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치] 국가의 법과 사랑의 주체
[예술-정치] 국가의 법과 사랑의 주체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4.08.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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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치(문학과 정치)’와 관련하여 나의 머릿속에는 한국 근현대사와 결부된 오래된 두 편의 희곡이 떠오른다. 유치진과 최인훈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를 변용해, 각각 「자명고」(1947년 공연)와 「둥둥 낙랑둥」(1978년 작품 발표, 1980년 공연)을 썼다. 같은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있지만, 30년 정도의 시간 차가 있는 만큼 양자의 차이점은 적지 않다. 플롯은 말할 것도 없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도 상이하다.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작용할까. 이런 물음에 대한 일차적인 답은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내면적 고투를 거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낭만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해야 한다. 작가는 독립적 주체가 아니라,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교호하는 주체다.

유치진과 최인훈의 희곡에 대해 논의하려면, 우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부터가 정치적 텍스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고구려와 낙랑의 치열한 전쟁 서사이기 때문이다. 적대국인 왕자와 공주라는 신분에서, 이들의 만남과 교류는 정치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1940년대 후반 「자명고」로 설화를 변주한 유치진은 바로 이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신탁통치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진 당시 상황에서 창작적 행위로 정치적 개입을 시도했다. 유치진은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우익―고구려의 입장에서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좌익을 처단해야 할 적―한나라에 복속한 낙랑으로 규정한다.

호동왕자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일장 연설을 한다. “한나라는 우리를 보호하여 준다는 핑계로 인심을 무마하여 마침내 이 땅을 송두리째 먹어보겠다는 수작이오. (……) 이 부귀영화도 알고 보면 우리 동족을 팔고 이 땅덩어리를 떼어 주어 공덕으로 한나라에서 받은 것이오.” 이에 대해 한나라 장수 장초와 낙랑인들(왕과 공주)은 논리적 반박을 하지 못한다. 그저 호동왕자를 옥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그의 발언 자체가 틀리지 않았음을 반증할 뿐이다. 호동의 말에 낙랑공주는 혼란에 빠지고, 그것은 나중에 낙랑의 자명고를 찢는 전회의 계기가 된다.

사실 1막에서부터 그녀는 한나라의 힘에 낙랑이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에 부정적 모습을 보인다. 장초가 한나라 군사를 동원해 낙랑을 위한 성을 쌓아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낙랑공주는 “싫소! 우리 성을 우리가 쌓겠소.”라고 대답한다. 이때부터 관객은 낙랑공주가 호동왕자의 정치적 지향점이 맞닿을 수 있겠다는 것을 예감하게 된다. 실제로 자명고를 찢고 나서, 낙랑공주는 호동왕자와 똑같은 말을 한다. “우리나라가 다 망하여도 같은 피를 받은 우리 동족끼리는 한데 뭉치어 의좋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이까?” 1948년에 남북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남북한의 대립은 격화되고 있었다. 그런 정국에서 유치진은 국가가 아니라, 동족―민족을 부각하는 대의를 내세운다.

그렇지만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극화에 나타난 그의 의식은 고구려에 의한 낙랑의 병합이었다. 그것은 북한 내부의 분열과 남한의 공세에 의한, 남한으로의 귀속을 의미하는 유치진의 정치적 알레고리다. 그에 따르는 희생을 오직 낙랑―북한이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 작가는 둔감하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의 죽음을 ‘순국’으로, “조국 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것으로 둔갑시킨다. 그가 부르짖은 동족―민족은 어느새 다시 국가로 봉합되어버렸다. 자기 이해의 필요에 따라, 네이션nation의 복잡한 함의는 다르게 전유된다.

 

 

호동왕자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일장 연설을 한다.
“한나라는 우리를 보호하여 준다는 핑계로 인심을 무마하여
마침내 이 땅을 송두리째 먹어보겠다는 수작이오. (……)
이 부귀영화도 알고 보면 우리 동족을 팔고
이 땅덩어리를 떼어 주어 공덕으로 한나라에서 받은 것이오.”
이에 대해 한나라 장수 장초와 낙랑인들(왕과 공주)은
논리적 반박을 하지 못한다.

 

 

 

 

본 기사의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 글을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저서로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가 있음.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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