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의 역사와 그 변화
노벨문학상은 1895년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에게 상을 드리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124년 역사를 이어왔다. 전문가들로부터 200여 명 후보군을 추천받은 한림원 위원회가 1차로 20명, 2차로 5명을 가려낸 후 투표로 과반 이상 최다 득표자를 선정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노벨문학상은 대륙으로는 유럽, 인종으로는 백인, 성별로는 남성, 장르로는 소설이 대세였다. 이러한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수상 관행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그러한 흐름 속에서 양차대전이 끝나고 여러 국민국가가 독립하면서 여러 관점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자각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80년대 이후 노벨문학상은 서구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백인 아닌 유색인, 남성 아닌 여성, 소설 장르 아닌 시, 희곡, 르포, 심지어는 대중가요에 이르는 다양성을 안아 들였다. 이러한 수상 기준의 변화는 20세기 ‘세계문학’의 지형 변화 과정을 그대로 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노벨문학상이 서구 중심의 미학관을 내다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요새는 여전히 굳건하고 그 반대편으로 쪽문을 조금 열었을 뿐이다. 그 점에서 근자의 노벨문학상은 사회적 약소자를 옹호해온 작가들을 찾아 그 주변성과 외곽성을 평가함으로써 명실공히 ‘세계문학’의 지도를 그리려는 정치성을 확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제한된 의미에서나마 그러한 변모를 통해 노벨문학상은 세계 모든 구성원을 포괄적으로 재배치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수상 시인들의 세계
1901년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이었다. 그의 시가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두고 보편적 삶의 진보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그 후로 우리가 기억할 만한 시인 수상자로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W. B. 예이츠, T. S. 엘리엇, 파블로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 셰이머스 히니, 비슬라바 심보르스카, 밥 딜런, 루이즈 글릭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들에 비해서는 영성한 목록이지만, 그리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시인들이 다수 빠졌지만, 이 목록만으로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들의 면모는 제법 화려한 빛을 발한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기탄잘리(신께 바치는 노래)』라는 시집으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최초의 수상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마하리쉬(위대한 성자)’라는 존칭으로 인도 정신을 결합함으로써 서구인들의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이다. 아일랜드의 예이츠는 20세기 영문학 전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컬트나 신화 등 신성함과 초월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특별히 언어미학의 구축에도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1923년 그는 아일랜드의 민족사적 경험과 신화적 언어를 통한 공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타고르와 예이츠의 수상은 유럽 중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았던 인도와 아일랜드에, 그리고 시라는 장르에 주목한 결과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8년 영국 시인 엘리엇이 수상을 하였다. 20세기 시와 비평 분야에 혁명을 일으킨 그는 『황무지』를 통해 일약 세계적 시인이 되었고, 영문학의 주류로 등극하여 많은 이들이 이 시편을 ‘새로운 시’의 동의어로 여기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노벨문학상은 중남미 두 시인을 호명하는데 네루다와 파스가 그들이다. 칠레의 국민시인 네루다는 정치적 이상을 반영한 리얼리즘시, 사랑을 다룬 서정시, 일상적 사물에 바치는 송시, 현실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초현실주의시 등 다양한 시편을 남겼다. 우리에겐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로 유명한 시인이기도 하다. 일생 동안 정치적 망명을 겪다가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에 수상한 멕시코 시인 파스는 마르크스주의, 초현실주의, 불교 등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아 풍부한 초현실주의적 형상으로 형이상학적 문제를 노래하였다. 시론으로도 일가를 이룬 그는 예술적 창조성을 통해 실존적 고독을 극복하려는 시의 힘을 보여준 시인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전후 노벨문학상은 마르케스 등의 소설가를 포함하여 중남미 작가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예이츠 이래 가장 위대한 아일랜드 시인으로 평가받는 히니는 199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일상어와 자연 이미지를 활용하여 비교적 보편적인 주제를 표현해온 그는 후기로 갈수록 아일랜드의 정치적, 역사적 수난사를 노래하였다. 하지만 저항의 언어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고 섬세한 이미지로 암시하는 속성을 보여준 점이 평가되었다. 첫 여성시인 수상자라고 할 수 있는 폴란드의 비슬라바 심보르스카는 제2차 세계대전에 벌어진 유대인 학살, 그 후의 스탈린주의 등을 비판적으로 증언함으로써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녀의 시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새로운 심리적 질서를 얻고 있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일상의 아이러니를 품는 쪽으로 언어가 확장되어가기도 하였다. 2020년 수상한 루이스 글릭은 당시까지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이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 뉴잉글랜드 정원을 배경으로 봄부터 여름까지의 계절의 변화를 그려낸 『야생 붓꽃』에서는 꽃의 시점을 취하면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불러내는 보편성을 보여주었는데, 한림원은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표현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나타냈다”고 평가하였다. 이렇게 히니, 심보르스카, 글릭을 거치면서 현대시의 다양성이 적극 평가되었고, 특별히 여성시인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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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저서로 『서정의 건축술』 『단정한 기억』 등이 있음. 대산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5년 1월호(통권 127호) *