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속의 詩] 정우진 시인의 「달구멍」
[새 시집 속의 詩] 정우진 시인의 「달구멍」
  • 정우진(시인)
  • 승인 2024.09.02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구멍

정우진

어둠이 썰물처럼 하늘로 빨린다
달이 서슬을 피운다
얼어붙은 하늘에 총구를 뚫고 시선을 겨눈다
지상에서 튀어 오른 성에가 하늘을 덮는다
상한 별들은 달의 뒤로 몸을 숨기고
달은 스스로 몸을 키워 죽은 별들을 품는다
제 몸에 싸늘함을 채운다 드문드문
바람이 불자 밤하늘이 펄럭인다
드러난 달의 몸이 별처럼 반짝인다
달은 밤이 밝을수록 차가웠고 그림자가 길어질 때마다
지상의 빛을 겨누며 환하게 별들을 지킨다
뒤통수가 간지럽다
파랗게 충혈된 눈과 마주친다
그믐의 눈이 깜빡인다
차가운 한 줄이 뺨을 스친다

- 정우진 시집 『지구가 멈춘 순간』 중에서

 

 


정우진 2016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가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문학 박사.

서정시학회 동인.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