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지하다시피 이 나라의 ‘뮤지컬영화’, 일명 ‘무비컬’은 SF 영화와 더불어 대표적인 비인기·미발전 장르다.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언급할 만한 무비컬 편 수가 기껏 10편 전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그 역사와 현실의 초라함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아 성황 리에 공연 중인 〈명성황후〉를 비롯해 〈알라딘〉, 〈지킬 앤 하이드〉, 〈웃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2월 25일 기준 ‘많이 예매한 공연’ 순위에서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네 편이 모두 뮤지컬이란 점을 감안하거나, 2009년 초연 이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자리 잡은 〈영웅〉 등을 떠올리면 그 초라함은 의외인 감이 없지 않다.

2006년 9월과 11월 두 달 사이 대한민국 무비컬 역사에서 어떤 터닝포인트로 평가될 〈구미호 가족〉(이형곤)과 〈삼거리 극장〉(전계수)이 선보이기 전까지, 한국영화역사에 기록돼 있는 무비컬은 유동일 연출에 현인 윤일봉 주연 전창근 각본의 〈푸른 언덕〉(1949) 한 편이다. “기재의 빈약과 시설 미비, 기술 부족으로 당초 기대한 만큼 좋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광복기(1945-1954)에, “장차 기술의 축적을 위해 다행스런 일이었다”(『우리 영화 100년』, 정중헌 김종원 지음, 현암사, 2001)는 ‘동시 녹음 음악극’. 2019년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선보인 이 기념비적 영화는, 무비컬을 넘어 “명실상부하게 한국 음악영화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1949년 당시 〈신라의 달밤〉 등으로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가수 현인이 주연으로, 1950-80년대 수많은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작곡가 황문평이 스태프로 참여했다(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필름 일부, 3분의 1 정도만 남아 있으나, “현존 분량만으로도 주인공의 음악적 고민과 성장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기에 충분하다. 시공간(현재 명동예술극장) 안팎, 음반 제작 과정, 악기점 앞 인파 등을 담은 씬은 당대 음악문화 관련 영상 사료로서도 높은 가치가 있다.”(프로그램 노트)

돌이켜보면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의 영화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록 14만 명과 1.6만 명이라는 보잘 것 없는 흥행 성적을 거두는 데 그쳤어도, 무엇보다 장르 다양화 등의 시도에서 그렇다. 뿐만 아니다. 내러티브 위주의 여느 극영화와는 다른 시선·접근이 요청되는 무비컬 관람 컨벤션에서 평하면, 그럴 듯한 뮤지컬 넘버 등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덕목들이 적잖다. 아무리 인색하게 평한다 한들 이들의 음악들은 18년의 세월의 흐른 이 시점에서도 귀를 잡아끌기 모자람 없다. 이들은 각각 2007년 제4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박시연)과 신인 감독상을 안는 나름의 쾌거를 일궈냈다.


위 두 유의미한 시도의 흥행 참패가 낳은 결과는 그러나 크고 깊었다. 2022년 9월과 12월 한국 무비컬 역사를 새로 쓸 두 편, 〈인생은 아름다워〉(최국희)와 〈영웅〉(윤제균)이 등장할 때까지 16년의 긴 세월이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멋진 인생〉(신춘수, 2011)과 〈어게인〉(조창렬, 2020) 같은 역시 유의미한 시도가 있었으나, 박스오피스에서나 비평적으로나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참고삼아 밝히면 이들의 흥행 수치는 3천여 명과 1천 2백 명 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2021년에는 1945년 일본 패전 후 일본 본토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소녀(김보경 분)가, 식민 지배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는 지선(염보경 분)과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무비컬로 극화해 23회 부산독립영화제에서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한 〈바람의 아이〉가 만들어졌으나, 아직 관객과 조우하진 못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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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삼십 수년 평론 외에도 다양한 영화 포함 문화 관련 활동을 펼쳐왔다. 팟캐스트이자 유튜브인 〈매불쇼〉 ‘시네마지옥’ 코너를 6년째 고정 출연 중이며, 유튜브 〈칸찬일과 영화깜보〉를 진행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한국과 베트남이 협력하는 영화 프로젝트 등도 기획·추진 중이다.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부산콘텐츠마켓(BCM) 전문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 《쿨투라》 2025년 3월호(통권 12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