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의 디카시 안테나] 임동확 시인의 「귀가」
[오민석의 디카시 안테나] 임동확 시인의 「귀가」
  • 오민석(시인, 단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9.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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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임동확

가자,
몇 번이고 덥혀 논 식탁 위의 찌개가 더 식기 전에
집에 가자, 제 아무리 빨라도 뒤처지기 마련이어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사랑의 고백이 더 늦기 전에

 

 


임 동 확

광주 출생. 1987년 시집 『매장시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 외.

 

 


장하고 아름다운 귀가

아무 생각이 없이 집을 나서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훌륭한 “귀가”를 목표로 매일 집을 나선다. 먹거리를 위해 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 협업하고, 때로 치욕의 잎사귀에 얻어맞기도 하면서 매일 집을 나서는 것은, 일과 후에 돌아올 곳이 있어서이고 그 모든 노고를 끝내고 돌아온 사람을 반겨주는 존재들이 있어서이다. 훌륭한 귀가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겁 없이 집을 나서고, 열심히 일하고, 세상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귀가 스토리coming home story의 가장 오래된 장관壯觀은 호머의 『오디세이아』이다. 불원천리 트로이 전쟁을 향하여 집을 떠났던 오디세우스의 최종 목표는 ‘집으로 잘 돌아오는 것’이었다. 집으로 잘 돌아오려면 그는 전쟁터에서 승리해야 했으며 귀갓길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를 극복해야 했다. 훌륭한 귀가를 위해서 그는 전쟁터에서 10년, 귀갓길에서 10년, 도합 20년을 목숨을 건 고통과 시련 속에서 보낸다. 남편의 생사조차 모르면서 수많은 구혼자의 유혹 속에서도 20년을 기다려준 아내 페넬로페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귀가는 성공적이었다. 늙고 병들어 진드기가 온몸을 뒤덮도록 20년이나 주인을 기다리다가 오디세우스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마지막 눈을 감은 충견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의 귀가를 더욱 감동적인 것으로 만든다.

임동확의 디카시 「귀가」의 사진은 21세기의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한밤의 도시 풍경을 보여준다. 차들은 막힘이 없이 잘 달리고 있고, 가로등은 환하지만, 전체적인 풍경은 삭막하다. 엘리엇T. S. Eliot은 황량한 도시의 밤 풍경을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에 비유했다. 그러나 저 사막처럼 건조하고 에누리 하나 없는 공간을 질주하는 차들은 “귀가” 중이어서 행복하다. 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사막을 넘어가면 “몇 번이고 덥혀 논 식탁 위의 찌개”가 있고, 그것을 나누면서 “더 늦기 전에” 서둘러 해야 할 “사랑의 고백”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문명의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들에게 말한다. “가자”, “집에 가자”. 집은 그래서 눈물겹고, 귀가는 그래서 더 장하고 아름답다.

 

 


오민석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 기념 신인상에 시 당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당선. 저서로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등, 평론집 『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 등 다수가 있음. 시작문학상, 시와경계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4년 9월호(통권 1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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