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선이 아닌, 영역으로써의 경계: 프로젝트그룹쌍시옷 〈당연한 바깥〉
[연극리뷰] 선이 아닌, 영역으로써의 경계: 프로젝트그룹쌍시옷 〈당연한 바깥〉
  • 박진서 연극평론가
  • 승인 2024.09.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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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주중 대사관을 통해 탈북을 시도하는 ‘여자’가 있다. 무사히 진입에 성공하지만, 뒤따라오던 그의 자녀는 공안에 체포된다. ‘여자’가 탈북 전문 브로커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포착한 국정원 소속의 종우와 서진은 그에게 제안을 한다. 바로 한국전쟁 당시 남한군 출신의 미송환 포로를 데려오면 자녀와 함께 남한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한편 ‘여자’의 건강을 관리하던 ‘의사’는 ‘여자’에게 자신의 고향인 북한에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병세가 악화되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화교 출신 탈북자이자 ‘의사’의 어린 시절 고향 친구였던 종우는 위험한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완전한 북한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니었던 그에게 고향은 그저 배제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여자’는 포로의 손자인 ‘청년’을 요원들에게 데려온다. 그러나 국정원의 예상과 달리, ‘청년’은 할아버지가 남한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다는 뜻을 확고히 전한다. 할아버지는 군인으로 잡혀 온 만큼, 휴전선을 통해 넘어가는 군사적인 형태의 귀환이 아닌 형식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 후, 북한과 중국의 접경인 장백에서 ‘청년’의 할아버지의 귀향을 설득하기 위한 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다. 그와 동시에 ‘의사’의 비밀스러운 고향 방문이 이루어진다. 탈북 브로커인 ‘여자’와 그의 조력자이자 국경수비대 소속 군인 ‘청년’의 도움, 그리고 종우와 서진의 의도적인 방관이 이를 무사히 성공시킨다.

하지만 ‘의사’는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신분을 위장해 북한으로 입경한 그가 체포된다. 그의 입경을 도와준 모든 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경계’ 위에서 계속된다. 근무 교대 시간이 끝나가는 ‘청년’은 국경수비대라는 자신의 위치로 향하고, ‘여자’는 ‘의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북한으로 향한다.

〈당연한 바깥〉1의 이야기는 국경지대와 대사관, 그리고 정보기관의 안전가옥 같은 ‘경계’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공간들은 기하학적으로 보자면 면적을 갖지 못하는 ‘선’이 아닌, 분명한 물리적 실체이자 영역으로 존재한다.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무대 구조는 이러한 ‘영역으로써의 경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레드카펫이 깔린 런웨이같은 직사각형 무대를 사이로 양쪽의 객석이 마주보고 있다. 무대가 마치 서로 다른 영역의 객석을 구분하는 경계처럼 존재한다. 선에 가까운 형태이지만, 무대는 독자적인 면적을 가진 또 하나의 ‘영역’이다. 그 위에서 전개되는 인물들의 서사는 국경으로 대표되는 경계 또한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써 존재하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언론이라는 무형의 공간에서 평면적으로 전달되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무대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재현된다.

객석을 구분하는 무대에는 또 하나의 선이 가로지른다. 무대의 가운데에 한 단 높이의 요철이 솟아있어, ‘凸’ 모양의 단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곳은 무대 위의 행동영역을 제한하는 듯 보이지만, 극 중 인물들은 그다지 높지 않은 그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고 그 위의 공간에서도 연기가 이루어진다. 경계는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교류가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의 경계도 면적을 가진 물리적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은유한다.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은 경계가 선으로 존재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경계가 하나의 영역이 되는 순간, 안과 밖은 더 이상 단절된 공간이 아니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사회가 제도적으로는 단절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공식적·비공식적 교류와 상호작용들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여자’와 같은 인물들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바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안쪽의 사람’이 된다. 이러한 정체성은 그들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영역으로써의 경계 안에서 자신의 삶을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든다. 이렇듯 〈당연한 바깥〉은 그 제목과 달리 경계를 영역으로 조명하며, 안과 밖이라는 공간의 감각을 모호하게 만들어낸다.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지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지도 위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세계는 복잡다단한 삶들이 경합하고 어우러지며 구축하는 영역에서 펼쳐진다. 면적이 없는 선으로써의 경계란 존재할 수 없고, 영역으로써의 경계가 존재할 뿐이다.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사회학자인 리처드 세넷은 영토를 구분하는 경계를 [가장자리] 경계boundaries와 [교류] 경계borders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자가 어떠한 사건이나 사물이 종료되는 단절적인 경계라면, 후자에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만들어진다. 〈당연한 바깥〉은 남북한을 가로지는 경계를 [가장자리]가 아닌 [교류]의 관점으로 재조명한다. 이를 통해 경계는 물리적인 실체와 영역을 가진 삶의 터전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선에는 면적이 없기에 생성과 소멸, 이동만이 가능하다. 그에 반해 영역은 면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팽창하며 때로는 수축한다. 그리고 이러한 팽창과 수축은 경계의 안팎에 속한 우리의 몫이다. 전쟁과 분단의 시대는 끊임없이 경계를 만들어낸다. 선이 아닌 영역으로써의 경계를 조명하는 〈당연한 바깥〉의 시선이 어쩌면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프로젝트그룹쌍시옷이 제작한 연극 〈당연한 바깥〉은 이양구가 쓰고 송정안이 연출한 작품으로, 2024년 7월 20일부터 8월 4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초연했다.

 

 


박진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예술경영을 공부하며, 공간의 프레임으로 문화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노동과 다양성을 발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음. 저서로 『구로동 헤리티지』가 있음.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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