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치]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취향은 취향일 뿐 인생을 걸지 말자
[예술-정치]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취향은 취향일 뿐 인생을 걸지 말자
  • 김세은
  • 승인 2024.08.28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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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 한남동 카페거리 등 ‘핫플레이스’ 거리를 혼자 거닐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다가와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하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적당한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해놓았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아미고〉를 듣고 있다가, 누군가 다가오면 재빠른 클릭으로 밴드 넬의 〈습관적 아이러니〉로 넘어가는 연습도 종종 한다.

시크하게 핸드폰 화면 속 앨범 커버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뻔한 케이팝K-POP ‘후크송’ 보단 독특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밴드 음악이다. 귀여운 오버핏 티셔츠에 힙한 헤드셋을 끼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 화룡점정으로 귓가엔 〈습관적 아이러니〉가 울려 퍼지고 있는 사람으로 전 국민에게 알려지고 싶다.

즐겨 듣는 음악을 전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시대 변화에 맞는 적절한 기술로 표출됐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브금BGM’부터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 인스타그램 스토리 스트리밍 공유 기능이 그렇다. SBS 문명 특급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 유튜브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콘텐츠가 유행한 걸 보면, 이제 음악은 본인을 소개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 듯하다.

MBC 〈무한도전〉에 밴드 혁오가 등장했을 때, 일명 ‘홍대병 말기 환자’들이 ‘나만 아는 가수’를 대중에게 뺏겼다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요즘은 TV 프로그램보다 유튜브 댓글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미국 팝스타 라우브Lauv 내한 공연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이 노래 처음에 발매되고 좋아했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내한까지 오고ㅠㅠ 진짜 나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퍼져서 너무 흐뭇함” 다음과 같은 대댓글이 잔뜩 달렸다. “님만 알고 있진 않았을 걸요;” 서로 나만 알던 가수임을 내세우는 댓글 간 기싸움은 웬만한 빌보드 팝스타나 케이팝 아이돌 영상이 아닌 이상, 이제 거의 모든 콘텐츠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최근에 한국 인디밴드 씬에 빠졌다. 가끔 좋아하는 밴드 음악을 멋들어지는 앨범 커버와 함께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다. “헐 노래 좋다ㅜ 누구야?”라고 묻는 DM다이렉트 메시지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 밴드’가 인정받았다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도 느끼지만, 나만의 독특한 취향을 알아봐 준 것에 대한 희열감이 솔직히 더 크다. 그런데 DM을 보낸 이들이 모두 내가 추천한 노래에 푹 빠져 본인 소셜 미디어에 올리진 않길 바라고 있다. 이 못된 심보에 대해 생각하다 이 글을 쓰게 됐다.

취향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더 이상 가족 구성원 역할이나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없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취향과 정체성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다. 요새 나에게도 그런 낌새가 보이고 있다.

 

본 기사의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김세은 5년차 K-직장인. 현실도피성 블로그를 운영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구경하며 느낀 솔직한 생각들을 공유.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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