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월평]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 〈트위스터스〉
[영화월평]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 〈트위스터스〉
  • 이지혜(영화평론가)
  • 승인 2024.09.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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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터스〉는 히어로물이다

정이삭 감독의 〈트위스터스〉는 기후위기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다. 〈트위스터〉(얀 드 봉, 1996)의 속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위스터스〉는 엄밀히 말해 재난영화라기보다 ‘히어로물’에 가깝다. 28년만에 돌아온 〈트위스터스〉는 천재天災처럼 보이는 원인불명의 토네이도, 즉 ‘기후위기’와, 인재人災처럼 보이는 자본주의자들 사이에서, 주인공 ‘케이트’(데이지 에드거존스 분)가 어떤 가치관을 선택하며, 좇게 되는지 그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추적하는 영화다.

비교적 세기말에 개봉한 〈트위스터〉는 재해의 시작과 소멸, 즉 영화적 소재로서 ‘토네이도’에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죠스〉(1978)를 시작으로 〈볼케이노〉(1997), 〈투모로우〉(2004)에 닿기까지 그 시기 천재지변을 다룬 블록버스터 영화는 현실에서 가능치 않거나 체험이 어려운 것들을 재현하며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었다. 재해가 관객에게 희귀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나긴 세월사이, 더 이상 우연이나 환상처럼 보였던 재난의 원인이 대부분 인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인간이 배출해 낸 여러 요소가 기후위기의 시초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더는 막을 수 없고, 천재처럼 보이는 인재가 주는 충격에 사람들은 무감해졌다.

이를 주지한 듯 《씨네21》과의 인터뷰(2024. 8. 16.)에서 정이삭 감독은 “토네이도의 작동 방식과 그 여파만큼은 과학적 실증을 기반으로 표현”하며 ‘도로시’와 ‘닷지 픽업트럭’ 등의 전편 설정을 차용하되, “케이트 카터라는 영웅적 존재의 이야기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모든 서사적 장치가 그녀와 연계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라고 밝혔다.

 

‘케이트’라는 히어로

〈트위스터스〉에는 시대상을 반영한 매력적인 히어로 캐릭터가 여럿 등장한다. 토네이도라는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기후 물리학자 히어로 케이트, 토네이도 카우보이를 표방하는 인플루언서 히어로 ‘타일러’(글렌 파월 분), 개인의 사익과 인류적 대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히어로 ‘하비’(안소니 라모스 분) 등이 그렇다. 이 셋이 토네이도를 욕망하는 마음에는 기실 경중이 없다.

하지만 정이삭 감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케이트’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그의 성장을 뒤쫓는다. 수많은 재난영화, 혹은 재해와 구원을 다루는 장르물에서 특기할 만한 여성캐릭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이삭의 자신감만큼이나 케이트는 그간 재해물에선 볼 수 없었던, 좀 유다르게 평범해서 희귀한 히어로다. 어떻게 보면 이토록 보편적이어서 특별한 히어로를 완성하기 위해 ‘토네이도’라는 자연재해를 가지고 왔다고 볼 수 있겠다.

뉴욕 기상청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케이트는, 5년 전 오클라호마에서 토네이도를 연구하던 중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 천둥과 벼락 소리만 나도 밀밭으로 뛰쳐나가 하늘을 구경할 만큼 자연현상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던 꼬맹이 시절도 있었지만, 케이트는 이제 그의 허벅지에 길게 남은 상흔처럼 불가해한 죽음의 그림자에 사로잡혔다. 연인이 케이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읊조리던 “내가 같이 있어.”라는 말은, “너는 혼자 살아남았어.”라는 죄악감으로 변모한 듯 보인다. 그는 자신을 구하다 죽은 연인과, 자신과 같은 꿈을 꾸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쉽사리 잠 못 이루는 어른이 되었다. 말하자면 〈트위스터스〉는 케이트에게 “그렇게 네가 좋아하던 것들이 너의 모든 것을, 삶의 터전을 앗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라고 묻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각 캐릭터의 행동을 통해 답한다.

 

오른쪽 길, 왼쪽 길

영화에서 주요하게 제시되는 메타포 중 하나는 길이다. 시종일관 사람들은 케이트에게 오른쪽 길인지 왼쪽 길인지를 묻는다. 토네이도의 등급이 더 큰 쪽을 케이트에게 맞춰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따르면 토네이도 등급은 토네이도가 끝난 후에야 정해진다. 토네이도가 생성된 시점에는 민간 피해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피해 규모까지 확인한 후 등급을 정한다는 것이다. 영화 시점에서 5년 전, 오클라호마에 들이닥쳤던 토네이도의 규모와 상관없이 케이트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의 삶을 구성하던 모든 것을 잃었다. 현장에서 직접 토네이도를 길들여 자연재해의 피해에서 민간인을 구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오히려 토네이도 때문에 좌절된 첫 결과 값을 도출한 것이다. 따라서 홀로 남아서라도 계속 천재지변과 맞서 싸울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터전을 찾을 것이냐? 라는 첫 번째 선택의 기로에서 케이트는 그대로 뉴욕으로 도망치기를 택한다.

그런 케이트를 불러들인 것은 또 다른 생존자 ‘하비’와, 케이트의 어머니를 포함한 정착민들이다. 영화는 사람들 비극으로 한몫을 잡으려는 사람과, 사람들의 비극을 중개해 역설적으로 비극에서 구해주려는 사람을 두 갈래 길 앞에 세워둔다. 그리고 그 비극에서 이제는 도망치고 싶은 사람, 즉 케이트의 태도를 세심한 필치로 쌓아두며 대답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결말부 케이트의 선택은 영화 초반 하비가 케이트에게 건낸 질문, “왜 우리만 살아남았다고 생각해?”의 명민한 해답처럼 보인다. 따라서 정이삭 감독은 시종일관 케이트에게 오른쪽 길로 떠날 것인지, 왼쪽 길로 달려갈 것인지 그 여부를 묻는다. 어느 것이 옳은 길인지는 말하거나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같이 있어

영화 중반부, 케이트의 엄마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을 마주 본다. “날이 자주 가물고, 밀 종자 가격이 속수무책으로 오른다. 그래도 난 여기를 떠날 수 없다.” 눈으로 체감하는 직접적 재해의 흔적보다, 삶으로 체득하게 되는 물가의 변화가 생을 더 힘들게 한다는 걸 그는 안다. 그럼에도 그는 삶의 터전을 지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그는 딸 케이트의 상처를 내려다보며 “난 여전히 네가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어.”라고 힘주어 말한다.

케이트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아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모두와 ‘같이 있기’ 위해 또다시 ‘혼자 있기’를 택한다. 누구보다도 토네이도에서 도망치는 법을 잘 알고 있지만, 외려 토네이도를 향해 달려간다. 닷지트럭에 몸을 싣고, 지면에 나사를 박고서, 재해를 다스리기 위해 정면 돌파한다. 언뜻 이 역할은 케이트를 조력하며 여전히 ‘같이 있어 주는’ 친구 하비, 혹은 케이트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어쩌면 앞으로 케이트를 이해하기 위해 평생 노력해야 할 타일러에게 더 잘 어울리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만큼 재해에서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된 두려움에 떨던 겁쟁이라는 설정은 너무나도 흔해 빠진 클리셰다. 하지만 이토록 보편적이기 때문에 여성캐릭터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역할을 케이트는 훌륭하게 완수한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어떤 가치를 쫓을 것인가? 왜 우리가 살아남았을까. 난 아직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문화평론가. 제16회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부문 등단.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A로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경희대에서 강의. 《쿨투라》에 영화평론을, 《르몽드》에 문화평론을, 《서울책보고》에 에세이를 기고하며 서울형책방 지원사업을 진행. 전주국제단편영화제(2023) 전북부문 심사위원, 서울역사영화제 집행위원(2024).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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