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월평] 드라마에게 이혼 잘하는 법을 배우다: 〈굿파트너〉
[드라마월평] 드라마에게 이혼 잘하는 법을 배우다: 〈굿파트너〉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10.10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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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 게 아니다. 드라마에도 있다. 드라마에는 더 많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몇 배의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드라마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보다 더 좋은 인생 교재는 세상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드라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드라마에서 사랑을 배우고 연애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그리고 최근에는 ‘법’까지 배울 수 있다. 그것도 이혼 소송 관련 법.

 

이혼 전문 변호사

모든 드라마가 전문직 드라마가 되었다. 법정물이라도 그냥 변호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 〈굿파트너〉는 17년차 이혼 전문 변호사인 차은경과 신입 변호사 한유리가 주인공인 법정 오피스물이다. ‘이혼 전문’. 소재뿐 아니라 세부 내용까지 굉장히 전문적인 에피소드를 다룬다. 현직 이혼전문 변호사 최유나 변호사가 대본을 직접 집필했다. 리얼리티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현직 변호사가 엄선한 다양한 유형의 이혼 사건. 이름하여, 이혼의 모든 것이다.

최유나 변호사, 아니 최유나 작가는 2020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드라마가 주목을 받으면서 당시에 했던 말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이혼 사건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저한테만 비밀 얘기를 해주시는 게 특권처럼 느껴지고, 제가 공부한 것들로 더 빨리 이혼을 잘 시켜드려서 (인생이) 나아지게끔 해드린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최유나 작가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느낀 그 재미와 즐거움이 드라마 대본에 고스란히 잘 드러난다.

최유나 작가는 수천 번의 소송 경험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쏙쏙 뽑아 드라마에서 쓱쓱 잘 풀어냈다. 회사 동료와 불륜을 저지른 한 남자의 이야기다. ‘ㅅㅅ, ㅋㄷ, ㅇㄹ’ 상대방과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를 두고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ㅅㅅ’ 한글 초성에 서툰 사람일지라도 이걸 보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19금의 그 단어. 누가 봐도 그 단어를 연상시키는 두 개의 초성을 두고 불륜남은 뻔뻔하게 항변한다. ‘석식, 카드, 음료’라고. 허허,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ㄱ ㅅ ㄲ를 봤나요.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만 혼자서 초성게임을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드라마다. 역시 재미는 현장의 디테일에서 나온다.

 

세상의 모든 불륜

드라마에서 불륜으로 이혼 갈등을 다루는 소송들이 다수 등장한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불륜 이야기가 있구나, 새삼 놀라면서 보게 된다. 드라마평론가로서 살짝 TMI를 흘리자면,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와 함께 보면 불륜에 대한 이해도가 곱절로 높아진다. 타의적 불륜 전문가가 될 수 있는데, 전문가의 길을 걸을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미 본 사람은 지금처럼 조용히 불륜 전문가의 삶을 살면 된다.

Long Time No Sex. 〈LTNS〉는 한국 드라마에선 처음으로 섹스와 섹스리스 부부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화제의 드라마다. 섹스리스 부부가 나온다고 해서 청소년관람가의 풋풋한 드라마일까 걱정했다면 그건 크나큰 오해다. ‘제발 혼자 시청하셨으면 좋겠어요.’ 빨간색 제목의 《쿨투라》 4월호 드라마 월평과 드라마 〈LTNS〉를 꼭 챙겨보길 바란다. 불륜 커플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베드신 디자인을 공들여서 했다고 한다.

극중 고달픈 현실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진 섹스리스 부부 우진과 사무엘은 섹슈얼리티의 결핍을 집 밖에서 보충하겠다는 흥미진진한 결단을 내린다. 불륜 커플들의 뒤를 쫓으며 협박으로 돈을 얻어내는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의 주인공이 되기로 한 것인데, 배우 안재홍과 이솜의 은퇴설이 돌 정도로 두 배우가 몰입감 높은 연기를 선보인다. 기억하시라. ‘제발 혼자 시청하셨으면 좋겠어요.’ (보이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빨간색 제목의 《쿨투라》 4월호다.

〈굿파트너〉는 〈LTNS〉와 비슷한 듯 다르다. 〈굿파트너〉는 혼자 시청하는 것보다 함께 시청하는 것이 더 좋다. 배우자가 있다면 배우자와, 연인이 있다면 연인과 함께 시청하길 권장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극중 17년차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은 자신의 10년차 비서와 외도한 남편과 살벌한 이혼 소송을 벌이게 된다. 차은경,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감조차 당찬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차은경 그녀는 1,600억 원짜리 이혼 소송에서 승리한 최강 승률의 이혼 전문 변호사다. 불륜의 죗값을 톡톡히 받아낼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 자, 느낌 오는가. ‘서로 사랑하라’는 따뜻한 덕담이 아니라 뜨거운 경고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지옥이 눈 앞에 펼쳐질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경고장. 그래서 ‘굿파트너’라는 드라마 제목은 알고 보면 따뜻한 게 아니라 뜨겁다.

2024년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 차은경에게 쌍팔년도의 눈물겨운 신파는 없다. 남편이 바람피웠다고 해서 울고불고 매달리며 스스로를 탓하는 비련의 여주인공도 없다. 파렴치한 행각을 벌인 남편에게 당당하게 선전포고를하는 자존감 높은 (여자)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굿파트너〉는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불륜 미화가 아니라 불륜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는 지극히 계몽적인 드라마다.

 

이혼을 배우다

몸에 좋은 약이 모두 쓴 것은 아니다. 드라마 방영 초반, 그렇고 그런 법정물인 줄 알고 기대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게 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특히 차은경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통쾌한 복수극의 서막이 오르면서 드라마 화제성 지수가 확 올라갔다. 이혼 소송에 대한 법적 지식이 대방출 되면서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쾌감까지 선사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차은경의 화끈한 행보에 견줄만큼 흥미로운 것이 바로 차은경 역을 연기하는 배우 장나라의 필모그래피다. 최근 몇 년 동안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둔 아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황후의 품격〉, 〈VIP〉, 〈나의 해피엔드〉…. 작품별로 불륜을 대처하는 장나라의 태도를 분석해놓은 재미난 글이 온라인에 있을 정도로 ‘불륜생존자’ 역할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확실히 하자. 불륜피해자가 아니라 불륜생존자다. 장나라 필모깨기를 하다 보면 불륜 유형별 대처법을 저절로 습득하게 된다. 알고 싶지 않은 삶의 노하우를 너무나 많이 알게 된다.

“이제 당신 나한테 아내도 여자도 재희 엄마도 아니야.”

극중 남편의 통보에도 결심을 하지 못하던 〈굿파트너〉의 차은경은 실제 두 사람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고 드디어 이혼을 결심한다. 원만한 합의로 끝내자는 남편 김지상에게 보내는 차은경의 출사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혼쇼를 보여주자.” 드라마 초반, 고구마 구간이 이어지다가 드디어 차은경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길을 비켜라, 차은경 나가신다.

바람난 남편 김지상과 내연녀 최사라를 위한 최악의 이혼쇼는 제일 먼저 불륜의 상투성을 인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차은경은 바람난 남편과 내연녀에게 소장을 보낸다. 그런데 두 사람의 반응이 똑같다. 똑같이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그 대사 나올 줄 알았다. 내연녀들은 꼭 그걸 묻더라.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봐.”

“변호사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두 분 이미 남 같은 사이였지 않나요. 아니 남보다도 못한….”

“학원 다니니? 어디서 그렇게 똑같은 대사들을 배워 와?”

비수가 되어 마음을 푹푹 찔러대는 상처의 말들. 하지만 17년차 이혼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온 차은경 그녀는 누구보다 이 패턴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응수한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남편의 불륜과 내연녀의 도발에 대처해가는 차은경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금 〈굿파트너〉 시청에 대한 열의가 불타오른다. 〈굿파트너〉는 이혼에 얽혀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전문적인 법률 정보를 담아내며 전국민의 교양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한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드라마 1위가 〈굿파트너〉다. 주말 저녁 막장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미녀와 순정남〉이 2위를 기록한 걸 보면 고난과 시련에 대한 사전 학습, 그 배움을 향한 한국인의 뜨거운 열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교육열 최고의 민족답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중.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문화평론집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외 다수가 있음.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 수상.

 

* 《쿨투라》 2024년 10월호(통권 1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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