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우리의 문화보국 정신이 깃들다: 대구간송미술관
[미술관 탐방] 우리의 문화보국 정신이 깃들다: 대구간송미술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10.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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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5 ⓒ 2024 김용관

국채보상운동과 한국근현대미술의 발상지인 대구에 새롭게 출발하는 미술관이 최근 개관하였다. 서울간송미술관1 최초의 지역분관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국보와 보물, 문화유산 등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인 대구간송미술관이다.

대구 수성구 삼덕동 대구미술관 바로 옆에 들어선 대구간송미술관은 일제 강점기 우리 문화재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신하고, 보화각葆華閣(서울간송미술관)을 설립해 문화재를 모으는 등 우리민족의 얼과 혼을 지켜낸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 선생의 ‘문화보국文化保國’2 정신을 새롭게 이어나갈 대구 제2시립미술관이다.

대구시와 유치협약MOU을 체결한 이후 8년 만에 설립된 대구간송미술관은 연 면적 8,003㎡ 규모의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구성된 건물로, 지하 1층과 1층에 6개의 주전시실이 있다.

대구시는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가 및 지역적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건축물을 구현하기 위해 국제설계공모를 실시하여, 연세대학교 최문규 교수와 (주)가아건축사사무소가 응모한 작품을 최종 선정하였다.

대구간송미술관 외부 전경(1) ⓒ 2024 김용관

건축가 최문규는 미술관이 위치한 대구대공원의 지형에 맞추어 경사지면을 활용한 한국전통 건축요소인 계단식 기단을 접목하여 자연과 소통하는 유연한 공간으로 설계하였다. 자연스러운 동선을 위해 미술관의 안과 밖을 지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였고, 무엇보다 간송의 굳건한 정신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신념을 미술관 입구 아름드리나무 기둥과 곳곳에 위치한 소나무를 통해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구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미술관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이 되었다.

건축가의 말대로, 대구간송미술관 2층 입구로 들어서면 지붕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11개의 아름드리 대들보가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서 있고, 발아래는 멀리 시지마을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대덕산 자락 대구미술관과 윗집 아랫집마냥 이웃해 있어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어 관람객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유익하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개관 이튿날 첫 관람시간대였는데, 아침 일찍부터 많은 관람객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대구시민이고 우리 문화재와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열정적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층 안내데스크에서 티켓 발권 후 1층 주전시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중앙홀과 아트 숍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간송의 방’과 ‘보이는 수리복원실’이, 우측에는 1·2·3전시실이 있다. 주전시실 대기 줄이 너무 길어 간송의 방과 수리복원실을 먼저 보았다. 간송의 방은 그의 업적을 보여주는 유작 26건 60점과 사진 및 영상을 아카이브로 만날 수 있다. 당대 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했던 ‘이현서옥梨峴書屋’, 서재인 ‘옥정연재玉井硏齋’, 간송이 설립한 국내최초 사립미술관 ‘보화각葆華閣’ 등 총 3개 구역의 실내공간을 구성하여 간송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보이는 수리복원실은 손상된 지류와 회화 작품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수리복원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특히 관람객에게 수리복원 과정을 공개하고 내부의 기술자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곳이다.

 

현재 주전시실에는 개관기념으로 《여세동보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삼아》 국보·보물전과 현대미술 프로젝트인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이 진행 중이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신윤복의 미인도는 간송 유물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고, 그 외에 국보와 보물급 지정문화유산 40건 97점이 5개 전시실에 나누어 전시되어 있다.

전시 제목인 ‘여세동보’는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 선생이 보화각 설립을 축하하며 지은 정초명定礎銘에서 빌려온 것으로 간송이 문화보국정신으로 수집한 문화유산들을 세상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개관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소개하기보다는 작품 하나하나가 보배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고, 이를 위해 전시실별로 차별화된 공간을 구성하였다. 이는 간송미술관이 개최한 역대 전시 중 최대 규모의 국보와 보물이 출품되는 전시이다.

 

우선 1전시실에는 간송이 비교적 초창기에 수집한 조선후기 회화와 조선 문예를 대변하는 전적典籍 등이 전시되어있다.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3로 그린 이정李霆(1554-1626)의 대나무 그림을 비롯해 당대 문인들의 산수 및 화조 그림과 시문으로 구성된 이징李澄(1581-1653)의 시서화첩인 『산수화조도첩山水花鳥圖帖』의 작품도 보인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鄭歚(1676-1759)이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를 21폭에 그린 화첩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과 서울 근교와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린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의 여러 작품, 끝없는 고난의 길을 인생의 험난함에 비유한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촉잔도권蜀棧圖卷, 1768〉 등의 귀한 산수화를 볼 수 있다.

김득신 《긍재전신첩》 야묘도추 ⓒ간송미술문화재단

또한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고사인물도故事4人物圖』 중에서 한 선비가 나무 위의 꾀꼬리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림으로 형상한 작품 〈마상청앵馬上聽鶯,1796〉, 신윤복申潤福(1758-1814)의 풍속화를 엮은 연작 화첩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 중에서 〈단오풍정端午風情〉과 〈월하정인月下情人〉,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풍속화첩 『긍재전신첩兢齋傳神帖』중에서 〈야묘도추野猫盜雛〉와 〈야장단련冶匠鍛鍊〉 등 조선의 3대 풍속화가 대표작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김홍도 마상청앵 ⓒ간송미술문화재단

반면, 세종이 편찬을 지시한 『동국정운東國正韻』과 1412년에 조선 태종의 명으로 중국 송나라의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교편校編을 계미자癸未字로 인쇄한 책인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東萊先生校正北史詳節』, 거문고 연주를 위한 악보 『금보琴譜』 등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대변하는 세 권의 책도 함께 전시되어있다. 출품작들은 조선시대 문화와 예술전반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자 국가적 유산이다.

 

2전시실에는 신윤복의 〈미인도〉(18세기 말-19세기 초)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윤복의 〈미인도〉는 넓은 이마, 가는 눈썹, 고운 코, 앵두 같은 작은 입술, 예쁜 귀 뒤로 늘어진 섬세한 귀밑머리 등 조선시대 유순한 미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화이다. 이 전시실은 오직 〈미인도〉만을 위해 조성된 별도의 공간으로, 소수의 관람객이 독대하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별히 연출된 조명과 음악은 작품을 감상하는 내밀한 분위기를 제공하며, 부가적인 설명과 안내 대신 작품 속 제화시題畵詩5와 인장만을 감상과 이해의 소재로 제시한다. 누구나 잘 알고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자신의 특별한 감상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기획이라 한다.

신윤복 미인도 ⓒ간송미술문화재단

 

3전시실에는 한글의 창제원리와 사용법을 해설해 놓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전시되어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어 간송이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인 천원에 나온 것을 만천 원에 인수하였다. 1962년 국보 70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훈민정음』 진본이 공개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간송미술관 외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전시되었던 것이 전부라고 한다. 또한 이 공간은 기획전시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으로 해례본을 낭송한 소리와 한글에 얽힌 이야기를 모아 현대미술작가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미디어 작품도 같이 감상할 수 있다.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3 ⓒ 2024 김용관

 

지하1층에는 4·5전시실과 야외 정원 수水공간이 있다. 4전시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걸친 불교미술과 도자기, 그리고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조선후기 묵란화 16점과 글씨 6점을 모아 놓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서화첩 『난맹첩蘭盟帖』의 묵란화 4점과 추사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서예작품들에 눈길이 간다. 서예 전시를 지나면 간송의 컬렉션을 대표하고 고려청자 매병 중 으뜸이라 평가받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양각으로 입체감을 살리고 다채로운 채색으로 장식성을 높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을 볼 수 있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병류 외에도 〈청자기린유개향로〉, 〈청자오리형연적〉,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백자사옹원인〉 등 다양한 쓰임새을 위해 섬세하게 제작된 각기 다른 형태의 도자들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김정희 《난맹첩》

 

5전시실에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실감영상공간이다. 약 38m의 반원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영상 〈흐름The Flow〉은 원작의 아름다움은 물론 큰 스케일의 화면이 주는 현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하며, 산봉우리를 표방한 자리가 설치작품마냥 이 공간과 잘 어울린다.

 

지하 1층 외부에는 우리의 전통정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수공간이 있다. 통창 너머 낮게 깔린 물과 그 물에 비친 맑은 하늘, 오래 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나무와 최근에 심은 소나무들이 둑 능선을 따라 조화롭게 서 있다. 그 외에도 미술관 내부 곳곳에는 자연의 모습이 담긴 창들이 심심치 않게 나 있어 창밖 풍경도 덤으로 볼 수 있다.

 

맑은 계곡의 고고한 소나무를 의미하는 ‘간송澗松’처럼, 미술관 심벌마크symbol mark에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 착안한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시련을 이겨내는 올곧은 의지와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문화보국 신념으로 일생을 바친 간송의 정신은 미술관 주변에 심어진 소나무로 대변하는 듯하다. 간송 선생이 어렵고 힘들게 수집한 우리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고, 새롭게 조명하여 지역과 세대의 경계를 넘어 미래세대와 함께 풀어가는 대구간송미술관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대구간송미술관 www.kansong.org/daegu

 

 


1 간송이 모아둔 컬렉션을 보관과 연구를 위해 1938년에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성북동) 에 위치.
2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
3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가루
4 동아시아에 전하는 역사, 소설, 설화, 경서 속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양한 일화.
5 동양화에서 그림을 보고 그것에 연상하여 지은 시

 

 


 

* 《쿨투라》 2024년 10월호(통권 1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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