 2003년에 탈북하여 2005년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서울에서 살게 된 지 13년이 되던 해에, 즉 2018년에 고향의 고모가 쓴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이 해가 어떤 해인지 알고 계십니까?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합의에 따라 그해 광복절을 계기로 금강산에서 2018년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2차에 걸쳐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 무렵에 편지를 받아봤나 봐요.
고모의 편지에 네 아버지가 네 이름만 부르다 돌아가셨으니 밥 한 그릇 떠 놓고 절이라도 올리라고 씌어 있었던 거지요. 봉순이는 아버지를 내 아버지 아니라고 부인했던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겁니다. 내 아버지는 고기 잡으러 나간 게 아니라 허구한 날 마루에서 술추렴이나 하다가 돌아갔으므로 그리움과 원망스러움이 교차해 말문을 잃고 맙니다. 시의 마지막 연이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아버지한테 죄송하다느니 보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화자가 자주 봤던 모습, 자작인지 술친구와 함께인지 마루에서 술을 따르던 모습이 떠올랐던 거지요.
딸은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지도 못한 채 13년을 대한민국에서 살았습니다. 탈북자가 3만 5,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에 따른 이산가족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통일을 운위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지만 봉순이의 사연을 접하고 보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우리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생신날/ 미역국 대신 아버지가/ 제일로 좋아하시던 청국장을 끓였다// 한술도 안 뜬 청국장은 그대로 있고/ 아버지만 없다.”란 시의 제목이 ‘천국’입니다. 탈북하여 천국 같은 곳에 왔지만 아버지가 안 계십니다. 봉순이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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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사람 사막』 외 다수.
문학평론집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외 다수.
평전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외 다수.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쿨투라》 2025년 2월호(통권 12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