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치] 역사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 영화계
[예술-정치] 역사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 영화계
  • 강성률(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 승인 2024.08.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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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스토리 프로덕션 제공

영화는 대중문화다. 영화가 대중문화라는 말은 영화가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가급적 그 시대 대중들의 집단무의식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그 시대 대중들이 욕망하는 것을 영화에 담지 않을 수 없다. 구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이상 시대의 공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시대의 공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영화 안에 시대를 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특정 시대의 대중적 욕망을 비롯해 다양한 사고들을 파악할 수 있다.

2024년 여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쟁점은 ‘역사 전쟁’이다. 속칭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이들이 국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의 입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조선은 자생적으로 자본주의를 할 수 없는 낙후된 국가인데,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고, 이런 틀 안에서 이승만이 반공으로 공산화를 막았고 박정희가 경제 발전을 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일제의 식민 지배는 억압과 착취의 역사가 아니라 기초 근대화의 역사이고, 일제에 충실했던 친일파가 해방 이후 근대화를 수행했으니 애국자가 되고(반대로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군은 테러리스트일 뿐이고), 분단 시기에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이들이 진정한 애국자가 된다. 결국 친일파였다가 반공주의자가 된 이들이 1948년에 건국된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이고 주인이라는 주장이다.

다큐스토리 프로덕션 제공
다큐스토리 프로덕션 제공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경제사학자이기에 일개 영화평론가인 내가 깊이 논할 바는 못 된다. 일부 사학자도 이 논쟁에 뛰어들어 건국절 논란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이 부분도 사학계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기에 내가 뭐라고 단언하지는 못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역사 (해석) 전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영화계라는 것이고, 영화를 통해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금, 영화계야말로 소리 없는 총성이 울려 퍼지는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장이다.

시간을 불과 몇 달 전으로 돌려보자. 2024년 2월 1일,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다큐멘터리로는 매우 드물게 1,173,754명이나 관람한 이 영화는 이승만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한다. 사견이 들어갈 것 같아 포털에서 내용을 인용한다.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 북한과 자유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적 번영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 두 나라는 같은 언어, 역사, 인종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극단적인 두 나라로 갈라졌을까? 그 커다란 차이를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건국1세대들과 이승만 대통령의 땀과 눈물, 투쟁을 조명한 작품.”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 “제작기간 3년, 진귀한 기록 필름과 국내외 20여 명의 증언자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을 완벽 복원하다.”

 

줄거리 요약을 보며 놀란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를 다큐가 조명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교과서라는, 대한민국의 공인된 기억과 기록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정과 4·19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의 헌법마저 대놓고 부정한다. 만약 헌법을 긍정한다면 건국절 논란이 나올 수 없고, 이승만에 대한 극단적인 긍정적 평가 역시 등장할 수도 없다. 이 다큐를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쇼박스 제공

〈건국전쟁〉의 열기가 거의 끝나가던 2024년 2월 22일, 또 다른 영화가 한 편 개봉해 총 1,19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통상적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는 2월 말과 3월 초는 극장가의 비성수기인데, 〈파묘〉는 이 시기에 개봉해 천만 영화 대열에 합류하는 기록을 남겼다. 아마도 삼일절이 있는 시기에 개봉했기에 흥행에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묘〉를 〈건국전쟁〉처럼 요약하면 오컬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주)쇼박스 제공
(주)쇼박스 제공

 

본 기사의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강성률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저서로 『상처의 응시』 『한국 영화에 재현된 가족 그리고 사회』 『영화 비평: 이론과 실제』 등이 있음.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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