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년간 한국뮤지컬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1년 한국에 상륙한 〈오페라의 유령〉이 예상밖으로 흥행을 거둔 뒤 한국 뮤지컬시장은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 전후 연간 매출액이 100억 원도 안 되던 뮤지컬 시장은 2024년 매출액 4,651억 원을 기록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성장세가 두드러져 2023년에는 공연 시장이 영화 시장의 매출을 앞지르기도 했다.
이처럼 뮤지컬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좋은 작품을 만든 제작자도 있었지만 재능 있는 뮤지컬 배우들의 공도 상당히 컸다. 1세대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의 최정원, 전수경 등을 시작으로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뮤지컬 대중화에 기여했다. 뮤지컬 배우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연기는 물론 노래와 춤 실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매일 라이브로 무대에 서야하기 때문에 탄탄한 실력은 기본이고 철저한 자기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맨 오브 라만차>의 류정한. 오디컴퍼니(주) 제공
2000년 이후 해외 유명 라이센스 뮤지컬이 국내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걸출한 뮤지컬 스타들이 등장했고 동시에 뮤지컬 팬덤도 커졌다. 고가의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의 공연을 여러차례 관람하는 일명 ‘회전문 관객’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배우는 류정한과 조승우다. 1997년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데뷔한 류정한은 20년 넘게 전성기를 뮤지컬 스타다. 뛰어난 가창력을 갖춘 그는 수많은 라이선스 뮤지컬의 초연을 담당해 ‘초연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오페라의 유령〉 라울 역으로 관객에게 각인된 류정한은 2007년 제13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제작사 RG컴퍼니를 만들고 창작 뮤지컬 〈시라노〉의 제작자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조승우는 한국뮤지컬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인 배우다. 조승우의 등장으로 뮤지컬 시장에도 본격적인스타 마케팅이 시작됐다. 2000년 뮤지컬 〈의형제〉로 데뷔한 뒤 2004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열연을 펼친 그는 ‘조승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헤드윅〉, 〈맨 오브 라만차〉, 〈오페라의 유령〉 등에 출연하며 각종 뮤지컬의 ‘캐스팅 0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조승우가 곧 장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출중한 연기력과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흡인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흥행을 일군 몇 안되는 배우인 그는 지난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극 〈햄릿〉에도전하기도 했다.

<프랑켄슈타인> 박은태,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홍광호와 박은태는 조승우의 계보를 잇는 뮤지컬 스타다. 이들은 인기 배우의 관문인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 역을 거치며 뮤지컬계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명성황후〉의 앙상블 출신인 홍광호는 〈맨 오브 라만차〉, 〈노트르담 드 파리〉, 〈데스노트〉, 〈시라노〉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차근히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뮤지컬 배우로서 단독 콘서트를 성공시킬 정도로 팬덤을 확보한 그는 2014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투이 역을 맡으면서 ‘한국인 최초 웨스트엔드 진출’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풍부한 성량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갖춘 홍광호는 한국 초연 20주년 기념 뮤지컬〈지킬 앤 하이드〉에서 전성기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박은태 역시 ‘뮤지컬계의 명창’을 꼽을 때 빠지지않는 배우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겟세마네〉, 〈모차르트!〉의 〈내 운명 피하고 싶어〉,〈웃는 남자〉의 〈그 눈을 떠〉 등 고음역대 넘버들을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로 높은 음역대와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한다. 뮤지컬 〈모차르트!〉에서는 섬세한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킹키부츠〉에서는 코미디까지 섭렵하는 등 다재다능한 배우로 평가된다.

<베르테르> 전미도, CJ ENM 제공
여배우들도 뮤지컬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남자 배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티켓 파워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엘리자벳〉 〈레베카〉 〈마리앙투아네트〉 〈명성황후〉 〈위키드〉 〈프리다〉 〈마타하리〉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꾸준히 제작되면서 여배우들의 환경 반경도 넓어졌다. 김선영, 조정은, 정선아 등은 대극장 뮤지컬 타이틀롤을 연이어 꿰찼고 김소향은 동양인 최초로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 출연하며 해외로 무대를 넓혔다.
그 정점에는 옥주현이 있다. 1세대 아이돌 ‘핑클’ 메인 보컬 출신인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 시장을 활짝 열었다. 2005년 뮤지컬 〈아이다〉로 데뷔한 옥주현은 출중한 가창력과 스타성으로 대형 뮤지컬 작품의 주연을 꿰차면서 가장 강력한 티켓파워를 보유한 여성 뮤지컬 스타로 성장했다. 세계적인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옥주현에게 영감을 얻어 뮤지컬 〈마타하리〉의 곡을 작곡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
2010년 〈모차르트!〉로 데뷔한 김준수는 첫 공연부터 약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를 매진시킬 정도로 주목받았다. 인기 아이돌그룹 동방신기, JYJ 출신인 그는 뮤지컬 공연장에 해외 관객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녔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갖춘 그는 대표작 〈드라큘라〉 〈데스노트〉 〈엑스칼리버〉 등으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뮤지컬 시장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갖춘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알라딘〉처럼 대형 뮤지컬의 초연에도 단골 출연하고 있다.
* 기사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연세대학교 불문과·동대학원 영상학 석사. 한국 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유튜브 채널 〈은기자의 왜 떴을까TV〉진행. 저서 『왜 떴을까: ‘K-크리에이티브’ 끌리는 것들의 비밀』이 있음
* 《쿨투라》 2025년 3월호(통권 12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