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국의 시조미학: 임성구 번역시조집, 『성구成九의 시절인연時節因緣』
[북리뷰]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국의 시조미학: 임성구 번역시조집, 『성구成九의 시절인연時節因緣』
  • 이수민 리포터
  • 승인 2024.10.10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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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형시조를 창작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임성구 시인의 영문 번역 시조선집 『성구成九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서출판 작가의 K-poem Sijo Collections으로 출간되었다.

저자 임성구 시조시인은 1967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94년 《현대시조》로 등단하였다. 시조집 『오랜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 『살구나무죽비』, 『앵통하다봄』, 『혈색이 돌아왔다』, 『복사꽃 먹는 오후』, 『고함쳐서 당신으로 태어나리』 와 현대시조 100인선집 『형아』가 있다.

가람시조문학상, 오늘의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경남시조문학상, 올해의시조집상, 창원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펴낸 번역 임성구의 시조선집 『성구의 시절인연』은 1부 목마른 그리움이 피어나는 꽃밭에서 천년을…A Thousand Years in a Flower Garden Where Poignant Longings Bloom, 2부 뜨겁게 노래하거나 슬픔에 흠뻑 젖은 나날Days of Singing Passionately or Feeling Sad 3부 단풍이 물드는 자리에 바람과 별이 지나가고Where Foliage Turns Golden, Brown, and Red, Winds and Stars Pass By, 4부 얼음의 날을 견디며 간절히 올리는 청동 시문Hoping My Poems Will Shine Long like a Bronze Mirror by Enduring Tough Days 등 4부로 구성하여 총 77편의 가편을 국영문으로 수록하였다.

 

“한 생은 비록 미약했지만 절절한 희망으로 건너왔고,/또 창대한 미래를 위해 간절함으로 건너가는 중”이라는 저자 임성구 시인은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이 말을 심장 깊이 뿌리내리면서, 오늘을 가장 멋있게 살아가는 중이라고 고백한다.

 

‘임성구林成九’라는 이름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피와 땀과 눈물로 어루만지며
푸른 숲과 우주에서 큰 숫자로 긴장하고 은유하며,
맑고 빛나게 이루[]라고 내려주신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다.

 

그리하여 나의 지금은,
한국의 정형시 시조를 무척 사랑하고 아끼면서
슬픔도 뜨겁게 쓰는 이런 호사好事를 누린다.

- 「시인의 말」 중에서

 

하버드 교수를 역임한 데이빗 맥캔 교수는 임성구의 시조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시조 작품”으로 평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작품 「시를 업은 항아리」에 표현된 낱말들을 보면 “고려시대(918년-1392년)의 도자기에 시 한 편이 새겨져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며, “이 작품 은 일종의 K-pop의 전신 같아서 우리는 그냥 그것을 K-pot으로 불러야겠다”고 언급한다.


네 몸에 새겨놓은
달빛 문장 은은하다

천길 불구덩이도
견뎌낸 애절한 사랑

온 우주 어르고 달랜 귀얄문
둥개둥개 업어 키운다

The words inscribed on the body
look subtle in the moonlight.

The pot survived in the hot kiln
with ardent love for the poem.

The brush marks, soothing the universe,
help the love grow on the pot.

- 「시詩를 업은 항아리A Ceramic Pot with a Poem on It」 전문

 

이 시조는 견고한 항아리의 팔과 어깨를 타고 흐르는 우아한 균형미가 마치, 환한 달빛의 은은한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수백 년 된 도자기 한 점이 시 한 작품 때문에 발탁이 되어 꼼짝없이 불구덩이 가마 속으로 옮겨져 그 열기를 견뎌 낸 것이다.

이 시조집에는 위의 작품 외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시조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눈밝은 독자들이 감상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단풍 든 네 가을의 오른쪽은 무척 환하다

벌레 먹은 나의 왼쪽은 어둠이 매우 깊다

무작정 흔들고 가는 이 스산한 편두통

With the glow of autumn leaves, the right side is very bright.

But alas, eaten by bugs, my left side is very dark.

Suffering from severe migraine I feel shaken to the core.

- 「불균형의 가을Unbalanced Autumn」 전문

 

시인은 “단풍 든 네 가을”을 바라보며 무척 환한 나의 오른쪽과 벌레 먹은 왼쪽을 함께 대비시킨다. 가을 단풍이 “무작정 흔들고 가는 이 스산한 편두통”이라니! 가을 단풍이 흔들어대는 이 편두통을 당신도 느낀다면 그대 또한 이미 시인이 아닐는지. 임성구의 시조의 행간을 거니는 빛과 어둠의 그림자가 무척 깊고도 서늘하다.

이처럼 빛과 어둠과 각 작품의 이미지, 제스처, 특별한 순간들을 생각하며 임성구의 번역시집을 한 편 한 편 거듭해서 읽고 음미하다보면, 친구, 가족, 인근 장소에 대한 특별한 추억들과 자연에 대한 여러 이미지들이 아주 또렷하게 아로새겨진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임성구 시인의 깊은 서정이 길어올린 아름다운 시조를 읽으며, K-시조의 가편들이 활짝 개화하고 만끽하는 모습을 함께 즐겨보길 바란다.

 

 


 

* 《쿨투라》 2024년 10월호(통권 1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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