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깊은 숲, 영감이 샘솟는 옹달샘: 성주 아트리움 모리 & 아트스페이스 울림
[미술관 탐방] 깊은 숲, 영감이 샘솟는 옹달샘: 성주 아트리움 모리 & 아트스페이스 울림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07.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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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참외를 품은 비닐하우스들이 물결치듯 일렁이는 지역이 있다. 참외의 고장이자 가야산자락 산수길이 있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곳, 경북 성주이다. 최근 이 지역에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술관이 있어 방문해 본다. ‘성주 아트리움 모리’와 ‘아트스페이스 울림’이다.

울림 외부전경

아트리움 모리는 지난 2022년 1월에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시동과 카페 두 개의 타원형 건물이 ‘C’자 형상 혹은 하나의 물방울 모양으로 연결되어있다. 아트리움 모리는 영감이 샘솟는 옹달샘, 투명한 물방울을 건축 콘셉트로 만들었다. ‘모리’는 신라 시대 산을 일컫는 옛 우리말로, 흔들림 없이 우직한 산처럼 여린 작가와 맑고 투명한 유리 같은 작품들을 듬직하게 품어주는 공간이길 희망하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울림 실내 홀

 

특히 1층 전시실의 색상을 따뜻한 회색 톤을 사용하여 차분하고 편안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고, 2층은 간결한 조형미와 절제된 요소를 통해 모던한 디자인으로 설계해 공간 속 조형 요소와 포인트 컬러로 변화를 주었다. 빛을 품어서 정적이고 둥근 라운딩의 아늑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전시실은 작품과 함께 공간을 보고 누리는 재미가 있다.

또한 건물 입구에는 수직으로 솟은 기둥과 처마에 분홍색 곰 ‘MORI’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손영복 작가가 만든 MORI는 여리고 섬세한, 투명하고 순수한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낼 줄 아는 개성 넘치고 발랄한 예술가들을 상징한다. MORI는 이 공간의 의미처럼 흔들림 없이 우직하게 늘 그 자리를 지키며 예술가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임창민 작, into a time frame Mt. Eiger

현재 모리 전시실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임창민 작가의 《Time-warp》전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들이 등장하고 그 장소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들이 있다. 실내 공간이 미동도 없이 너무나 고요한 반면, 창 너머 바깥 풍경은 사뭇 다르다. 창을 통해 보이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상 밖 풍경은 사색을 하거나 ‘멍 때리기’ 제격이다.

‘창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타임워프하다’라는 부제처럼 창문은 작가의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요소이다. 건물에 어느 방향으로 창을 내느냐,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조망이 어떠하냐에 따라 건물의 가치가 달라지기도 하듯 오늘날 우리에게 창은 기능적 측면을 넘어서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임창민 작품 속에 공존하는 두 가지 시점은 창을 통해 하나의 프레임 안에 존재한다.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기차, 비행기, 호텔방 내부 등의 사진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의 장소로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준다. 또한 창밖으로 느긋이 움직이는 외부풍경 역시 사진과 영상이라는 두 매체의 결합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서정적 분위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일상의 공간을 리서치 후 섭외하여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후반 작업을 통해 화면을 재구성하는 수차례의 섬세한 시도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통해 알 수 있듯 두 개의 공간과 시간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그가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매체의 결합에서 오는 생경함보다는 고요히, 그러나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이라는 주제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창이 있는 이 공간에서 시간의 속성을 더하여 시공간의 증축을 시도하고자 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공간의 제약 없이 다양한 경험이 가능해진 현대인의 노마드적 습성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일상의 공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창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타임-워프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간을 온전히 즐겨볼 수 있다. 런던, 포틀랜드, 홍콩 등 국내를 넘어 세계를 배경으로 사랑받는 작가의 작품은 특유의 고요한 힘으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현대인의 발걸음을 붙잡아 멈추게 한다.

울림 전시전경_노진아

아트리움 모리 건너편에 있는 전시 공간 아트스페이스 울림은 올해 5월에 새롭게 개관한 전시장으로, 본래 제조공장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총면적 795.54㎡의 울림은 관람객이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는 예술 공간을 지향하기 위해 시설내부에 총 3개의 전시실과 도서실, 체험 공간 같은 교육장을 마련하여 관람객이 전시도 보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울림’은 아트리움 모리의 울창한 숲에서 멀리 울려 펴지는 메아리 같이 이곳에서 펼쳐질 다양한 전시 및 문화행사를 통해 관람객과 나눌 예술적 영감들을 더 멀리 울려 퍼트리고자 하는 이 기관의 목표를 담은 이름이라 한다.

노진아 작, Human-Machine Chimera, 2024

현재 울림은 개관기념 《Skin》 전시로 인공지능 로봇 작품을 선보이는 노진아 작가와 흑백의 정지된 대형 화면 속에 현대인의 치열한 삶을 담아내는 심윤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1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뉴미디어 조각가 노진아의 〈히페리온의 속도〉(2022)이다. 창백하고 딱딱한 흰색 피부를 가진 대형 머리로봇이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관람객의 질문에 “난 인간의 감정을 정말 배우고 싶어요.”라고 입을 열어 대답한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기계, 사람과 닮았지만 서늘한 촉감, 율동감 없는 기계적인 목소리, 머리 뒤로 노출되어 늘어진 전선 등을 통해 기계임이 분명하다. 이 작품은 챗GPT와 작가가 제작한 인공지능 코드를 혼합하여 관람객과 인터랙티브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로봇들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속도와 인간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상과 현실, 기계와 인간과 같은 이분법적 경계의 지점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노진아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Human-Machine Chimera〉(2024)는 남자 인간의 신체와 여성 기계의 모습을 합성한 데이터로 제작된 거대한 크기의 로봇이다. 로봇의 등 뒤로 펼쳐진 나뭇가지에는 에너지가 흐르는 듯 파도의 움직임이 비추어진다. 이것은 인간의 몸 데이터를 수치로 변환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로 마치 멈춰있는 조각상에게 인간의 에너지와 생명을 전달하는 듯하다. 인간과 기계가 혼용된 모습, 인간의 데이터를 흡수하는 느낌의 이 작품은 전시공간을 압도하는 독특한 분위기로 기계의 생명적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심윤, Wax Men, 2024, 캔버스에 아크릴, 259x450cm

2·3전시실에는 현대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압박을 흑백 대형화면에 담아내고 있는 작가 심윤의 작품들이다. 예전에 비해 인물의 얼굴 형상과 표정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낸 새로운 작품 〈Wax Men〉(2024) 시리즈들은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미간을 잔뜩 좁혀 인상을 쓰는 남성의 얼굴들을 보여준다. 개성이 드러나진 않지만 고단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관객과 눈을 맞추기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감듯이 아래를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들은 서로 늘어져 있는 인물의 구도에 따라 관람객의 시선 역시 자꾸만 아래로 유도한다.

그들이 앉아 있는 땅은 얕은 수면과 같은 형태로 인물의 손과 발이 담겨 있어 흘러내리고 잠식되는 이미지를 한층 더 깊이 전달한다. 또한 두껍고 광택이 도는 질감의 왁스 재킷이 주는 강인하고 둔탁한 옷의 재질 역시 그림의 무거운 느낌에 힘을 싣고 있다. 심윤의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현대인의 이미지는 고달프고 힘겹다. 본래 드러내기보다 감추고자 하는 일상 속 모습을 대형화면으로 확대해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동질의 위로를 전하고 있다.

아트스페이스 울림이 개관과 함께 선보이는 첫 번째 전시 《Skin》은 이처럼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 비로소 인간이 되었지만 현실과 투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두 작가의 단조로운 색채로 구성된 작품으로 껍데기 아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차가운 조각피부 아래 꿈을 가지고 성장해가는 로봇과 매끈한 피부결과 건장한 신체 아래 매일의 고단함을 이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한 이번 전시는 내면에 자리 잡은 인간존재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아트리움 모리와 아트스페이스 울림은 앞으로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은 다채로운 분야의 전시를 기획하여 전시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또 전시뿐만 아니라 문화·상업 공간인 아틀리에 샘, 레지던시 유촌창작스튜디오와 함께 다양한 방면으로 예술가를 지원하고 지역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공간에 빛이 머무르고 실력 있고 개성 넘치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소개하는 영감의 샘이길 자처하는 아트리움 모리의 행보를 기대한다.

아트리움 모리가 위치한 성주 월항면에는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한개민속마을’1과 조선 세종의 왕자들의 태를 봉안해놓은 ‘세종대왕자태실’2이 있다. 한개민속마을은 전통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土石 담장이 잘 어우러져 옛 골목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세종대왕자태실은 태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태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어 우리나라 생명문화의 상징이자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성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 번쯤 들러도 좋을 듯하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청량감이 몰려온다. 아트리움 모리 주변은 그야말로 참외하우스로 가득하다. 모리 카페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참외하우스의 윤슬이 눈부시게 일렁인다. 역사와 전통 속 이야기가 흐르고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별 고을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로 미적 영감을 가득 채우고 온 기분이다.

 

참고자료
아트리움 모리 http://www.artriummori.com/

 


1 성주 월항면에 위치한 600여년의 전통을 지닌 성산이씨의 집성촌, 2007년도 여섯 번째로 지정된 국가지정민속마을.
2 성주 월항면 태봉(胎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제4대 세종의 왕자들의 태를 봉안한 태실. 2003년 사적으로 지정됨

 


 

* 《쿨투라》 2024년 8월호(통권 12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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