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월평] 기어코 해피엔딩을 이루어낸 사람들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드라마월평] 기어코 해피엔딩을 이루어낸 사람들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5.01.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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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 드라마 월평에서 처음 소개할 드라마는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다. 제목과는 다르게 끝내 시청자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훈훈하게 끝난 웰메이드 드라마.

방송 전에는 ‘배우 한석규의 29년 만 친정(MBC) 복귀작’이란 사실로 화제를 모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는 한석규 혼자만의 원맨쇼가 아님이 확실히 증명되었다. 대본과 연출, 그리고 출연 배우들의 연기 하나도 빠짐없이 완성도가 높았다. 무엇보다 훌륭한 대본과 훌륭한 연출, 그리고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작가와 감독, 배우가 모두 신인이어서 더욱더 화제였다. 신인 작가 한아영, 신인 감독 송연화, 신인 배우 채원빈.

신인‘들’이라서 드라마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들. 스스로 길이 된 사람들. 새로운 길을 개척해낸 그들의 이름으로 2025년 새해를 위풍당당하게 맞이하고 싶다.

 

‘절망’의 목을 쳐라

드라마는 작가와 감독, 그리고 배우의 종합 예술이다. 그럼에도 ‘삼위일체’에서 꼭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작가’다. 대본은 드라마의 기본 뼈대이고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다. 튼튼한 골조 없이 세울 수 있는 건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범죄 스릴러’는 고도의 빌드업이 필요하기에 ‘견고한 스토리’가 절대적이다.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보고 원작소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시청자들이 많았다.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가 촘촘하게 수놓아진 정교한 스토리 덕분이다. 《쿨투라》 2025년 1월 ‘노벨문학상 특집’에 기대어 호기롭게 말해보겠다. 문학에 한강 작가가 있다면 드라마에는 한아영 작가가 있다고, 정확히는 앞으로 한아영 작가가 있을 수 있겠다고. 머지않은 미래에 이 말을 자랑스럽게 하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까지 신인 작가에게 극찬을 해도 되나 싶은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우리는 2025년 1월에 살고 있고, 새해를 맞이한 모든 사람에게 세뱃돈을 두둑이 챙겨주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특별히 매달 드라마 월평을 찾아 읽는다는 소중한 나의 제자 L에게 애틋한 격려를 전하고 싶다. 네 안에 있는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이 너를 주저앉히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겠지만 나는 믿는다. 2025년은 너의 해가 될 것이다.

2025년 새해는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지켜낸 자의 몫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2021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당선작 〈거북의 목을 쳐라〉를 일 년 반 동안 한땀 한땀 정성 들여 고친 결과물이다. 작가의 최고 재능은 대본을 끈질기게 수정하는 ‘퇴고력’, 즉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끈기와 집념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여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매년 새해 1월은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야심 차게 작성하는 달이다. 작심삼일도 120번이면 360일 일 년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119번의 새로운 결심이 남아 있다. 늘 1월의 마음으로 인생을 퇴고한다면 번번이 우리를 무릎 꿇린 그놈의 ‘절망’의 목을 칠 날이 올 것이다. 으랏차차 파이팅.

 

이토록 친밀한 스릴러

K-드라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르는 로맨스다. 정확히는 로맨스였다. 과거형이다. 로맨스 다음에 인기를 끈 것은 범죄수사물이다. 로맨스에도 사이코패스가 나왔고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범죄수사물도 이제는 과거다. 지금 가장 힙한 장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스릴러’다. ‘티키타카 밀당’에서 ‘쫓고 쫓기는 추적’을 지나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스릴러’까지 왔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토록 각박해진 것일까, 걱정이 앞설 정도로 대중이 선호하는 드라마 장르의 극적 긴장도가 점점 높아지는 중이다.

스릴러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의심을 바탕으로 복잡다단한 두뇌 싸움을 중심축으로 삼는 장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그 짧은 10부작 안에서 꼼꼼히 숨겨둔 사건의 단서들이 수백 조각의 퍼즐처럼 정교하게 맞춰진다.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서로의 대척점에서 거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대칭 구조는 하나의 시선이 아닌 서로 다른 시선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토록 진실이 입체적일 줄이야. 드라마를 이미 한 번 본 사람도 한 번 더 보았으면 좋겠다. 대사 하나 행동 하나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내가 계속 감탄만 하는 이유는 드라마 내용을 설명하는 순간,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최고 시청률 9.6%가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이친자’로서 만족스럽지는 않은 성적이다. ‘이친자’는 드라마 제목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줄임말인 동시에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 미친 자’라는 뜻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이친자’를 봤으면 좋겠고, ‘이친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드라마평론가로서 나의 새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속도와 속도감

칭찬 릴레이를 이어가 보자.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시청자들의 이성만이 아니라 감성까지 만족시킨다. 무미건조한 하드보일드 장르 ‘스릴러’에 한국적인 정서 ‘가족애’를 활용한 전략은 성공적이다. 스릴러의 서사적 극성은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관계에 힘입어 다양한 층위의 두뇌 서바이벌로 심화 확장한다.

가족애는 그동안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신파’ 요소로 많이 활용되며 관객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아버지가 딸을 위해 대신 죽었는데, 그냥 우세요. 답은 정해져 있었고, 관객의 눈물은 모든 걸 덮어버렸다. 억지스러운 설정, 개연성 없는 전개, 역사의식 부재… 다 괜찮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도 자식을 위해 삶을 내던진 아버지가 나오고, 어머니가 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신파는 그런 신파가 아니다. 그들의 신파는 극도의 두뇌 싸움을 더욱더 격렬하게 만드는 촉매제로 작동한다. 나의 딸을 살려야 한다. 나의 아들을 구해야 한다. 드라마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그들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드라마의 모든 시청자가 프로파일러가 된 것처럼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든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족애가 이토록 세련되게 활용될 수 있다니, 감탄하면서 봤다.

심리 중심의 드라마 전개 탓에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불평들이 간혹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느리다니요. 전혀 느리지 않다. 속도와 속도감은 다르다. 드라마의 서사 전개는 빠르지 않지만 빠른 것‘처럼’ 느껴진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심리가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속도감이 좋다. 지나치게 좋아서 심장이 시큰거리며 아플 정도다. 잠시 눈꺼풀을 깜박이는 사이에 무슨 단서를 내가 놓친 것은 아닐까 자꾸 조바심이 나곤 했다.

 

‘기어코’ 해피엔딩

요즘 MBC는 ‘스릴러’에 진심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전작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도 스릴러고, 후속작 〈지금 거신 전화는〉도 스릴러다. 스릴러는 그동안 지상파 방송국에서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었다. ‘장르물’ 중에서도 마이너한 취향을 지향하는 특정 소수의 전유물이었기에 ‘매스미디어’ TV 방송국과는 인연이 없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소수를 겨냥한 MBC의 새로운 선택은 옳았다. 지금의 MBC는 과거의 ‘드라마 왕국’ MBC가 아니고, 지상파 방송국은 ‘매스’ 미디어의 왕좌에서 내려온 지 이미 오래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차곡차곡 빌드업해 나가다 보면 엄청난 폭발력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번 보면 도저히 그만둘 수 없다. 유튜브 요약본이나 쇼츠로 도저히 즐길 수 없는 장르가 바로 스릴러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하는 장르. 충성도 높은 장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첫 회에 시청률 2.8%로 시작하여 마지막 회 8.8%라는 최고 시청률로 마무리했다. 〈지금 거신 전화는〉 또한 공개 2주만에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2위에 오를 만큼 화제를 모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스릴러는 입지가 좁아진 지상파 방송국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듯하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과거의 실패에 주눅 들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MBC에게 ‘이토록 친밀한’ CM송으로 새해 덕담을 건네고 싶다. 만나면 좋은 친구 문화방송. 기어코 해피엔딩을 이루어내길 바란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중.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문화평론집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외 다수가 있음.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 수상.

 

 

사진제공 MBC

 

* 《쿨투라》 2025년 1월호(통권 12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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