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월평] 희망의 그림자와 마주하기 - 남궁선, 〈힘을 낼 시간〉
[영화월평] 희망의 그림자와 마주하기 - 남궁선, 〈힘을 낼 시간〉
  • 이우빈(영화평론가)
  • 승인 2025.01.03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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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이제 시작해 보자”

 

남궁선 감독의 전작 〈십개월의 미래〉의 마지막 대사는 주인공 미래(최성은 분)가 갓 낳은 아이에게 읊조리는 미래지향적 선언이었다. 아이의 태명을 ‘카오스’라 지을 만큼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혼란했던 10개월의 끝, 영화는 다분히 희망에 깃든 소망을 스크린 너머로 넌지시 건넨 것이다. 제목부터 힘차기 그지없는 남궁선 감독의 신작 〈힘을 낼 시간〉 역시 그 외면은 치유의 시간으로 가득 찬 세 청춘의 이야기로 보인다. 실패로 끝난 아이돌 그룹 생활을 마친 수민(최성은 분), 태희(현우석 분), 사랑(하서윤 분)이 훌쩍 제주로 떠나 며칠 간의 여행을 만끽한다는 서사의 골자만 보더라도 청춘의 상흔을 잠깐의 일탈로 회복한다는 식의 내용이 상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힘을 낼 시간〉의 원천은 〈십개월의 미래〉와의 완연한 대척에서 마련된 희망의 그림자에 가깝다. 앞으로 찾아올 무수한 미래가 아닌 십수 년의 과거를 파먹는 일에 아등바등하는 세 인물의 실시간적 발버둥이 영화를 지탱한다. 출산이라는 사건이 도래할 미래라면 여행이라는 사태는 결국 끝나버릴 수밖에 없는 과거의 생성이다. 다만 그림자라 할지라도 희망은 희망이다. 어쩌면 살아가며 결코 손에 듬뿍 거머쥘 수 없을 희망이란 총체. 그것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삶을 최대한 긍정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힘을 낼 시간〉은 말하는 듯하다.

 

여행에서 방랑으로

〈힘을 낼 시간〉은 통상적인 로드 무비의 형태를 띤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제 막 제주공항에 도착한 세 주인공의 뒤를 활발한 카메라가 뒤따르고 제주의 산뜻한 풍광에 압도된 청춘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버스 정류장을 찾는다. 그러나 이 쾌활한 화면에 얹히는 수민의 내레이션은 마치 로드 무비의 희망이란 클리셰에 반발하는 듯이 뼈아플 정도다.

 

“조마조마하다. 우리가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그 세상에 섞여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청소년기부터 아이돌 생활을 준비하느라 청춘을 소진해 버린 수민의 불안한 목소리와 모임 별이 만든 전자음 기반의 기이한 배경음이 관객의 청각을 뒤덮는다. 이를테면 〈힘을 낼 시간〉은 시각과 청각의 부조화로 만든 희망과 절망의 뒤틀리고 혼합된 양태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의 여행은 시작부터 좋지 않은 징조를 드러낸다. 아이돌 생활로 인해 정신 질환을 앓게 된 사랑이 버스에 짐을 두고 내리질 않나 식당에서는 다른 손님들을 공격하며 여행비를 합의금으로 몽땅 써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이들은 힘을 낼 수 있을까. 영화는 묻는다. 묻는 한편 답변한다. 여행비를 잃은 셋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귤 농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캠핑카에서 불편한 잠을 청한다. 청춘들의 치유 여행이 돌연 이전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방황의 형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때로 방황은 여행보다 많은 것을 흩뿌린다. 정해진 목적지가 사라지고 편히 잠들 보금자리가 사라진 순간 우리는 진정 삶을 반추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이 세 청춘이 돌아본 과거는 잔혹하기에 그지없다. 또래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혹독한 훈련에 매진했고, 소속사의 압박으로 인해 점차 짧은 하의를 입을 수밖에 없었으며, 너무 일찍 들어선 어른의 세계에서 속아버린 탓에 수천만 원의 빚을 진 것에 모자라 같은 그룹의 멤버는 일찍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했다.

〈힘을 낼 시간〉의 제주 여행은 이들이 겪은 그 아픔을 무엇 하나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수민은 여행 중에도 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태희의 빚은 탕감되지 않는다. 사랑의 정신 질환은 영화를 보는 내내 친구들과 관객의 초조함을 안기기만 한다. 유일하다시피 이들이 맘 편히 웃고 떠들 때는 모순적이게도 과거 본인들이 불렀던 노래를 함께 부르고 그에 맞춰 춤을 출 때다. 그저 한시적으로 발광하고 사라지는, 무대에 올랐다가 내려가야 하는 작금 아이돌 가수의 삶처럼 〈힘을 낼 시간〉의 마지막은 여전히 제주공항의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세 청년의 귀갓길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흩어짐, 흩어질 것들

그렇다면 〈힘을 낼 시간〉의 시간을 통해 인물들이 마주한 희망의 실낱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은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전술했듯 이들이 현재를 만끽하며 웃고 노래하고 춤출 때 많은 요소는 분리되어있다. 예컨대 낮의 운동장에서 인물들이 군무에 맞춰 춤출 때 드넓은 운동장의 객석엔 아무도 없다. 즉 퍼포머와 관객의 분리, 피사체를 강하게 때리는 햇볕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온전치 못한 무대에서 이뤄진 공연. 총체가 될 수 없는 무대, 이들이 늘 바랐던 희망의 형태가 무너진 상황. 희망의 이미지와 불안의 사운드가 섞였던 영화의 시작과 다를 바 없이 모종의 괴리감이 영화를 감싸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수민과 태희가 본인들의 팬임을 자처한 제주 소녀 소윤(강채윤 분)과 두런두런 모닥불에 둘러앉아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고 춤출 때도 분리의 감각은 명확하다. 여행의 동반자인 사랑은 홀로 캠핑카에 남아 광란의 춤을 추거나 정신과 약을 먹고 잠에 들려 애쓰는 것이다. 이 물리적인 분리의 실태는 기실 여행의 사전 단계에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원래 친한 친구 일곱 명이 함께 오기로 한 이 제주 여행은 연인들의 이별과 앞서 말한 다른 멤버의 죽음으로 인해 세 명의 여행으로 축소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우리는 〈힘을 낼 시간〉의 세 주인공이 마주할 운명을 예견할 수밖에 없다. 이후 같은 그룹이 아닌 분리된 개체로서 각자의 삶을 살 이들은 서로의 상태를 따스하게 살필 새도 없이 일상을 버텨낼 것이다. 여행 이전의 삶이 그래 왔고, 이 여행마저 그랬고, 이 여행이 그 사실을 가르쳤다. 아니 다시, 여행과 일상이란 물리적 시공간의 분리마저 하나의 큰 방황일 뿐이라는 괴리를 일깨웠다. 여기서 관객이 역으로, 〈십개월의 미래〉와 반대로, 스크린 너머의 청춘들에게 건넬 말은 어쩌면 무책임의 발로일 수도 있는 한마디, “힘내”라는 말뿐일 것이다.

영화가 그렇다. 현실을 분리해 잠깐의 일탈을 허락하는 영화를 본 뒤 이어지는 우리의 삶도 딱히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힘내”라는 말 한마디에 서린 이 사실을 직시하는 일만으로도 제주 여행과 〈힘을 낼 시간〉의 역할은 충분하다. 억지스러운 희망을 종용하지 말고 천연한 현재의 시간에 힘을 쏟으라는 전언. 마냥 흩어지고 온전치 못하더라도 살 수 있다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 솔직한 태도가 〈힘을 낼 시간〉을 어여삐 보게 만든다.

 

 


이우빈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2023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부문 당선. 이곳저곳에서 영화를 보며 쓰고 말한다.

 

 

사진제공 (주)엣나인필름

 

* 《쿨투라》 2025년 1월호(통권 12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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