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미 초대전] ‘숲의 화가’ 꽃그림을 그리다: 변연미 개인전 《지고피다》
[변연미 초대전] ‘숲의 화가’ 꽃그림을 그리다: 변연미 개인전 《지고피다》
  • 설서윤 인턴기자
  • 승인 2024.06.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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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미 작가의 개인전 《지고피다》가 5월 3일(금)부터 30일(목)까지 서울시 성동구 갤러리 은에서 열렸다.

본래 ‘숲의 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작가는 본래 감각적이고 재현적이고 사실적인 숲을 그려왔다. 1999년 프랑스를 강타했던 폭풍의 흔적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작업은 벵센느 숲을 자주 산책하던 작가에게 충격을 주었다. 압도적인 규모이지만,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들여다볼 때가 다른, 하나의 화면 속에 다른 국면을 포함한 그림을 그려왔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걸쳐 체계를 건축하는 회화를 갈망하고 몰두해온 작가는 스스로를 구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붓질임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오랫동안 그려오던 숲그림을 떠났지만, 여전히 뜨겁고 이지적인 몸으로 꽃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숲그림을 그릴 때 “나에게 제일 중요한 도구는 나 자신의 몸이다.”라고 말하며, 전체와 움직임에 대해 기록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무언가를 애써 표현하려는 강박과 욕망을 떨쳐내고, 색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며 색을 몸으로 느꼈다.

개인전 《지고피다》는 작가의 꽃그림이 돋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쁘거나 부드러운 꽃그림은 아니다. 거실에 걸었을 때 얌전히 실내 분위기를 지켜주는 화사한 조형언어와는 다르다. 오히려 불친절하고, 거칠고 역동적인 색깔들의 잔치다. 그림들은 작가와 관객의 교감을 과감하게 요구하며 춤춘다. 작가의 붓터치로 활달한 몸짓이 표현되고, 역동적인 색깔 언어를 쏟아낸다. 마치 폭발 진전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 꽃 그림 형식만 빌린 듯한 작가의 꽃그림은 소장자의 거실에 소품으로 자리잡고 얌전한 장식이 되기를 거부하고, 하나의 인격이 되어 관객에게 당당히 말을 건넨다.

 

너와 나는/이미 꽃을 꺾는 존재/언제나 낯설은/어둠 속의 노역을/누군가 동정한다 해도/꺾인 꽃은/불안의 보랏빛 정령이/빠져나간/호리병 마개./무엇을 밟아선 거냐/무수히 죽어간 예감/시신들, 어지러움들/햇빛은/여윈 어깨에 손을 얹으며/저 멀리까지를 가리키고/또다시 죽어갔다/서 있는 곳이/곧/바닥이다/너와 나는/이미 꽃을 기다리는 존재

- 손월언 「꽃」

 

노자는 도덕경에서 ‘자연은 인간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본다’라고 말했다. 거대한 우주 속 인간은 잠시 스쳐가는 먼지 한 톨에도 불과하지 못한 존재일 수 있다. ‘숲의 화가’ 변연미는 꽃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자유로운 붓질로 꽃그림 형식을 그린 것이다. 참으로 경이롭지 않은가.

 

 


 

 

* 《쿨투라》 2024년 6월호(통권 1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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