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현재를 비추는 희망의 이야기 - 한강과 함께 하는 노벨 낭독회
[노벨문학상] 현재를 비추는 희망의 이야기 - 한강과 함께 하는 노벨 낭독회
  • 김아미(주스웨덴한국문화원 한국문학사업팀장)
  • 승인 2025.01.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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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bel Prize Outreach. Photo Clément Morin

노벨 주간의 마지막 공식 행사인 ‘한강과 함께 하는 노벨 낭독회’가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의 공연장인 드라마텐에서 12월12일에 열렸다. 드라마텐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마티아스 안델손Mattias Andersson은 드라마텐의 위상을 소개하며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공연됐던 무대임을 상기시켰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스웨덴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작품이기도 하며, 한국의 문학 작품이 스웨덴어로 공연된 최초의 연극이라 현지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반인들이 신청할 수 있는 노벨 행사들은 모두 고민할 여유도 없이 신청이 마감되었다. 낭독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3층까지 꽉 들어찬 관객들이 숨죽여 그녀의 여린 목소리에 집중했다.

스웨덴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크리스토퍼 레안도에르Kristoffer Leandoer와 번역가이자 언론인인 유키코 듀케Yukiko Duke가 한강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의 해석을 들려주었다. 유키코 듀케는 스웨덴 현지에서 아시안 문학을 전문적으로 다뤄왔고, 크리스토퍼 레안도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자주 써왔다. 그래서인지 현재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소년이 온다』에 대한 해석은 사뭇 깊이 있게 들렸다.

『소년이 온다』의 스웨덴어 번역 제목은 원제와 많이 다른데, 『Levande och Döda』로, 한국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이다. 이 제목이 ‘삶’과 ‘죽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인 이유는 그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죽은 자들을 닦고, 천으로 덮고 관에 넣는 모습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나뉘고, 죽음 이면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면서, 남은 부모에게 죽음과 삶의 차이가 무엇이겠냐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 무대에 등장한 한강 작가에게 계엄령을 언급하며 현재의 한국의 상황에 대해 묻는 유키코 듀케의 첫 질문은 다소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강 작가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관중들에게 소개를 건넸고, 그 질문에 대해 한국에서 온 지 며칠이 지나 정확한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과거에 비해 끔찍하지 않다고 답했다. 군인들과 장갑차를 막아서는 시민들의 용기가 있기에 지금 이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했다. 1980년의 광주는 언론이 통제를 당해 고립되어 비극이 벌어졌지만, 지금은 상황을 공유할 수 있어 나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가녀렸고 느릿했지만 힘이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한인들에게 한강 작가의 대답은 마치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는 엄마의 목소리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강의 책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광주로 가는 진입로 역할을 자신의 책이 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책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했다는건 조금 과장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작품의 논평에 이어 연극 배우인 안드레아스 로슬린 스벤손Andreas Rothlin Svensson과 카린프란스 셜로프Karin Franz Körlof의 『채식주의자』 낭독이 있었다. 노벨 주간 동안 여러 낭독회가 있었는데, 어느 부분을 읽는지가 각 프로그램 기획자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채식주의자』는 소설의 첫 부분인 남편의 시선에서 아내를 설명하는 부분이 낭독되었다. 『소년이 온다』는 몸이 서로 겹치고 쌓여 트럭에 실려가는 모습이 묘사된 부분이, 『작별하지 않는다』는 인선이 잘린 손가락의 접합 수술 후 회복을 위해 바늘로 손가락을 계속 찔러 피를 내는 부분이 소개되었다.

행사가 이어지는 중에 스웨덴 피아니스트인 롤란드 푄티넨Roland Pöntinen의 피아노 연주(J. Brahms Intermezzo h-moll op.119 nr 1)와 함께 한강이 직접 했던 소설 『흰』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의 사진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가제 손수건을 겹쳐 자르고, 실로 꿰매어 죽은 언니를 위해 옷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실을 손에 잡고 목탄을 발로 밟으며 흔적을 남기는 퍼포먼스를 했던 경험도 소개했다. 행위예술가로서의 한강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어로 작품을 소개했던 한강의 노벨상 강연과는 달리 이 행사에서는 작품 해설에 스웨덴어와 영어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희랍어 시간』에서 강사가 음성에서 언어로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주인공이 소리내어 말하기를 주저하는 장면을 한강의 한국어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부분을 연극 〈채식주의자〉의 여주인공을 연기한 카린이 스웨덴어로 들려주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눈을 감고 한강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집중했다. 분명 알아 듣지 못할 테지만, 한국어가 주는 느낌과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여리지만 꾹꾹 눌러 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느라 드라마텐은 긴장감 마저 감돌았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 이전에 한국문화원에서 스톡홀름 도서관의 독서클럽을 초대해 『채식주의자』를 읽고 소감을 토론하는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한림원에서 평가했듯 한강의 문장은 ‘시적’이다. 그녀의 글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일상의 언어보다 상당히 농축된 단어들이고 문장으로도 구성되었을 때 그 아름다움이 더 살아난다. 그래서 글을 읽은 이들에게 한강의 문장이 아름다운걸 스웨덴어로 읽었을 때도 느낄 수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라고 대답을 해서 놀라운 마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한강’이라는 작가는 한국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용감한 작가 정도였다.

 

본 기사의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김아미 주스웨덴한국문화원 한국문학사업 팀장.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경영학, 서울대 MBA 졸업.
기업은행, JnJ medical Korea, Omniglot AB(Sweden) 한국어교사 근무.

 

* 《쿨투라》 2025년 1월호(통권 12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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